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은 "탄압당했다"고 했는데… 통역은 "돈벌러 한국 왔다"

조선일보
  • 권순완 기자
    입력 2018.07.17 03:00

    난민 심사 아랍어 멋대로 통역
    신청자들 "억울하다" 소송까지

    법무부에서 아랍어권 난민 심사를 담당했던 통역인이 난민 신청자가 하지도 않은 말을 만들어 낸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법원은 난민 신청인이 "모국(母國)에서 정치 탄압을 받았다"는 취지로 답했지만 이 통역인은 "돈 벌러 왔다"고 통역했다고 봤다. 해당 통역인은 전문 통역인이 아닌 아랍어를 이중 전공한 경영대생으로 알려졌다.

    서울고등법원은 최근 아프리카 수단 국적의 외국인 A씨가 제기한 '난민 불인정 결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무부의 난민 불인정 처분이 잘못됐다는 취지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15년 말 한국에 입국한 후 난민 신청을 했다. 그는 난민 신청 서류에 '수단에서 대학 비리를 고발했다가 반정부 인사로 찍혀 고문을 당했다'고 썼다. 하지만 면접 후 법무부가 작성한 조서는 딴판이었다. 조서에 따르면 A씨는 난민 신청 사유를 묻는 말에 "한국에 장기 체류해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답한 것으로 돼 있다. 난민 신청자가 스스로 난민이 아니라고 자백한 꼴이었다. 면접 당시 아랍어 통역은 장모씨가 맡았다.

    법무부가 A씨 진술 등을 근거로 '난민 불인정' 결정을 내리자 A씨는 "면접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소송에 나섰다. 서울고법은 A씨의 호소가 면접 조서보다 설득력 있다고 봤다. 장씨의 전력(前歷) 때문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장씨가 통역으로 참여한 다른 난민 신청자 면접 조서에도 '나는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는 답변 내용이 많았다"며 "유독 장씨가 통역한 면접 조서에 그 같은 기재가 많다는 것은 통역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장씨는 정식 위촉된 '난민 전문 통역인'이 아니었다. 전문 통역인이 없거나 긴박한 경우 개별 섭외되는 인력이었다. 정해진 채용 기준은 없고 해당 출입국 사무소의 재량으로 결정됐다. 장씨는 서울의 한 사립대 경영학과 학부생으로, 아랍어를 이중 전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에 따르면 장씨가 2년간 맡았던 난민 면접은 100건 이상이다. 법무부는 내부 조사를 통해 그가 통역으로 관여한 난민 불인정 결정 중 55건을 직권 취소했다. 이 중 2건은 재면접을 통해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장씨는 법무부 내부 면담에서 "내 통역은 틀리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전문 통역인들은 "법무부 통역비가 낮다 보니 학부생이나 비전문 인력을 난민 통역에 투입한 결과"라고 했다. 통·번역대학원에서 한·아랍어 통역을 전공한 전문 통역인의 경우 시간당 통역비가 15만원 수준이다.

    하지만 법무부에서 제시하는 아랍어 난민 통역비는 시간당 5만원이다. 단순 위촉직 통역뿐만 아니라 공무원 신분인 정규직 통역인 가운데도 통·번역전문대학원 출신은 드물다. 현재 법무부 소속으로 제주도에서 아랍어 통역을 하는 사람 가운데 통·번역전문대학원을 졸업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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