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철·이기문의 뉴스 저격] 미국을 떨게 하는 건… 화웨이의 'R&D 늑대 8만명'

입력 2018.07.13 03:14

오늘의 주제: 시장의 타깃 찾아 무리 지어 공격… 5세대 이동통신 점령한 中 화웨이

100층짜리 고층빌딩이 즐비한 중국 상하이 푸둥(浦東) 지구. 세계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지역 중 하나인 이곳에 5층짜리 건물 4개가 좌우로 1㎞ 정도에 걸쳐 길게 늘어서 있다. 건물 주변은 인공호수와 숲이 둘러싸고 있다. 1만명이 넘는 연구원이 근무하는 '화웨이 상하이 연구개발(R&D)센터'다.

1층에 들어서자 얇은 캐비닛 모양의 회색 기기 10여 대가 보였다. 화웨이가 세계 최초로 만든 5G(5세대 이동통신) 기지국으로 20기가비트(Gbps)의 통신 속도를 낸다. 1초에 영화를 2편씩 다운로드할 수 있는 광속(光速) 수준이다. 4세대 이동통신(LTE)보다 20~100배 빠르다. 화웨이의 이 같은 대형 R&D센터는 중국 7곳,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해외 9곳 등 모두 16곳 있다.

18만명의 화웨이 직원 중 연구개발(R&D) 인력은 8만명이 넘는다. 작년 한 해 R&D에만 매출액의 15%에 해당하는 138억달러(약 15조5500억원)를 썼다. 이는 삼성전자의 지난해 매출액 대비 R&D 비율(7%)의 배가 넘는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R&D 인력은 6만5000여명이다. 중국 기술 굴기(崛起·우뚝 일어섬)의 선두 주자인 '화웨이'를 분석해 봤다.

◇'마오쩌둥 戰法'으로 성공


창업자 런정페이(任正非)는 인민해방군 장교 출신으로 1987년 자본금 2만1000위안(365만원)을 갖고 회사를 세웠다. 당시 43세였다.

글로벌 기업들이 독점하던 통신장비 시장을 빼앗기 위해 '농촌(후진국) 장악 후 도시(선진국) 진격'이란 마오쩌둥 전법(戰法)을 그대로 적용했다. 1990년대 초 중국 농촌 지역을 돌며 단순 통신 교환기를 한 대씩 팔다가 도시로 진출했다. 글로벌 기업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시베리아·티베트 고산지대 등지에서 통신장비를 팔다가 러시아·남미 등 신흥국과 동남아를 거쳐 유럽·미국 공략에 나섰다.

'해당 지역민과 함께 호흡하며 끝까지 간다'는 전략도 같은 맥락이다. 2011년 리비아 내전 때 화웨이는 철수하지 않고 오히려 교전 지역의 통신망 유지 보수를 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지역 주변에서 긴급 통신 복구로 평판을 높였다.

AI 탑재한 화웨이 스마트폰 ‘메이트 10’(사진 위), 런정페이 회장과 시진핑(사진 아래) - 지난달 13일 상하이에서 열린 ‘CES 아시아 2018’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화웨이의 최신 스마트폰 ‘메이트10’을 사용해보고 있다. 화웨이는 이 스마트폰에 자체 기술로 만든 인공지능(AI) 모바일 칩세트를 세계 최초로 적용했다. 2015년 영국 런던 소재 화웨이 사무실을 방문한 시진핑(오른쪽에서 둘째) 중국 국가주석에게 런정페이(왼쪽에서 둘째) 화웨이 창업자가 자사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AI 탑재한 화웨이 스마트폰 ‘메이트 10’(사진 위), 런정페이 회장과 시진핑(사진 아래) - 지난달 13일 상하이에서 열린 ‘CES 아시아 2018’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화웨이의 최신 스마트폰 ‘메이트10’을 사용해보고 있다. 화웨이는 이 스마트폰에 자체 기술로 만든 인공지능(AI) 모바일 칩세트를 세계 최초로 적용했다. 2015년 영국 런던 소재 화웨이 사무실을 방문한 시진핑(오른쪽에서 둘째) 중국 국가주석에게 런정페이(왼쪽에서 둘째) 화웨이 창업자가 자사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블룸버그

화웨이(華爲)라는 사명(社名)은 '중화민족을 위해 행동한다'는 '중화유위(中華有爲)'의 줄임말로 알려졌다. 그만큼 철저한 중국 기업이지만 해외 선진 경영을 적극 수용했다. 특히 인사·총무에서 미국식 경영 방식을 배우기 위해 IBM 경영자문단에 5년간 자문했다.

여기에다 창업 초기부터 연구개발(R&D)에 전력투구한 결과, 화웨이의 매출액은 최근 3년 사이에 2배 넘게 늘어났다. 현재 화웨이는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전자(電子)제품이라는 '이동통신 기지국' 시장 분야에서 세계 1위다. 170여 국에 화웨이 통신 장비가 들어가 있다.

