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낯선 남자의 다짜고짜 대시… 너한테만 그러는 거 아니거든!

조선일보
  • 이주윤·작가
    입력 2018.07.13 03:00

    [가자, 달달술집으로]

    가자, 달달술집으로 일러스트
    이주윤
    커피숍 창문에 얼비치는 제 모습을 힐끗힐끗 쳐다보는 친구에게 만날 보는 얼굴 뭐가 그렇게 궁금해서 자꾸만 들여다보느냐고 핀잔을 줬다. 그녀는 "나 뭐 달라진 거 없어?" 하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숨은그림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친구의 외양을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어디가 변했다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여기 봐봐, 여기." 정답을 알려주겠다는 듯 내 눈앞으로 들이민 그녀의 정수리에는 하얗게 센 머리카락 몇 가닥이 뾰족 돋아나 있었다. 새치 좀 난 걸 가지고 웬 호들갑이람? 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자 그녀는 내일모레 관 뚜껑을 닫고 들어가기라도 할 것처럼 죽상을 지으며 말했다. "이게 바로 노화의 시작이야. 이래 가지고 어디 남자나 만나겠느냐. 더 늦기 전에 남들처럼 관리해야겠어."

    급한 대로 흰머리를 싹 뽑아 버려야겠다며 화장실에 갔던 그녀가 난데없이 회춘하여 돌아왔다. 싱그러운 웃음이 번진 그녀의 얼굴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열 살은 더 어려 보였다. "뭐야, 갑자기?" 고개를 갸우뚱하며 미소의 근원을 묻는 나에게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러했다.

    화장실 입구에서 웬 남자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었단다. 카페에 앉아 계신 걸 봤다, 그쪽이 마음에 든다, 연락처를 알고 싶다. 대뜸 휴대폰을 내밀더란다. 손사래를 치며 한사코 거절했지만 끈질기게 쫓아오는 탓에 못 이기는 척 전화번호를 알려줬다나 뭐라나. 못마땅한 목소리로 "잘생겼어?" 하고 내가 묻자 그녀는 나를 속물 취급하며 거북이를 닮기는 했으나 그게 뭐 대수냐고 반박했다. 한껏 달아오른 그녀에게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더는 대꾸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나는 그 사람이 별로다.

    낯선 남자가 다가와 연락처를 물으면 가슴이 설레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많고 많은 사람 중 우리 둘이 이렇게 우연히 만나 인연을 맺게 되다니. 이건 운명이야! 영화 속 여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에 휩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과 여러 번 만나고 헤어져 본 지금은 생각이 바뀌어도 확 바뀌어버렸다. 도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었으면 스치듯 지나가는 여자를 붙잡고서 다짜고짜 전화번호를 달라고 할까? 섣불리 결단 내리기에는 표본이 다소 부족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부류의 남자는 여자를 무지하게 밝히는 것은 물론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충동적인 성향의 소유자이며 자기가 되게 멋있는 줄 아는 '왕자병' 말기 환자임이 분명하다고 나는 강력히 주장하고 싶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서 그 카페를 찾은 나는 친구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화장실에 가는데 웬 거북이처럼 생긴 남자가 나를 따라와 연락처를 물은 것이다. 나는 그에게 내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대신 그의 명함을 요구하며 추후에 연락을 드리겠노라 말했다. 그러고는 친구에게 재깍 전화를 걸어 이 거북이와 그 거북이가 같은 거북이인지 전화번호를 대조해 보았다. 그 결과는요! 역시 동일한 거북이의 소행인 것으로 판명이 나고야 말았다. 친구는 기가 막혀 헛웃음을 치다가 돌연 노여워하며 울분을 토하다가 이내 몹시 속상했는지 울먹거렸다. 나는 그런 친구를 달래주기 위해 위로의 말을 건넸다.

    "너 다행인 줄 알아. 만약에 그 남자랑 만났으면 속 썩어서 폭삭 삭았을걸? 그런 양아치랑 안 엮이는 게 세상에서 제일 효과 좋은 노화 방지야. 내 말이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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