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40㎏ 장비 메고 바닷속으로 제주 해녀 참모습을 알리다

조선일보
  • 최보윤 기자
    입력 2018.07.13 03:00

    국내 첫 여성 수중사진 작가 … 와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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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중 사진작가 와이진은 조명 달린 노티캠 카메라, 공기탱크, 다이빙 장비 등과 마치 한몸인 듯 움직였다. 인터뷰 날도 제주 ‘엄마들’(해녀)이 “언제 오느냐. 보고 싶다”고 전화로 그녀를 찾았다. 와이진은 “내가 하도 엄마 엄마 하니까 가끔 우리 엄마가 ‘넌 엄마가 대체 몇이냐’며 질투 아닌 질투를 하신다”며 웃었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그래픽=김의균
    "와이진, 좋은 소식 있어! 우리 함께한 한국 다큐멘터리 반응이 굉장해! 특히 제주 해녀와 돌고래의 만남은 믿기 힘들 정도로 경이로웠다는 반응이야."

    국내 수중 사진작가 와이진(Y.Zin·39)은 지난 2월 말 영국 BBC 방송국 제작 프로듀서에게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BBC 2채널을 통해 2월 11일 방영된 다큐멘터리 '한국: 지구의 숨겨진 야생(South Korea: Earth's Hidden Wilderness)' 작품 얘기였다. 약 171만명의 시청자를 끌어모으며 호평받았다. 그 주 같은 채널에서 방송된 평창올림픽 하이라이트 시청자 수와 비슷했다. BBC는 2012년부터 제주 해녀 물속 삶을 카메라에 담으며 '해녀 알림이'로 해외에서 더 유명한 와이진에게 자문했다. 프로그램의 얼굴과 같은 홍보 포스터가 그녀의 작품이다. 제주 해녀가 깊은 바닷길로 잠수하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담겼다.

    2008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이버 자격증 획득, 2015년 아시아 여성 최초 '사이드마운트 다이빙(공기통을 등이 아닌 양 허리 옆으로 메는 것)' 최장 기록(101m) 등 국내 첫 여성 수중 사진작가로 그녀가 내딛는 도전이 곧 역사가 됐다. 전 세계 바닷속이 자신의 스튜디오라는 그녀를 서울 동대문구 작업실에서 만났다.

    ―해녀의 무엇이 당신을 사로잡았나.

    "잠수부도 입수를 꺼리는 세찬 바다 환경에, 장비 하나 없이 물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에 한 방 맞은 듯했다. 강인한 여전사이자 자신감 넘치는 커리어우먼이 내뿜는 압도적인 자태였다. 그전까지 내가 보았던 해녀 사진은 세파에 찌들고 어쩔 수 없이 살아내야 하는 숙명적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존재였는데…. 그렇게 시작한 게 '해피 해녀' 프로젝트다. 세상을 다시 보게 한 나의 뮤즈(muse·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여신)가 됐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얻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다.

    "제주 말도 어려웠는 데다 '뭣 하러 왔어'라는 신경질적인 반응이었다. 수많은 이가 사각 프레임 안에 담아가기만 할 뿐 마음까지 내준 이는 많지 않았던 것 같았다. '엄마, 나 또 나왔어'라며 매일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해녀들을 '엄마'라고 불렀다.

    ―제대로 교감(交感)을 나눈 건?

    "2014년 가을 즈음 마라도 최연소 해녀 김재연(42)씨한테 문자 한 통이 왔다. '해녀 김재연입니다. 많이 힘드시죠?' 펑펑 울었다. 하소연하듯 전화를 붙잡고 서너 시간을 울면서 얘기했다. '엄마들이 왜 그렇게 날 싫어해. 왜 그렇게 사나워.' 그때 알았다. 화가 난 게 아니었다는 것을. 물속에서 귀가 먹먹해지는 걸 막으려 껌으로 귓속까지 막아서 잘 안 들리다 보니 목소리가 커졌다는 걸. 2년 넘게 왜 그걸 몰랐을까. 미안해서 더 울었다."

    제주 해녀의 물속 삶을 담은 ‘해피 해녀’ 프로젝트에 담긴 사진./와이진 컴퍼니
    ―지난해 한글·영문이 동시에 실린 해녀 사진집이 나왔다.

    "3년 전쯤 사연을 안 출판사 사장님이 해외에 더 알리자며 연락이 왔다. 엄마들은 처음에 '천한 일인데 뭐 자꾸 찍나'라고 하셨다. 그렇게 알고, 듣고 자라신 것 같다. '엄마 이렇게 멋있고 용감한 사람이야. 엄마가 가족의 영웅이야'라고 말씀드렸다. 뭍 위 사진은 숱하게 많아도 수중 작업 모습은 당신에게 낯설었던 것 같다. '내가 이리 멋지나?'고 하셨다. 어느 날부터는 '난 옆모습보다 앞모습이 예쁜데' '루주(립스틱) 바르고 찍자'며 먼저 다가오셨다. 촬영 장비가 40㎏ 정도 되는데 '쟤 힘드니까 도와주자'며 손도 내미신다. 당신들은 60㎏ 넘는 해산물 바구니를 들쳐 메셨으면서 말이다."

