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아름다운 여행자들

조선일보
  • 강정미 기자
    입력 2018.07.13 03:00

    [착한 여행]

    [Cover Story] 자전거 여행하며 쓰레기 줍는 '바이클린'… 이왕 가는 휴가, 더 의미있게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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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를 탄 한 무리 일행이 손잡이에 비닐봉지를 걸고 제주 애월 해안 도로를 따라 달린다. 자전거를 타고 제주를 여행하면서 쓰레기도 줍는 프로그램인 ‘바이클린’ 참가자들이다. 마냥 즐기는 게 아니라 의미를 담아 여행하는 ‘윤리적 여행’이 늘고 있다. /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파란 하늘과 에메랄드빛 바다, 기이한 현무암과 부서지는 파도. 제주의 눈부신 풍경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해안 도로에 한 무리 자전거 행렬이 나타났다. 해안선 따라 234㎞의 자전거 도로 갖춘 제주에선 흔한 모습이지만 뭔가 수상하다. 자전거 탄 사람들 손에 들린 비닐봉지 때문이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저마다 손에 든 비닐봉지엔 쓰레기가 가득하다.

    지난 8일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애월 해안 도로에서 만난 이 수상한 자전거 행렬의 정체는 '바이클린(bike+clean)'이다. 바이클린은 자전거를 타고 제주를 여행하는 동시에 해안 도로의 쓰레기를 줍고 환경을 정화하는 활동. 자전거 여행과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 푸른바이크쉐어링의 아이디어로 지난해 시작됐다. 15명 이상의 단체, 초등학교 5학년생 이상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자전거 행렬을 쫓아 해안 도로를 달리는 동안 해안가에 널브러진 쓰레기와 도로변에 관광객들이 무심코 버린 음료 컵, 빨대 등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20L 쓰레기 봉투를 가득 채우는 건 시간문제였다.

    지금까지 바이클린에 동참한 참가자의 60%가 외지에서 온 여행자다. 이왕 하는 제주 여행, 좀 더 의미 있게 즐기려 쓰레기를 줍고 자전거 타는 수고로움을 자처한다. 푸른바이크쉐어링 김형찬(43) 대표는 "자전거 여행을 할 때마다 해안 쓰레기를 줍다가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할 방법을 고민했는데, 의미 있는 여행을 하려는 분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윤리적 소비(ethical consumption)처럼 여행도 환경, 인권 등 윤리적 가치를 주목하는 '윤리적 여행(ethical travel)'이 주목받고 있다. 조금은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가치 있는 '착한 여행'을 하려는 이가 조금씩 늘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의 시티투어 '착한 여행 하루'는 여행하면서 생기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일회용품 대신 손수건이나 물컵을 가져가야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1시간 이상 걸으면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등 환경을 위한 규칙도 내세운다.

    윤리적 여행은 최근 이름난 관광지마다 겪는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지나친 관광객으로 환경이 오염되고 교통 혼잡, 소음 등으로 거주민들의 삶이 위협받는 현상)'에 대한 반작용에서 비롯됐다. 여행의 자유 뒤엔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생긴 흐름이다. 한양대 관광학부 이훈 교수는 "윤리적 여행의 필요성에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여행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여행이 일상화하면서 남과 다른 특별한 경험, 나만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도 윤리적 여행으로 눈 돌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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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안병현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마르셀 프루스트는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것"이라고 했다. 새로운 눈으로 진정한 여행을 즐기는 '윤리적 여행자'가 늘고 있다

    일회용품은 NO, 손수건·물컵 들고 여행


    '개인 컵과 손수건을 챙기고 일회용품 사용은 자제한다. 음식물은 남기지 않고 쓰레기는 되가져간다. 환경을 훼손하지 않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1시간 이상 걷는다. 기념품은 지역 특산물로, 쇼핑은 전통시장에서.' 경기도 화성의 시티투어 '착한 여행 하루' 이용자들은 지켜야 할 원칙이 많다. 번거로울 법한 여행 규칙에도 매번 조기 예약 마감될 정도로 시티투어의 인기는 뜨겁다.

    몇 가지 원칙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화성의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지키고 지역 경제와 주민을 배려하는 윤리적 여행자가 될 수 있는 만큼 특별하고 의미 있는 여행을 경험하려는 사람이 많다. '착한 여행 하루'는 융건릉과 용주사 등을 둘러보는 '문화의 숨결', 제부도와 국화도 등을 둘러보는 '파도의 숨결' 등 화성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다양한 코스가 있으며 매주 토·일요일 1회씩 진행한다. 참가비의 1%를 기부하는 착한 여행이라는 점도 의미 있다.

    경기도 성남에 사는 주부 이은정(41)씨는 "여행하는 동안 그동안 다니면서 무심코 썼던 일회용품이나 버린 쓰레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며 "작은 불편과 실천만으로 윤리적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걸 온 가족이 함께 체험할 수 있었다"고 했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한옥과 아기자기한 골목이 이어지는 북촌 한옥 마을. 오래된 역사만큼 다양한 이야기와 평화로운 정취를 만날 수 있는 곳이지만 북촌을 찾는 여행자가 지나치게 늘면서 인파와 소음, 버려진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북촌문화센터에서 시작한 '북촌 사람들과 함께하는 성숙한 마을 여행'은 북촌을 여행하는 방법을 다시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다. 북촌을 관광지처럼 짧게 스치듯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북촌 주민들을 배려하고 주민과 함께 대화하며 마을을 천천히 관찰하는 여행이다. 매주 토요일 주민 해설사와 함께 '북촌 탐닉' '북촌 감성' '북촌 산책' '공방 나들이' 같은 주제로 북촌을 둘러본다.

