[friday] 한국빵 100년 빵신들의 수다

입력 2018.07.20 03:01

[빵의 달인] [Cover story] 이성당·성심당… 국가대표 빵집 주인 9명의 빵 이야기

이미지 크게보기
대한민국의 빵 역사를 빚어온 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빵집 주인들 모임인 ‘한울회’ 회원들의 손이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투박하고 큼지막한 손에 밀가루가 하얗게 묻었다. 대한민국 빵 역사를 빚어온 손들이다. 가장 오래된 빵집인 전북 군산 '이성당'(1945년 개점) 조성용 대표, '김영모 과자점' 주인 김영모 제과 명장,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먹은 빵을 만든 대전 '성심당' 임영진 대표…. 그야말로 한국을 대표하는 빵집 주인들이다. 이 빵집들이 영업해 온 햇수를 모두 더하면 384년. 짧게는 30년, 길게는 70여 년 동안 한국 빵 지도를 그려온 이들이다.

한 명도 만나기 어려운 이 유명 빵집 주인 9명이 1983년부터 35년째 특별한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이름하여 '한울회'. '한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이다. 유행 빵 정보 나누고 빵 만드는 법도 공유한다. 해외로 '빵지 순례'도 다닌다.

지난달에는 모두 함께 유럽에 다녀왔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본고장 유럽의 빵 문화를 체험하고 최신 제과 제빵 기술과 설비를 보기 위해서였다. "빵 트렌드를 보려고 종종 나가지만 이번 유럽 여행은 특히 감개무량했어요." 지난 11일 오후 5시 서울 도곡동 '김영모 과자점'에서 모임차 만난 이들이 이구동성 말했다.

1987년 단체로 유럽 빵 여행을 갔다 온 뒤 31년 만에 다 함께 유럽 땅을 밟았다. "31년 전엔 알래스카 앵커리지를 거쳐야 했습니다. 가는 데만 이틀이나 걸렸죠. 길고 힘든 여행이었습니다. 빵 맛도 너무 차이가 났고요."

이틀 걸리던 유럽은 이제 직항 타고 11시간쯤이면 간다. 한국 빵 문화는 비행 시간보다도 더 유럽과 시차가 없었다. "제빵 기술이나 설비는 독일·오스트리아 업체들이 놀라워할 정도로 유럽보다 우리가 더 발전해 있었어요." 총무인 인천 '크로네 제과점' 진승탁 대표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한반도에서 빵을 처음 구운 건 19세기 말. 비밀리에 입국한 기독교 선교사들이 숯불에 밀가루 반죽을 구웠다고 한다. 빵을 처음 본 조선인들은 "소불알처럼 생겼다"며 '우랑(牛囊·소불알) 떡'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낯설고 이국적인 음식이던 빵은 이제 밥을 식탁에서 밀어내며 주식(主食)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의 제과 제빵 역사라면 누구보다 꿰뚫는 빵의 달인들이 한국의 빵 얘기를 들려줬다.

이미지 크게보기
(작은 사진)대한민국 대표 빵집 9곳이 한울회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격월로 만나 친목을 다지고 정보를 교환해온 지 벌써 35년째다. 왼쪽부터 천안 뚜쥬루과자점 윤석호 대표, 인천 안스베이커리 안복현 회장, 제주 명당양과 문종철 대표, 서울 크로네제과점 진승탁 대표, 서울 김영모과자점 김영모 대표, 광주광역시 궁전제과 윤재선 대표, 대전 성심당 임영진 대표, 안동 맘모스제과 이석현 회장, 군산 이성당 대표로 참석하는 조성용 대두식품 대표. (큰 사진)서울 김영모과자점 김영모 명장이 반죽에 밀가루를 치고 있다. 김 명장은 “빵이라는 게 미묘해서 하나하나 특성을 존중해 다루지 않으면 제대로 부풀지도 않고 구워지지도 않는다”고 했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맛있는 빵은 보기만 해도 알아

지난 11일 김영모 과자점에서 만난 한울회 회원들은 둘러앉아 빵을 먹고 있었다. 빵이라면 지겨울 법도 한데, 김영모 과자점에서 새로 내놨다는 빵을 맛보는 거였다. 대전 '성심당' 임영진 대표는 "빵은 먹어야 하니까, 신제품 개발하고 품평해야 하니까 먹을 뿐"이라고 했다. 무심한 말에 열정이 묻어났다.

