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글로 쓰는 음악

조선일보
  • 정준호 카카오 '정준호의 카멜롯' 운영자
    입력 2018.07.11 03:01

    정준호 카카오 '정준호의 카멜롯' 운영자
    정준호 카카오 '정준호의 카멜롯' 운영자
    "원래 글 쓰는 사람인 줄은 알지만 방송을 너무 못한다."

    올 초 내가 진행하던 라디오 게시판에 올라온 청취자 소감이다. 이 말이 방아쇠가 돼 나는 지난 5월, 11년 동안 맡았던 디제이(DJ)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왔다. 처음 클래식 방송을 시작했을 땐 무척 기뻤다. 11년 만에 그만두기로 했을 땐 더 좋았다. 말린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몇몇은 축하한다, 부럽다고도 했다.

    만용을 부린 덕에 나는 이제 진짜 하고 싶은 일만 하게 됐다.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살았던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 미칠 바는 못 되지만, 언젠가는 홀연 사라지는 흑마술도 익히고 싶다. '방송을 못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의견도 꽤 있었지만 나를 자극한 것은 '원래 글 쓰는 사람'이란 말이었다. 예전에 책 서너 권을 냈던 나는 방송하면서 한 권도 더하지 못했다. 대신 하루살이 원고를 매일 서너 장씩 써서 마이크를 벗 삼아 읽었다.

    사실 가까스로 언어의 한계를 벗어난 음악을 다시 글로 옮긴다는 것 또한 만용이다. 그러나 기막히게 해낸 사람들이 있다. 니체는 음악이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호기롭게 제시했다. 소설가 토마스 만은 아예 작곡가의 머릿속에 들어앉았다. 이런 사람들을 앞에 놓고 음악 칼럼을 쓴다니 또 걱정이다.

    [일사일언] 글로 쓰는 음악
    내 책을 두 권 내고는 문을 닫은 출판사도 있고 아직 초판을 파는 곳도 있다. 놀랍게도 초판 재고를 안은 그 출판사에서 개정 증보판을 내자는 연락이 왔다. '20세기 음악의 차르'라 불리는 스트라빈스키의 평전이다. 이러다 정말 스트라빈스키만 듣느냐는 말을 들을 판이다.

    그러나 초판을 판다는 것이 클래식의 숙명이다. 냄비처럼 끓었다가 식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아직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말이니. 궤변이 되지 않게 그저 최선을 다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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