2010년 뒤늦게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든 화웨이는 지난해에만 1억5300만대를 팔며 수량 기준으로 삼성전자와 애플에 이어 세계 3위에 올랐다. 올 2분기에는 애플을 누르고 세계 2위가 됐다는 추정보고서가 나왔다.

◇美 국가 안보 차원에서 '화웨이 견제'

화웨이 경영 실적 표

화웨이의 최대 강점은 저렴한 가격이 아니라 높은 기술력이다. 화웨이는 7~8년 전에 갓 스마트폰 시장에 진입하던 시절부터 독자 개발한 칩(chip)을 썼다. 당시 삼성전자도 미국 퀄컴사(社)가 만든 칩을 사서 쓸 때였다. 화웨이의 주력인 통신장비는 수천대의 스마트폰을 동시에 연결하는 복잡한 구조다. 이런 기지국을 설계하는 능력이 스마트폰에서도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올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전시회 '2018 MWC' 현장은 화웨이의 독무대나 마찬가지였다. 화웨이의 전시 부스는 삼성전자보다 16배 정도 넓었다. 세계에서 몰려든 10만여 명의 통신 전문가가 최소 한 번 이상씩 화웨이 부스를 다녀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화웨이가 5G 장비 분야에서 최첨단 제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5G는 음성과 데이터를 넘어 자율주행차·로봇·드론(무인기)과 VR·AR(가상·증강현실), 스마트시티 등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이 되는 대동맥 역할을 한다. 예컨대 5G 기지국은 자율주행차가 무인 주행하면서 통제센터와 통신할 때나, 원격으로 로봇이나 드론을 제어할 때, 심지어 집 안의 전등을 외부에서 켜거나 끌 때도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핵심 기기다.

신민수 한양대 교수(경영학부)는 "이런 핵심 인프라가 중국의 손에 들어갈까 봐 가장 두려워하는 곳은 미국 정부"라며 "화웨이의 진짜 경쟁자는 삼성이나 애플이 아니라 미국 정부라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실제 미국 의회는 2012년 '화웨이 장비가 중국 군사 당국과 협력 관계에 있다'는 비공개 보고서를 냈다. 이후 미국 통신 시장에서 화웨이 제품은 사실상 배제됐다. 올 1월엔 미국 2위 이동통신사 AT&T가 화웨이 스마트폰 판매를 시도하다가 정부의 압박에 취소했다. 미국은 호주·영국 등 우방국에 직간접적으로 화웨이 제품 사용 금지를 촉구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 직후인 2016년 12월, 스티브 차봇 미국 하원 중소기업위원회 위원장 등 3명의 의원은 미국 국방부에 "미국 국가 안보 차원에서 화웨이가 한국에서 이동통신망 구축에 참여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요지의 서한을 보냈다. 미 정부 일각에서는 화웨이가 창업 30년이 넘었는데도 미상장(未上場) 기업인 점을 두고 '실제 소유주는 중국 정부'라는 의혹을 제기한다. 런정페이의 지분율은 1.4%이며, 나머지 지분은 공회(노동조합) 소유로 알려졌다.

"화웨이 경쟁력은 創新力"… 세 부회장이 번갈아 6개월씩 CEO 맡아
직원 18만명 평균연봉 1억1700만원

세계 통신 장비 시장점유율 그래프

화웨이의 경영·지배 구조는 남다르다. 창업자인 런정페이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고, 후허우쿤과 궈핑, 쉬즈쥔 등 세 부회장이 순번(順番)을 정해 6개월씩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4년 전 선전(深圳) 소재 화웨이 본사에서 만난 후허우쿤 부회장은 "우리의 경쟁력은 창신력(創新力·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라고 했다.

창신력을 만드는 방법도 독특하다. 창업 초기 화웨이는 직원들에게 야전침대를 나눠 줬다. 퇴근을 반납하고 사무실에서 밤낮으로 연구 개발해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라는 취지에서였다. 내부에서는 이를 '텐트 문화'라고 부른다.

지금 화웨이의 야근 문화는 예전보다 덜하지만 성과를 못 낸 직원은 절대 품고 가지 않는 원칙만은 확고하다. 화웨이의 직원 평균 연봉은 1억1700만원 정도다. 그러나 매년 전체 직원의 5% 정도를 '성과 미흡자'로 분류해 퇴출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허를 7만4000여 건 등록한 화웨이의 기술력은 이런 혹독한 경쟁으로 얻어낸 산물이다.

'늑대 문화'는 화웨이의 기업 문화를 상징하는 또 다른 표현이다. 늑대처럼 예민한 후각으로 시장이 원하는 상품을 파악해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먹잇감이 일단 정해지면 다 같이 무리 지어 맹렬하게 공격해야 한다는 뜻도 담겨 있다. 런정페이 회장은 "늑대와 같은 후각, 불굴의 의지, 팀플레이 정신이 있어야 기업이 성장한다"고 입버릇처럼 강조한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