빵 장인 9명은 어떻게 만났을까. 서울 크로네제과점 진승탁 대표는 "빵 기계 수입하는 분이 처음 모임을 주선해 만나게 됐다"며 "제빵 기술을 교환하고 제빵 기계와 재료를 공동 구매하기도 한다"고 했다. 서울·대전·충청도·경상도·전라도 등 지역을 대표하는 빵집들의 모임이지만, 경쟁 의식보단 동지애가 더 강하다. 자기 가게를 대표하는 빵 레시피까지도 감추지 않고 공유한다.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을 비롯해 주 52시간, 최저임금 인상 등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해 힘을 모은다.

적어도 30년씩 빵을 만들고 먹어온 이들답게 "맛있는 빵은 보기만 해도 안다"고 했다. 군산 '이성당' 대표로 모임에 참가하는 조성용 대두식품 대표는 "말로 하긴 어렵지만 잘 만든 빵은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활기가 넘치고 볼륨감이 빵빵해요. 갓 지은 밥은 윤기가 돌지만 오래 묵은 밥은 기름기 없이 퍽퍽해 보이잖아요? 그것과 비슷해요." 안동 '맘모스제과' 이석현 회장은 "빵이 맛있으려면 무엇보다 재료가 중요해 가장 신경 쓰고 있다"고 했다. "좋지 않은 재료는 먹어보면 바로 알아요. 손님들도 우리처럼 구체적으로 집어내진 못해도 다 알아요. 그럼 다시 안 와요."

여기에 숙련된 기술이 더해져야 비로소 맛있는 빵이 만들어진다. 대부분 제과 제빵사 출신인 회원들은 과거 빵 배우던 시절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1960~70년대 빵을 배우려면 제과점에 들어가 선배 제빵사에게 도제식 가르침을 받아야 했어요. 군대처럼 엄격했어요. 일을 잘못하면 작업대에 엎드려 맞기도 했어요." "유명 제과점에 들어가면 제빵실 청소부터 그릇 닦기, 밀가루 포대 옮기기 등을 1년 넘게 해야 겨우 밀가루를 만져볼 수 있었어요. 반죽을 치고 빵을 성형하는 건 한참 지나서야 할 수 있었죠." "제빵실 온도가 40도까지 올라갔어요. 에어컨은 상상도 못 하던 시절이죠. 1970년대 초까지는 대부분 속옷만 입고 일했습니다. 빵이 귀하던 때라 제빵사도 함부로 맛을 못 봤어요. 몰래 먹다가 걸리면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100년 만에 낯선 서양 떡이 주식으로

요리 학교에서 교수에게 배우는 요즘 제과 제빵사들은 선배에게 맞아가며 배운다는 건 상상하지 못한다. 그만큼 한국 빵은 급속도로 성장과 변신을 해왔다. 한국 사람이 처음 빵을 맛본 건 18세기 초반, 중국에서다. 1720년 연행사로 베이징에 갔던 이이명의 아들 이기지가 베이징 천주당(天主堂·가톨릭 성당)에서 서양 떡을 맛봤다고 자신의 연행기 '일암연기(一庵燕記)'에 적었다. 그는 "서양 떡이 부드럽고 달았으며 입에 들어가자마자 녹았다"면서 "사탕(설탕)과 달걀, 밀가루로 만든다고 했다"는 걸로 봐선 카스텔라일 가능성이 크다.

1910년 한일 강제 병합 이후 일본인 기술자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한반도에서 빵의 시대가 비로소 열렸다. 김영모 명장은 "한국 빵은 일본 빵 문화를 기본으로 우리 식으로 변화시킨 것"이라고 했다. 단팥빵이 대표적이다. 도쿄 긴자 '기무라야' 창업자 기무라 야스베가 1869년 개발했다. 낯선 서양 빵에 친숙한 팥을 집어넣었다. 소보로빵, 크림빵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한국에 자리 잡았다. 6·25 이후 미국이 원조 물자로 밀가루를 지원하면서 빵이 빠르게 대중화됐다.

