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그냥 유명해지고 싶어서

조선일보
  • 김봉현·힙합저널리스트
    입력 2018.07.12 03:01

    김봉현·힙합저널리스트
    김봉현·힙합저널리스트

    그라피티(graffiti)는 뉴욕에서 발생한 시각 예술이다. '낙서'와 관련 있고 '거리'와 뗄 수 없다. 그라피티는 기존 질서와 가치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그라피티 라이터들은 벽, 지하철 등에 이름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메시지를 새겼다. 필요한 건 스프레이뿐이었다. 관습에 얽매이지 않았고, 윤리적 틀에서 자유로웠으며 무엇보다 '어린'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오해는 말자. 그라피티는 '예술가의 고결한 태도'나 '정의 구현의 막중한 사명감' 따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라피티는 또래 문화·놀이 문화의 성격이 강했다. 한마디로 '중2병 녀석들의 공명심 배틀'이었다. 초창기 라이터들은 무엇보다 명성을 원했다. 또래들 사이에서 자기가 가장 눈에 띄고 유명해지는 것이 목표였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지하철에 그라피티를 그리려 했고, 남보다 최대한 더 크게 그리려고 노력했다. 여기서 '홀 트레인(Whole Train)' '도시 점령(All City)'이란 개념이 나왔다. 뉴욕의 모든 자치구에 자신의 그라피티를 새긴 자는 '도시 점령 왕(All City King)'이 되어 또래 사이에서 '짱'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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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존재감을 떨치기 위해 기꺼이 위험도 감수했다. 지하철 칸과 칸 사이에 매달려 그라피티를 그리며 감전과 추락의 위험도 불사했다. 심지어 경찰차에 그라피티를 그리다 잡혀간 이도 있다. 그라피티를 다룬 한 다큐멘터리 제목이 '그냥 유명해지고 싶어서(Just To Get A Rep)'란 점은 상징적이다. 나는 이 같은 그라피티의 기원이 무척 흥미롭다. 동시에 조금 애처롭다. 자산을 소유해야 정체성을 얻는 사회에서 그라피티는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청소년의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라피티와 함께 겹쳐지는 건 현재의 인터넷 문화다. 인터넷에 떠다니는 수많은 '치기'를 이런 관점으로 이해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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