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보수당 거물 존슨의 브렉시트 반란… 메이 정권 위기

조선일보
  • 정시행 기자
    입력 2018.07.11 03:01

    주무 부처 장·차관 이어 존슨 외무 "총리案은 똥에 분칠" 사퇴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는 브렉시트(Brexit)를 국민투표로 결정한 지 만 2년이 지나도록 극심한 내부 갈등과 혼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테리사 메이 총리가 지난 6일 '온건한 브렉시트' 계획안을 발표하자, 주무 부처인 브렉시트부의 데이비드 데이비스 장관과 스티브 베이커 차관이 8일 반발해 사퇴한 데 이어, '차기 총리 1순위'로 꼽혀온 스타 정치인 보리스 존슨 외무장관도 9일 메이를 맹비난하며 사표를 던졌다. 존슨을 따라 다른 장관이나 보수당 유력 의원들이 추가 이탈할 경우 메이 총리가 낙마할 수도 있다.

    영국판 트럼프 "똥에 분칠하나"

    영국 정부가 지난 6일 발표한 '이혼 계획서'는 '소프트 브렉시트(soft brexit·충격을 줄이는 연착륙식 이탈)'였다. EU에서 탈퇴는 하되 비회원국으로서 EU 단일시장에는 남아 자유로운 통상 관계를 유지하면서 분담금 등 어느 정도 회원국의 의무를 수용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2016년 영국 국민투표로 브렉시트를 결정한 뒤 새로 꾸려진 보수당 내각에서 테리사 메이 총리(맨 오른쪽)와 보리스 존슨 외무장관(가운데), 데이비드 데이비스 브렉시트부 장관(맨 왼쪽)이 런던 총리관저에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2016년 영국 국민투표로 브렉시트를 결정한 뒤 새로 꾸려진 보수당 내각에서 테리사 메이 총리(맨 오른쪽)와 보리스 존슨 외무장관(가운데), 데이비드 데이비스 브렉시트부 장관(맨 왼쪽)이 런던 총리관저에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두 장관은 메이 총리가 EU 단일 시장 잔류를 내용으로 한‘소프트 브렉시트’계획안을 내놓자 반발하며 8~9일 잇따라 사퇴했다. /AFP 연합뉴스
    보수당 내 '하드 브렉시트(hard brexit·EU와 확실히 단절하는 경착륙식 이탈)'파(派)는 뒤집어졌다. 존슨 전 장관은 "영국의 꿈이 (자립하지 못할 것이란) 자기 불신에 질식돼 죽어간다" "유럽에 백기투항한 것" "똥에 분칠하는 것(polishing turds)"이라고 맹비난했다. 메이 총리는 즉각 자신의 측근들을 후임 장관에 임명하며 '내각 지키기'에 나섰다.

    존슨은 대영제국의 부활을 설파하는 보수주의자로 인종·성차별적 발언과 화려한 쇼맨십 때문에 '머리숱 많은 영국의 트럼프'로도 불린다. 2016년 브렉시트를 이끈 주역이면서도 총리직을 고사했는데, 혼란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언론들의 9일 헤드라인을 장식한 것도 존슨이었다. 진보 언론들은 "메이가 반란군을 제압했다"(가디언), "수치를 모르는 존슨이 메이의 등에 칼을 꽂았다"(더미러)고 한 반면 보수지들은 "영국의 꿈이 죽었다"(더타임스), "존슨이 위선을 박차고 나왔다"(텔레그래프)며 두 쪽으로 쪼개졌다.

    메이, 충격 줄이려 '반쪽 이혼' 선택

    당초 브렉시트는 영국이 EU와 정치·경제적 관계를 완전히 끊는 '하드 브렉시트'로 이해됐다. 그런데 브렉시트 투표 때 '찬성 52% 대 반대 48%'로 갈렸던 여론은 시간이 지나면서 미세하게 바뀌었다. 경제성장률이 0%대로 떨어지고 물가가 폭등했다. 다국적기업들은 경제 고립을 우려해 공장과 본사를 해외로 이전하겠다고 나섰다. 국민들은 법·질서 변화와 미래에 대한 불안에 휩싸였다. 영국 언론들은 이를 '브렉시트혼란증후군(BDS)'이라고 불렀다.

    2017년 총선에선 '브렉시트 번복' '최소한의 브렉시트'를 내건 소수 야당들의 선전으로 집권 보수당은 과반에 실패했다. 이에 메이 총리는 EU 분담금 납부 의무나 규제를 어느 정도 감수하고서라도 단일시장에 남는 '소프트 브렉시트'로 선회했다. 이번 계획안에 따르면 영국과 EU 회원국 국민 간 전면적인 거주·이동의 자유는 종료하되, 학업·근로를 위한 이동은 허용키로 했다. '재정에 부담을 주는 EU 분담금을 내지 말자' '중동 난민이나 못사는 유럽인들을 받아들이기 싫다'는 당초의 브렉시트 취지가 후퇴한 셈이다.

    대영제국 자존심이냐, 유럽 흡수냐

    영국 내 유럽 통합을 둘러싼 분란은 오래된 일이다. 1973년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CC)에 뒤늦게 가입할 때도 수년간 논란과 국민투표 끝에 간신히 이뤄졌다. 1990년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유럽 통합에 반대하다 실각한 것이나 2002년 유로화 도입에서 영국이 파운드화를 고수하기로 한 것도 그런 갈등의 산물이다.

    영국은 의회 민주주의의 발상지이자 산업혁명과 시장 자본주의의 종주국, 자유주의의 성지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일명 '위대한 고립(splendid isolation)'의 정서다. 따라서 근대까지 제정(帝政)을 경험했고 사회주의·복지국가 전통이 강한 독일·프랑스 주도의 유럽 대륙 일원으로 편입되는 데 거부감이 컸다. 유럽통합 이후 자유 무역과 인적 교류로 큰 경제성장 효과를 누렸으면서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EU의 각국 고위 관료들이 영국의 주요 정책까지 결정하는 데 반발해왔다. 그러나 반세기 가까이 이어진 유럽 통합 체제에 익숙한 젊은 세대나 진보층, 자유무역주의자들은 브렉시트에 따른 경제 고립과 일자리 축소를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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