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시간 안에 시진핑 주석의 얼굴이 들어간 게시물이나 사진, 포스터 등 선전물을 모두 철거하라.'

지난 12일 베이징 도심 시청취(西城區)의 한 빌딩 입주자들에게 이런 통지가 전달됐다. 관리사무실 측은 "인근 얼룽루(二龍路) 파출소가 긴급히 하달한 지시"라고 말했다. 당시 상황을 보도한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얼룽루 파출소는 중난하이(中南海·중국 권력층의 집무실이 있는 곳) 인근 중앙기관 42곳, 시 소속 기관 377곳을 관할하는 곳"이라고 전했다. 파출소 측 통지에는 '철거 이유'는 명시되지 않았다고 RFA는 전했다.

중국 후난성 출신 여성 둥야오충(29)이 지난 4일 상하이의 한 건물 주변에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초상 선전물에 먹물을 뿌리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시 주석 캐리커처에 먹물이 뿌려진 것처럼 편집돼 트위터 등에 유포된 이미지다.

하루 전인 11일에는 관영 신화통신 인터넷판에 '화궈펑(華國鋒) 사죄'란 제목의 3년 전 기사가 뜬금없이 게재됐다. 마오쩌둥 사후 그의 후계자로 당 주석에 올랐던 화궈펑이 자신이 앉았던 의자를 박물관에 보존하고 생가를 기념관으로 만드는 등 개인숭배 행위를 하다가 당의 비판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에는 당시 당이 '현직 지도자의 초상화 게시를 일률적으로 금지한다'고 결정했다는 사실도 언급됐다. 이 기사가 갑자기 등장하자 온라인에선 '시 주석 하야설' 등이 난무했다. 기사는 결국 삭제됐다.

국가주석 임기제한을 없애고 '시진핑 1인 체제'를 확립했다는 분석이 나온 중국에서 최근 시 주석의 위상과 관련한 '이상징후'가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시 주석을 '시(習)황제'로 떠받들며 개인숭배 수준의 선전전을 펼쳐오던 기류에 제동이 걸리는 듯한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외국의 중화권 매체뿐 아니라 홍콩 매체들도 이 같은 '시진핑 격하 징후'를 보도하고 있다.

미국 소재 중화권 매체 보쉰은 지난 13일 장쩌민·후진타오 전 주석, 원자바오·주룽지 전 총리 등 원로 40여 명이 연명으로 당 정책 노선의 재검토를 요구한 데 이어, 당 기관지 인민일보 1면에서 지난 9일에 이어 15일에도 시 주석 관련 기사가 단 한 건도 보도되지 않는 등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홍콩 명보도 지난 16일 '최근 시 주석의 권력 기반이 흔들린다는 소문이 난무하고 있다'며 관련 사례를 구체적으로 전했다. '공산당이 최근 량자허(梁家河·시 주석이 문화대혁명 기간 지냈던 벽촌) 연구를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시 주석의 외교책사 왕후닝 상무위원이 대외정책 실패 책임을 지고 낙마한다'는 내용들이었다. 심지어 '덩샤오핑에게 밀려 물러난 화궈펑처럼 시 주석이 하야하고 그 뒤를 왕양 정협 주석이나 후춘화 부총리 등이 이을 것'이라는 얘기까지 거론됐다. 명보는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중국 당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홍콩 주류 매체가 이처럼 노골적인 반(反)시진핑 루머를 전한 건 이례적이다.

이를 두고 RFA는 "중국 당국이 '개인숭배' 수준으로 치닫던 시진핑 주석에 대한 선전전의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이라며 이달 초 상하이에서 발생한 '먹물 사건'의 여파라고 분석했다. 먹물 사건이란, 지난 4일 상하이의 한 빌딩 앞에서 둥야오충이라는 29세 여성이 시 주석의 얼굴이 그려진 중국몽(中國夢) 선전 포스터에 먹물을 끼얹은 일을 말한다. 그는 먹물을 뿌리는 행위를 셀카 동영상으로 촬영해 트위터에 올렸다. 이 영상에서 둥야오충은 "시진핑 독재폭정에 반대한다"는 말까지 했다. 해당 영상은 트위터·유튜브 등을 통해 급속히 확산하는 등 큰 파장이 일었다. 결국 이 여성은 중국 당국에 구금돼 있다고 AFP통신이 18일 보도했다.

시 주석 초상화 철거와 인민일보 기사 축소 등이 단순한 선전 속도 조절이 아니라, 권력층 내부의 갈등이 불거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시진핑 1인체제'의 정당성과 권위를 선전하기 위해 아직 힘이 부치는 데도 불구하고 강경한 대미 노선으로 나갔다가, 감당할 수 없는 무역 전쟁을 초래했다는 내부 비판이 최근 나타난 현상의 배경이라는 시각이다. 시 주석의 핵심 측근인 왕후닝뿐 아니라 시 주석의 거취까지 거론되는 루머가 도는 것 자체가 내부 권력투쟁을 반영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중국 전문가들 사이에선 몇몇 현상만으로 시 주석의 위상이 흔들린다고 보는 건 과장된 해석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인민일보 1면의 경우 지난달에도 3일간 시 주석 기사가 없었다. 작년 7~8월에도 1면에 시 주석 관련 기사 없었던 날이 일주일에 2~3차례 있었다. 반면 17일 자의 경우 시 주석 기사 3건이 1면을 거의 도배하는 등 여전히 시 주석 보도가 압도적이었다.

홍콩 명보는 "미·중 무역 전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정책 실패의 근본적 원인이 시 주석에게 있는 만큼 그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인식이 온갖 소문을 낳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시 주석의 권력 기반은 아직 굳건하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