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사랑의 말'이라던 스승의 열정이 그립다"

입력 2018.07.11 03:01

'김현 평전' 낸 평론가 박철화

문학평론가 박철화(53)가 평전 '김현'(에피파니)을 냈다. 4·19세대의 문학을 대표하는 비평가인 김현(1942~1990)의 삶과 문학을 재조명한 평전이기도 하고, 제자인 박철화가 젊은 날을 되돌아본 정신적 성장기이기도 하다.

김현은 서울대 불문과 교수를 지내며 프랑스 문학 이론을 한국 문학에 접목시킨 비평가였다. 간결하고 섬세한 한글로 비평 언어를 구사하면서 텍스트의 숨은 의미를 찾아내는 분석으로 이름이 높았다. 박철화는 1983년 서울대 불문과에 입학해 김현의 강의를 들으며 문학에 입문했다. 스승의 권유로 글쓰기를 시작해 1989년 월간 '현대문학' 추천을 받아 비평가의 길을 걷게 됐다. 김현이 등단시킨 마지막 제자였고, 스승이 타계하기 한 달 전까지 곁에서 간병했다.

박철화는“김현의 문학 비평은 텍스트에 흐르는 언어의 물길을 터서 멀리 가도록 했다”고 회상했다.
박철화는“김현의 문학 비평은 텍스트에 흐르는 언어의 물길을 터서 멀리 가도록 했다”고 회상했다. /남강호 기자
―스승을 기리는 제자의 글을 보기 어려운 시대에 책을 냈다.

"오늘날 문학의 지위가 낮아졌다. 문학에 실망할 때마다 김현 선생님 글을 다시 읽으면 생명의 샘처럼 문학의 재미와 호기심과 애정이 되살아난다. 선생님은 제 문학의 원천이다. 삶의 태도와 삶을 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많이 미쳤다. 선생님을 통해 다시 한 번 글 쓰는 에너지를 얻자는 심정으로 쓴 책이다."

―김현의 문학 비평이 지닌 특징은?

"선생님은 문학을 '사랑의 말'이라고 봤다. 그분은 '천국의 도서관'에서 끊임없이 보내주는 말을 잘 수신할 수 있는 안테나를 지녔다. 비평가로서 자신의 의식과 시인·작가의 의식이 만나서 또 다른 말을 만들어내는 생성의 과정을 즐겼다. 비평은 먼저 의미를 규정해놓고 작품을 해석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선생님은 텍스트 안에 있는 말의 가능성을 끌어내 그것이 만들 수 있는 최대치의 멋진 '말들의 풍경'을 보여줬다."

―김현은 문인들과의 만남도 비평 활동의 연장으로 봤다.

"원고료가 생기면 문인들에게 술 사는 데 다 썼다. '사랑의 말'이 너무 좋아서 새로운 말과 이미지를 찾아 '말의 축포'를 터뜨리는 일을 좋아했다. 말의 축제, 그러니까 시집 '고통의 축제'를 낸 정현종 시인을 좋아했다. 소설가 이청준과는 같은 전라도 사람끼리 통하는 데가 많았다. 단 한 권의 책을 고른다면 이청준의 소설 한 권을 갖고 가겠다고 한 적도 있다."

―김현 비평의 문체가 매력적인 까닭은.

"선생님 나이 40대 무렵부터 문장이 짧아지고 훨씬 시적(詩的)으로 변하면서 관념어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여백을 통해 말이 지닌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중요한 건 그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말들의 풍경'이 변한다는 것이다. 얼마 뒤 다시 읽으면 새로 보이는 게 많았다."

―김현이 병상에서 보낸 때를 어떻게 기억하나.

"선생님은 병석에 누워서도 책을 읽었다. 힘이 달려 신간을 읽지 못해 안타까워했다. 죽음의 공포를 드러내거나 절망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담백한 용기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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