성심당 임영진 대표는 "아버지가 1956년 대전역 앞에서 원조 밀가루 두 포대로 찐빵집을 연 게 성심당의 시작"이라 했다. 1970년대 정부가 분식을 장려하고, 1980년대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대중적으로 빵을 먹는 시대가 열렸다. 한울회 회원 빵집들이 문을 연 것도 대부분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이다. 이제는 밥을 우리 식탁의 주식(主食) 자리에서 몰아낼 정도로 위협적 존재가 됐으니, '서양 떡' '우랑 떡'이라 부르며 신기해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31년 만에 유럽을 함께 찾은 한울회 회원들이 유럽의 제빵 시설을 견학하는 모습./한울회 제공
31년 만에 유럽을 함께 찾은 한울회 회원들이 유럽의 제빵 시설을 견학하는 모습./한울회 제공
부드럽고 달콤한 빵 선호하는 한국

한국 빵도 역사가 쌓이면서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특징을 갖춰가고 있다. 한국 빵은 유럽과 비교하면 달다. 빵을 주식이 아닌 간식으로 주로 섭취하기 때문이다. 빵을 예전보다 훨씬 많이 먹지만 여전히 빵은 끼니를 '때우는' 것일 뿐 식사는 아니었다. 그래서 한국에선 '과자빵류'가 판매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빵은 설탕이 10% 이하면 식빵류, 20~30%면 과자빵류, 여기에 버터·크림 등 유지류가 많이 들어가면 단과자빵류로 나뉜다.

한국 빵의 또 다른 특징은 부드러운 식감이다. 껍질을 두껍고 딱딱하게 굽는 유럽과 달리 한국에선 빵 껍질을 얇게 굽는다.

제주 '명당양과' 문종철 대표는 "한국인뿐 아니라 동양인은 전반적으로 하드 계열 빵을 싫어하고 소프트 계열 빵을 선호한다"고 했다. 부드러운 쌀밥에 입맛이 길들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광주광역시 궁전제과 윤재선 대표는 "유럽에선 빵을 고기·채소에 곁들여 식사로 먹기 때문에 맛이 단순한 반면, 한국은 간식으로 소비하기 때문에 단팥·달걀·견과류·과일·햄·치즈 등 부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방향으로 발전했다"고 했다. 부드러운 롤빵 안에 달걀 샐러드를 터질 듯이 채워 넣은 궁전제과 '공룡알 빵'이 대표적이다.

빵 입맛도 지역별로 차이가 있을까. 천안 '뚜쥬루과자점' 윤석호 대표는 "서울과 지방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같은 빵이라도 서울 손님들은 덜 달게 만들어야 좋아해요. 지방은 더 단 걸 선호하고요. 지방이 새롭고 이국적인 제품보다는 단팥빵, 야채빵 등 더 전통적인 빵이 잘 팔리는 보수적인 입맛이기도 하고요. 케이크도 서울에 와 보면 더 작고 예쁘더라고요. 하지만 젊은 세대로 내려갈수록 서울-지방 차이가 거의 없어요."

빵 문화, 2대·3대로 이어진다

지난달 유럽 연수에는 자녀도 많이 따라갔다. 빵집 9곳 모두 자녀가 가업(家業)을 이어받겠다며 경영과 생산에 참여하고 있다. 올해 73주년을 맞은 이성당과 62주년을 맞은 성심당은 3대째다. "일본에 가보면 5대, 6대째 가족이 운영하는 빵집이 많습니다. 그렇게 부러울 수 없더라고요. 빵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기술 축적이 중요하거든요. 아이들한테 강요하지 않았지만 가업 승계를 자연스럽게 생각해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한울회도, 한국 빵 문화도 그렇게 계속 이어지며 발전하는 듯했다.

◇한국 빵 역사

1720년
연행사 이이명의 아들 이기지 베이징 천주당에서 ‘서양떡’ 맛봐
19세기 말
기독교 선교사들이 숯불에 구운 빵 ‘우랑떡’으로 알려져
1884년
조·러 수호통상조약 체결 후 손탁 정동구락부 열고 빵 선보여
1910년
한·일 강제 병합 이후 일본인 제빵기술사 쏟아져 들어와
1920년대
한반도 주요 도시에 빵집 속속 개업
1953년 6·25 휴전 이후
미국 원조 물자 밀가루 공급. 빵 대중화 시작
1960~70년대
정부 분식장려운동. 빵 보급 증가
1960년대 말
삼립·샤니·서울·기린 등 양산 빵 업체 등장
1970년대 말
뉴욕제과·고려당·독일빵집 등 중견 제과점 프랜차이즈 형태 분점 내기 시작
1980년대
경제성장으로 식생활 서구화와 함께 빵 소비 급증
2000년대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급성장. 빵 다양화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