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 들어가는 도심 제조업 살리기… 서울시 '불통 행정'에 첫발부터 흔들

조선일보
  • 구본우 기자
    입력 2018.07.11 03:01

    시, 성북구 월곡동·중구 예관동 제조업체 집약시설 사업지로 선정

    서울시가 수천억원대 예산을 책정한 사업이 첫발도 떼기 전에 주민 반발에 표류하고 있다. 도심에 제조업 거점을 만들겠다는 '스마트앵커' 사업이다. 주민들과 충분한 협의 없이 아파트나 학교 인근을 부지로 선정해 '불통(不通) 행정'이라는 비판이다. 애초에 도심에 제조업을 들인다는 정책이 '보행 친화 도시'를 내세운 시의 기본 방향과 상충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월 서울시는 2022년까지 일자리 6만여 개를 만들겠다며 '혁신성장 프로젝트'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도심에 지상 7층 규모 건물 '스마트앵커'를 지어 같은 업종 제조업체끼리 모으는 사업이 포함됐다. 봉제·수제화·주얼리 등 제조업체 1000개를 20개 동에 나눠 입주시켜 제조업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건물 20개 동의 건축비만도 3120억원이 들어간다. 부지 매입비와 시설 설치비를 합하면 최소 수십억원이 추가로 필요하다.

    시의 구상은 시범 사업지로 선정된 성북구 월곡동에서부터 주민 반발에 부딪혔다. 예산 200억원을 책정한 성북구의 봉제업 스마트앵커 부지는 월곡동 공영주차장 자리다. 10m 인근엔 아파트 단지와 단독주택이 몰려 있다. 일신초등학교, 서울사대부설중·고등학교 등 교육 시설도 많다. 북부간선도로와 내부순환도로 진입로가 있는 상습 교통 정체 구간이다. 일대 주민들은 지난 5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성북구청과 서울시청을 방문해 '스마트앵커 건립 반대'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제조업 시설이 들어서면 차량 통행량이 늘어나 아이들의 등·하굣길 안전이 위협받는다"며 주민들과 협의 없이 이뤄진 결정에 반대하고 있다. 주민들은 "구청이 주민들 의견은 듣지도 않고 일방 통보식으로 진행했다"며 항의했다.

    성북구와 같이 시범 사업지로 선정된 중구 예관동 부지도 제조업이 들어서기에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예관동 세운상가 뉴타운재정비촉진지구 내에는 인쇄업 거점이 들어설 예정이다. 부지에서 20m 떨어진 거리에는 덕수중학교가, 70m에는 어린이공원이 있다. 바로 앞 4차선 도로는 길가에 세워둔 화물차량 때문에 교통 정체가 심하다. 중학생 아이를 둔 인근 주민 정모(44)씨는 "더 복잡하고 위험한 동네가 되는 건 아닐까 두렵다"고 했다.

    제조업이 활성화하려면 차량이 손쉽게 드나들어야 한다. 서울시는 지난 2013년부터 '걷기 좋은 도시' 정책을 펴왔다. 보행로가 늘어나면서 차도가 줄자 기존 제조업자들은 어려움을 겪었다. '서울로 7017'이 세워지면서 남대문시장과 만리동 봉제공장 밀집 지역 간 교통편이 단절돼 만리동의 소규모 제조업자들은 동네를 떠나야 했다.

    시는 올해 스마트앵커 사업을 추진할 신규 대상지 신청을 받고 있지만, 마감을 불과 열흘 앞둔 10일 현재 신청한 자치구가 한 곳도 없다. 성북구 사례에서 드러난 주민들의 반발에 거부감을 가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시는 "서울의 소규모 제조업체를 한곳으로 모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며 사업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마감일인 오는 20일까지 신청 자치구가 없으면 추가 공모에 들어가게 된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IT 업종과 같은 지식 집약적 산업이 아니라면 일반적인 제조업은 서울 외곽에서 이뤄지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라며 "굳이 시내에서 제조업을 하도록 재정을 투입하려면 충분한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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