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독거노인 마지막 길 지킨 경찰들

조선일보
  • 안상현 기자
    입력 2018.07.11 03:01

    경찰, 신변보호자 癌 투병 소식에 병원비 모금하고 장례식도 치뤄

    지난 7일 오후 8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국립서울의료원 장례식장. 탈북민 고(故) 김지환(가명·78)씨의 빈소를 건장한 남자 5명이 지키고 있었다. 상주(喪主) 이름은 '강남경찰서'였다.

    탈북독거노인 마지막 길 지킨 경찰들
    북한 원산이 고향인 김씨는 2008년 68세에 탈북해 2010년 한국에 들어왔다. 북한에 있을 때는 원산예술전문학교에서 영사기를 관리했다고 한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몰래 보는 것이 취미였다. 허장강, 김희갑 같은 한국 배우를 좋아했다. 그는 "죽기 전 영화 속 남조선(한국)을 보고 싶었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혼자 지냈다. 20㎡(6평) 임대주택에서 TV를 보고 가끔 교회나 동네 복지회관에 나갔다. 함께 탈북했던 아내와 딸은 중국에 남겠다고 한 후 소식이 끊겼다. 지난 3년간 김씨의 신변 보호와 정착 지원을 도와온 강남서 보안과 소속 양모 경위는 "김씨가 고령에 탈북해서 일을 하거나 사람을 사귀기가 쉽지 않았다"며 "얼굴을 뵈면 옛날 한국 영화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2017년 11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소식을 들은 강남서 보안과 경찰들이 돈을 모아 병원비를 보태기 시작했다. 8개월간 투병한 김씨가 지난 7일 숨지자 경찰들이 상주가 되고 장례비를 냈다. 이렇게 병원비·장례식비로 든 돈이 그간 770만원쯤 된다고 한다.

    경찰들은 "우리를 유일한 가족으로 여겼는데 마지막 가시는 길을 무연고자(無緣故者)로 보낼 수 없었다"고 했다.

    김씨는 세상을 뜨기 전 "소식이 끊긴 가족을 생각하면 한스럽지만 한국에 온 걸 후회하진 않는다"며 "구청이나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무료 문화 공연에 가던 순간들이 제일 행복했다"고 했다. 양 경위는 "기초생활수급자로 경제난에 시달리며 살았는데도 '부족한 게 없다'며 도움을 거절하시던 분"이라며 "평소 통기타 연주를 잘해 주민복지회관에서 연주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9일 발인을 마친 김씨의 유해는 경찰들이 돈을 모아 마련한 경기도 파주의 한 추모공원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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