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팔리는 사진집… 열혈 독자 1000명 믿고 30년 버텼죠

조선일보
  • 이한수 기자
    입력 2018.07.11 03:01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

    30년간 사진 책만 냈다. 안 팔리는 다큐멘터리 사진집만 고집한다. 베스트셀러는 한 권도 없다. "일하는 사람은 두 종류예요. 일해서 돈 버는 사람, 일하되 돈 안 벌리는 일만 하는 사람. 하하!" 눈빛출판사 이규상(58) 대표는 "먼저 낸 책 팔아 다음 책 낼 수 있으면 된다"며 웃었다.

    올해 설립 30주년이다. 1988년 8월 열화당 편집자를 그만둔 스물여덟 살 청년은 여균동·정진국·이영준과 함께 그해 11월 사진 전문 출판사를 차렸다. 역사와 삶을 사진으로 기록해 후세에 남겨야 한다는 거창한 사명이 있었다. 동업 셋은 곧 영화감독·미술평론가 등으로 제 갈 길 찾아 갔다. 서울예대 문창과 나와 소설 습작하던 문학청년만 여전히 사진을 붙들고 씨름 중이다. 창업하던 해 결혼한 아내 안미숙(56)씨가 편집장으로 합류했다. 편집 일 돕는 딸과 가족 아닌 '진정한' 직원 한 명이 전체 출판사 식구다. 매출은 3억원. "세무서에서도 이게 사업체인가 여길 정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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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상 눈빛출판사 대표는“예전엔 경영 능력 없다는 소릴 들으면 화가 나기도 했는데 요즘은 바로 인정한다”고 했다. 이 대표가 사진 자료를 들어 보였다. /이진한 기자
    규모는 작아도 독보적 영역을 개척했다. 한국 근·현대사를 사진으로 정리하는 '눈빛 아카이브' 시리즈는 식민지와 전쟁이라는 엄혹한 현실에서 당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진집이다. 강화도조약부터 강제병합까지 정리한 '개화기와 대한제국'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미군정 3년사' '한국전쟁' 등을 속속 출간했다. 이 대표는 "역사의 행간에 묻혀버린, 역사의 수레바퀴에 끼인 사람들의 모습"이라며 "사진은 백 마디 말보다 사실과 실상에 훨씬 가까이 접근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600종을 냈다. 첫 책 '북녘 사람들'은 프랑스 사진가 크리스 마커가 1958년 찍은 북한 모습을 담은 사진집. 1987년 민주화 이후 북한 제대로 알기 바람이 분 덕분에 3000부 팔리는 '대박'을 쳤다. 나름 베스트셀러도 있다. 김기찬 사진집 '골목 안 풍경 전집'이 7000부, 이경모 사진집 '격동기의 현장'이 1만 부 팔렸다.

    이 대표를 만난 서울 상암동 눈빛 사무실엔 그동안 낸 사진집과 사진 자료로 가득했다. 근·현대 모습을 담은 사진을 계속 모으는 중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데, 일단 두 말 반은 모은 것 같다"고 했다. 국내외 경매와 헌책방을 찾아다니고, 남이 버린 옛 졸업 앨범도 주워온다. 지금은 6·25전쟁 직후 삶을 들여다보는 사진집 '1950년대'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편집자의 안목으로 사진에 맥락을 부여해 책으로 남기는 작업입니다. 지금은 안 팔려도 앞으로 3~4대 지나면 보물이 될 겁니다."

    출판계는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데 눈빛출판사는 '불황'을 모른다. 이 대표는 "마니아 독자가 500~1000명은 있다. 다품종 소량 생산이다. 이미 낸 책은 안 팔려도 미련 갖지 않는다. 베스트셀러 욕심 냈으면 벌써 망했을 것"이라고 했다. "금전적 보상이 행복감을 줄 수는 없어요. 몰두할 일이 있으니까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몰라요."

    오는 11월 7일부터 2주간 강남 스페이스 22에서 '30주년 북 페어'를 연다. "단일 출판사 최초의 '북 페어'일걸요. 재고가 많거든요. 하하!" 이 대표는 "출판 시장의 힘은 전문 출판에서 나온다. 각 영역에서 깊이 있게 연구한 결과를 책으로 내는 게 결국 출판의 힘"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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