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조선일보
  • 조덕현 미술가·이화여대 교수
    입력 2018.07.13 03:00

    조덕현 미술가·이화여대 교수
    조덕현 미술가·이화여대 교수

    소확행, 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게 젊은 세대의 유행이 되어 너도나도 그것을 언급하고, 분석하고, 토를 달기 바쁘다. 이미 30여 년 전에 나타난 말이 역주행하는 현상도 그렇지만, 그와 함께 여기저기 언급된 소확행 리스트를 살펴보자니 다양하고 섬세하되 매우 개별적이며 실존적인 행위여서 재미있다. 이 '실존적'이란 대목에서 그동안 내가 반복적으로 해온 일을 떠올리며 슬쩍 숟가락을 얹어 본다.

    바로 맨발로 산길 걷기다. 십오륙 년 전 '대지에 온몸으로 키스하는 느낌'이 좋아 시작한 게 꽤 오래되었다. 작업실 가까이에 야산이 있어 틈이 날 때나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홀로 한 시간쯤 걷다 오곤 한다. 시내에서도 자투리 시간에 학교 근처 안산이나 인왕산, 북한산, 우면산 등을 편리한 대로 걷는다. 바지를 크게 두 단 접고, 양말을 신발에 넣어 한 손에 들면 되니 그다지 번거롭지도 않다. 처음엔 연약한 발바닥에 와 닿는 감촉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맨발로 한 걸음 떼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런 데다가 혹시 깨진 유리나 날카로운 돌에 찔리면 어쩌나 두렵고 걸리적거리는 게 하나둘이 아니었지만 일단 걷고 나니 모든 게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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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발 걷기의 순기능은 체험자들이 많이 소개했으나 건강에 좋다는 말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건강은 거들 뿐, 걷는 동안 하나둘 눈뜨는 원시의 감각과 그 덕분에 더욱 진하게 온몸에 밀려오는 자연과 계절 변화의 감동, 그리하여 마치 내 몸에 아로새겨진 어떤 비밀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진짜다. 예술가적 과장이 허용된다면 나를 만들어낸 저 36억년이란 생명 진화의 유장한 시간이 내 안 깊은 데서 출렁임을 느낄 정도라 하고 싶다. 그런 무아지경 끝에 산길을 내려오면 가슴은 어김없이 행복감으로 충만하다. 이렇듯 짧은 시간에 감행하는 일상으로부터의 거대한 일탈, 이 소소한 행위가 불러오는 결코 소소하지 않은 깨달음의 행복, 이것을 나의 소확행으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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