    ―2014년부터는 매해 두 번 열리는 ADEX(Asia Diver Expo·아시아 다이버 박람회) 무대에 해녀와 함께 서고 있다.

    "2013년 처음 초청 연사로 참가해 해녀에 대해 강연을 했더니 기립 박수가 터졌다. 박수를 받을 주인공은 따로 있었는데 말이다. 감동의 절정인 순간, 예상 못한 질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마(일본 해녀)가 아닌 해녀라고 불러야 하나'라는 물음이었다. 그길로 제주관광청에 지원 요청을 했지만 예산이 없다며 난색이었다. 급한 대로 해외 비행기표랑 숙박비를 내 돈으로 해결했다. 무대 위 엄마들에게 존경과 응원의 눈물 섞인 기립 박수가 이어졌다. 엄마들이 내 손을 꼭 잡고 '부끄러운 일인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박수받을 줄 몰랐다. 죽기 전에 알려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사비까지 쏟아붓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덕분에 결혼 자금으로 모아둔 돈을 다 썼다. 하하. 식도 못 올렸는데 이해해준 남편한테 고맙다. 당신들이 여권조차 없으리란 건 생각도 못했다. 건강체크비 등도 필요했다. 처음엔 관광청 사정을 이해하려 했지만, 2016년 말 제주 해녀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에 등재된 이후에도 '예산 부족'이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여 서운하고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럴 거면 희망고문이라도 하지 말지…."(제주관광청 공개자료를 보면 2016년 4월 싱가포르 ADEX 행사 김재연·김옥자 해녀 지원에 들어간 비용은 제주-김포 비행기 값, 3일간 홍보비를 합쳐 총 111만1200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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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BBC2에서 방영된 ‘한국 야생 다큐멘터리’의 메인 포스터(좌). 바다 환경 보호 의미를 담은 ‘머메이드 프로젝트’ 작품(우). 멕시코 바다에서 찍었다./와이진 컴퍼니
    지금은 전문 수중 사진작가로 수면 밑의 세상을 담아내고 있지만 20대의 와이진은 수면 위의 화려함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대학(동덕여대 의상학과) 재학 중 디자이너 앙드레 김 눈에 들어 스타일리스트 세계에 뛰어들었다. 20대 초반 탤런트 조인성·송윤아, 가수 보아·비 등의 의상을 맡은 '실장님'이 됐다. "사진 감각이 좋다"는 유명 사진작가들의 조언에 상업 사진작가로 진로를 틀었다. 드라마, 영화 포스터 촬영을 전담하다시피 했지만 어느 순간 회의가 들었다. "월세 1000만원짜리 강남 스튜디오를 가져야 작가 대접받고 일이 들어오는 구조에 환멸을 느꼈어요. '나만의 것'을 찾다 눈뜬 것이 수중사진인 거죠." 모두가 말리는 일이었다. 의사는 와이진의 심장이 남들보다 가슴 가운데에 있어 흉부압박 심폐소생술이라도 하면 갈비뼈가 심장을 찌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무모한 도전일 수도 있었다.

    "'할 수 없을 거야'라는 말에 반발심이 생기더라. '아시아 애들은 못할 거야' '여자는 어려워' 같은 얘기가 나오면 더 오기가 났다. 단점을 숨길 게 아니라 과감히 드러내 많은 사람과 함께 문제를 풀어가고자 했다."

    ―해녀에겐 '물숨'이란 말이 있다.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는 순간 죽는다는 것이다.

    "물의 힘을 알게 되니까 알면 알수록 두렵다. 매일 명상으로 정신 관리를 하고 있다.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다. 우리도 '한 컷만, 한 컷만 더' 하는 순간이 왜 없겠는가. '그 한 컷 이후 네 인생은 없을 수도 있어'라고 되뇌며 카메라를 내려놓는 연습을 한다."

    ―미국 야생동물보호단체의 '상어 보호 프로젝트'에 참여한 첫 아시아 작가로 활약하고 있다.

    "처음 상어를 봤을 때 '살아있어 줘서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우아하게 카메라 앞에서 한 바퀴 돌고 가면서 눈이 마주칠 때의 희열이란! 제주도의 연산호 군락지는 얼마나 환상적인지 아는가? 사람 키만 한 노랑 분홍 형광 빛 연산호가 녹차 밭처럼 펼쳐져 있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아바타'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이 아름다운 바다를 기록해야, 우리 바다가 지금 플라스틱같이 인간이 만든 쓰레기에 얼마나 아파하는지도 알릴 수 있다."

    ―해녀의 행복한 시간을 기록해왔다. 당신에게 행복한 시간은?

    "내가 본 바닷속 경이로움을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매 순간. 나는 기록자이자 메신저다. 더 많은 청년이 더 넓은 시야를 갖고 세상을 향해 도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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