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경북 영양군에서 조현병 환자 백모(47)씨가 휘두른 흉기에 경찰관 한 명이 숨지고, 최근 서울 성북구에서도 30대 조현병 환자가 노모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됐다. 사고가 잇따르자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18일 성명서에서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은) 치료 사각지대에서 방치되고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대책이 없다"면서 "퇴원해서 재발을 반복하는 정신질환자의 치료 유지를 위한 관리 프로그램을 가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정신질환자의 '강제 입원' 요건은 강화했지만, 퇴원한 환자들을 관리할 시설·인력은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고위험 조현병 환자 관리 안 돼"
범죄를 저지를 위험이 있는 일부 '고위험군' 조현병 환자들이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경찰관을 숨지게 한 백씨의 경우 과거에도 비슷한 범죄를 저지른 전력이 있지만, 퇴원한 사실이 지역 보건소 등에 통보가 안 돼 보건 당국의 관리 대상에서 사실상 빠져 있었다. 정신건강복지법 52조에 따라 환자가 퇴원할 때 보건소나 정신건강증진(복지)센터에 통보하려면 본인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백씨는 이를 원치 않아 보건소 등에 퇴원 사실이 통보되지 않은 것이다. 복지부는 "정신질환 치료 사실 등은 환자들이 공개하기 꺼리는 정보여서 현행법에 본인 동의 규정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퇴원 후 치료를 잘 받지 않아 상태가 악화된 '고위험군' 정신질환자 관리 문제에 대해선 "경찰 등과 협의해봐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사실상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해외에선 다른 사람을 해친 전력이 있는 정신질환자를 '외래 치료 명령제' 등으로 관리한다. 대상자는 전문 인력이 집으로 찾아가 상담하는 등의 관리를 받게 되며, 이를 거부하면 한 달 이상 장기 지속형 주사제를 투여하는 식의 강제 조치도 취할 수 있다. 미국, 유럽은 물론 대만에서도 20년 전부터 이런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퇴원한 정신질환자가 보호자 없이 혼자 거주하는 경우에도 이러한 제도를 활용하면 지속적인 치료를 받도록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정신건강복지법 64조에 외래 치료 명령 제도가 명시돼 있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외국과 달리 강제성이 없고 이 역시 보호자 동의 등이 필요해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정신질환자 인권 보호는 좋지만…
작년 5월부터 시행된 정신건강복지법은 ▲정신질환으로 자해·타해 위험이 있을 때 ▲보호자 두 명의 동의가 있고 ▲각기 다른 기관 소속 전문의 두 명의 일치된 판단이 있어야 정신질환자 본인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다. 지난 2016년 9월 기존 입원 절차가 환자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림에 따라 정신질환자의 인권 보호를 강화한 것이다. 정실진환자의 '비(非)자의' 입원 비율은 법 개정 직전인 2016년 12월 61.6%에서 올 4월 말 37.1%까지 낮아졌다. 이에 정신과 의사들 사이에선 "환자 인권 보호도 중요하지만 '이중 장치'만 하면 되는 곳에 '삼·사중 장치'를 한 격"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입원을 했더라도 자의가 아니라면 입원 후 30일 이내에 간호사·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된 입원 적합성 심사위원회가 '비자의 입원의 적절성'을 다시 평가하도록 한 부분도 논란이다. 입원 전 두 명의 전문의가 입원이 필요하다고 결정한 사항을 간호사·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된 입원 적합성 심사위원회가 다시 평가하도록 한 규정이다.
한 대형 병원 정신과 의사는 "입원 치료가 꼭 필요한 환자들이 보호자가 비자의 입원에 필요한 서류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원이 안 되거나, 치료가 더 필요한 환자들이 너무 이르게 퇴원하는 상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