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근육질 소시지… 향신료의 풍미가 터져나왔다

조선일보
  • 정동현 음식칼럼니스트
    입력 2018.07.13 03:00

    [인생식탁] [정동현의 음식이 있는 풍경] 서울 종각 견지동 '엉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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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클조의 대표 메뉴 더운 모둠 소시지. 데미글라스 소스와 으깬 감자, 두툼한 소시지가 허기진 도시인의 위장을 자극한다./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훌륭한 식당과 형편없는 식당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제각각 천차만별이다. 톨스토이가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 쓴 것처럼 불행한 곳은 그 불행과 결함의 이유가 제각각이다. 음식이 괜찮으면 서비스가 엉망이고 서비스가 괜찮으면 음식이 엉망이다. 혹은 모두 괜찮은데 불결하고, 깨끗하면 다른 모든 게 수준 이하다. 반면 훌륭한 곳은 대체로 비슷하다. 깨끗하고 친절하며 음식이 좋다. 지켜져야 하는 기본이 지켜진다. 그리고 그 기본을 지킬 수 있는 주인장이 늘 그곳에 있다. 장사가 잘된다고, 혹은 잘되지 않는다고, 손님이 없다고, 손님이 많다고 종업원에게 가게를 맡기지 않는다. 서울 종각 견지동 소시지 전문점 '엉클조'도 그렇다. 엉클조가 문을 연 것은 2002년이다. 그 이후 대학 때도, 제대 후에도, 취업 후에도 여러 번 엉클조를 찾았다. 그러나 그곳에 주인장이 없던 날을 한 번도 기억하지 못한다.

    재개발을 겪으며 한 차례 자리를 옮긴 이곳은 종각역에서 5분 거리에 있다. 종로구청과 인사동을 잇는 길옆, 얕은 계단을 밟고 올라 문을 열었다. 반쯤 머리가 벗겨진 주인장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공손하지만 과하지 않은 태도였다. 해가 일찍 뜨고 늦게 지면 근처 회사 직장인들이 초저녁부터 자리를 잡았다. 그 모두를 맞을 때마다 주인장의 인사가 이어졌다. 덕분에 엉클조에 오는 그 어느 누구도 이 집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곳의 주메뉴는 소시지다. 아닌 게 아니라 '엉클조'라는 간판 옆에 작은 글자로 '독일식 수제 소시지 전문점'이란 설명이 달렸다. 이 집 소시지는 호텔 주방에서 근무하던 주인장이 동료 독일인에게 직접 전수받은 레시피로 만든다고 했다. 독일에 온 것처럼 식사부터 안주 모두 소시지 메뉴다. 각종 소시지와 감자가 올라간 식사 메뉴를 제외하고 안주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시키는 것은 '더운 모둠 소시지'다. 덥다는 말은 겸손할 따름이다. 더운 대신 매우 뜨겁게 달군 철판에 소시지 모둠이 올라왔다.

    "뜨겁습니다. 조심하세요."

    그 말과 함께 종업원은 걸쭉한 데미그라스 소스를 소시지 위에 뿌리고 철판 돔을 위에 덮었다. 지글거리는 소리가 맹렬했다. 사격 연습장에서 선임하사가 남은 탄환을 M16을 들고 난사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소리가 가라앉을 때 종업원이 뚜껑을 집어 갔다. 3~4㎝ 크기로 자른 소시지가 수북이 쌓였고 그 옆에 으깬 감자가 놓였다. 짙은 고기 향이 나는 소스에 소시지를 찍어 입에 넣었다. 누가 소시지를 쫀쫀하다고 했던가? 독일식으로 아무 사념 없이, 요령 없이 케이싱 안에 고기를 꽉꽉 집어넣은 소시지는 단련된 병사처럼 근육질이었다. 씹을 때마다 소시지는 결대로 갈라졌고 그때마다 후추니, 회향이니 하는 향신료의 풍미가 늦은 새벽 안개처럼 서서히 입속에서 흩어져 갔다. 간기가 느껴지면 그때마다 으깬 감자를 소스에 섞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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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주와 곁들이기 좋은 엉클조 메뉴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더운 모둠 소시지, 녹차 마늘 소시지, 찬 모둠 소시지./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쾰른에서, 함부르크에서,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났던 감자와 소시지의 조합이 서울에서도 이어졌다. 더운 모둠 소시지가 소시지계의 근대문학이라면 '찬 모둠 소시지'는 현대문학쯤 된다. 세 종류 소시지를 얇게 썰어 쟁반에 둥그렇게 돌려 올리고 얇게 썬 양파, 크래커를 빈 곳에 놓은 이 음식은 입속에 그 어떤 더운 것도 넣기 싫은 날, 도시의 열섬 현상과 뜨겁게 달궈진 북태평양고기압이 서울을 장악할 때 진가를 발휘했다.

    처음이라면 종업원이 친절히 먹는 방법을 설명해준다. 소시지를 넓게 펴고 크래커, 양파, 양배추를 조금 올린 뒤 취향에 맞게 소스를 뿌리고 소시지 쌈을 싸 먹는 게 방법이다. 매콤달콤한 서던 아일랜드 소스, 새콤한 프레시 소스 둘 중 하나만 써도, 둘 다 섞어도 좋다. 입에 넣으니 더운 소시지와 달리 섬세한 식감이 연이어 펼쳐졌다. 소시지는 야들, 양파는 서걱, 양배추는 아삭, 크래커는 바삭거렸다. 손쉽게 한 판을 비울 때쯤엔 독일의 바우하우스가 주창했다는 기능과 형식의 조화라는 명제가 떠올랐다. 그만큼 각 재료의 맛과 모양을 잘 살린 요리다. 조금 더 손맛을 보고 싶다면 녹차마늘소시지를 골라야 한다. 손이 야무진 사람이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동그랗게 철판 위에 도사린 소시지를 작게 잘라 주는 수고가 필요했다. 한국 사람 입맛에 맞췄단 것치고 괜찮은 게 없는데 이 집 녹차마늘소시지는 예외다. 가느다란 소시지 직경 안에 녹차와 마늘 맛이 발에 잘 맞는 군화처럼 야무지게 담겼다.

    그리고, 마지막은 맥주 한잔이었다. 가장 싼 생맥주를 시켜도, 한국에서 유일하게 이 집만 취급한다는 독일 '비트 맥주'를 시켜도 늘 후회가 없다. 어떤 맥주를 시켜도 잡맛을 찾기 어려웠다. 올라오는 거품은 조밀했다. 목구멍 뒤쪽에 남는 호프의 풍미는 봄나물처럼 향기로웠다. 그 뒤에는 주인장이 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깨가 살짝 굽은 평범한 중년 남자가 있었다. 그러나 주인으로 주인처럼 주인답게 사는 남자였다. 이제 보기 드문 남자였다.

    엉클조: 더운 모둠 소시지(대·2만7000원), 찬 모둠 소시지(대·2만7000원), 바비큐 소시지(대·2만7000원), 녹차마늘소시지(2만7000원), 생맥주(475mL, 4500원). (02)734-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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