    북촌 마을 여행엔 특별한 규칙이 있다. 여행자들은 '우리는 아름다운 여행자입니다'라는 목걸이를 건다. 이것만으로도 여행하는 자세가 달라진다고 한다. 길을 막거나 소음을 키우지 않기 위해 최대 15명, 소규모 인원으로 여행을 진행한다. 물병과 손수건을 준비한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 환경오염을 막으려는 것이다. 탄소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도보로 이동한다. 사람이 붐비는 곳에선 더욱 주의를 기울여 침묵한다.

    봉사와 기부, 여행의 가치를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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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갯벌 체험을 하는‘착한 여행 하루’참가자들. 여행이 끝나면 쓰레기를 가져간다. / 화성시
    1년에 한 번쯤, 봉사 여행을 떠나는 것도 윤리적 여행자가 되는 방법이다. '어떤버스'는 봉사가 처음인 사람도 어렵지 않게 도전해볼 수 있는 이색 프로그램. 미국의 서프라이즈 봉사 커뮤니티인 '두굿버스(do good bus)'를 모티브로 해 참가자들과 노란 버스를 타고 다양한 곳으로 봉사 여행을 떠난다. 버스마다 가는 곳이 다른데 도착 전까지 봉사 내용과 함께 비밀에 부친다. 이 때문에 '미스터리 봉사 여행' '서프라이즈 봉사 여행'이라고도 한다. 대학생 신유정(22)씨는 "오늘은 어디로 갈까, 무슨 일을 하게 될까 설렜고, 봉사하고 난 뒤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었다"고 했다.

    봉사는 뻔하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는 새롭고 참신한 봉사 프로그램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버스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함께 봉사하며 친구가 되기도 한다. 어떤버스 이범규(29) 대표는 "봉사해보고 싶어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이 많다"며 "재미있는 콘셉트로 더 많은 사람이 봉사에 관심을 갖고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했다.

    어떤버스는 1년에 2번 정규 시즌, 2번 미니 시즌까지 총 4번 진행한다. 2014년 겨울 150명으로 시작해 참가자가 점점 늘어나는 중이다. 올 5월 행사에선 추첨으로 선정한 1650명이 봉사 여행을 떠났다. 잠실 자동차 극장에 노란 20인승 버스 80여 대가 늘어선 진풍경이 연출됐다.

    기부를 위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특별한 여행도 있다. '옥스팜 트레일워커'는 4명이 한 팀이 되어 100㎞를 38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도전 형식 기부 프로젝트다. 1981년 홍콩에서 처음 시작된 이후 12개국 18개 도시에서 진행돼 20만명 넘게 참여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5월 옥스팜 트레일 워커가 시작됐다. 전남 구례군과 지리산 일대에서 올해까지 2번 행사를 치렀다.

    복싱장 동료들과 '송도 인파이터'라는 팀을 꾸려 올해 옥스팜 트레일워커에 도전했던 미술 치료사 김하영(43)씨는 "팀원들과 의지하고 도우며 정신적, 체력적 한계에 도전하고 기부까지 하니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며 "무의미하게 소비하는 여행보다 채워지는 여행이라 더 뜻깊다"고 했다. 김씨는 팀원들과 기부 펀딩으로 390만원을 모았다. 100㎞를 완주한 73팀이 모은 기부금 총 1억5200여만원은 국제 구호 개발 자금으로 사용된다.

    쓰레기 줍고 조깅하기

    지난 7일 오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 '플로깅(plogging)' 행사가 열렸다. 북유럽에서 시작된 플로깅은 스웨덴어로 '줍다(plocka upp)'와 '조깅(jogging)'의 합성어로 조깅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운동을 말한다. 일반 조깅보다 쓰레기를 줍느라 앉았다 일어서는 동작이 하체 근력 운동인 스쿼트나 런지와 비슷해 운동 효과가 높고 환경까지 보호할 수 있어 호응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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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부터‘우리는 아름다운 여행자입니다’라고 쓰인 목걸이를 걸고 북촌을 둘러보는 ‘북촌사람들과 함께하는 성숙한 마을여행’, 지난 5월 전남 구례에서 열린 ‘옥스팜 트레일워커’,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 ‘플로깅’을 하고 있는 참가자들. / 문화다움·옥스팜 코리아·봄나래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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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버스’는 행선지와 내용을 알려주지 않고 떠나는 미스터리 봉사 여행. 노란색 어떤버스 앞으로 탑승을 기다리는 참가자들이 줄 서 있다. / 어떤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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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 농가 활성화를 위해 수확 체험을 하는‘착한 여행 하루’의 참가자. / 화성시
    플로깅 행사를 연 봄나래프로젝트의 박시훈(29) 대표는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고 환경이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문제를 해결하고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며 "플로깅을 통해 혼자보다는 같이, 재미있게 경험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역 청년들의 아이디어를 모아 행사를 열었다"고 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플로깅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한 달에 한 번 부산에서 열리는 플로깅 행사에 참가하는 사람도 조금씩 늘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부산의 플로깅을 알게 됐다는 직장인 최은석(35)씨는 "기회가 된다면 플로깅 행사에 맞춰 부산을 여행하고 싶다"며 "맛집이나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쓰레기도 줍고 운동도 하면서 부산을 의미 있게 여행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취지가 훌륭하다고 해도 재미가 없으면 곤란하다. 한양대 관광학부 이훈 교수는 "윤리, 교육적으로 접근하면 재미가 없고 지속성이 떨어진다"며 "모처럼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게 무거운 주제도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더해 흥미를 유발하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리적 여행을 놀이처럼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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