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학생은 없는 전교조 연가투쟁

입력 2018.07.11 03:13

박세미 사회정책부 기자
박세미 사회정책부 기자
"(우리는) 지식 판매원, 입시 기술자로 내몰렸다. 누가 우리더러 스승이라 부르는가? (중략)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를 따르는 학생들의 해맑은 웃음과 초롱초롱한 눈빛,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1989년 5월 28일 서울 연세대 도서관 앞. 교사 2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전국교직원조합이 '창립 선언문'을 발표했다. 경찰이 한양대·건국대 등을 봉쇄하자 긴급히 장소를 옮겨 가진 단출한 결성식이었다. 실제 전교조는 출범 초 열성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촌지 거부 운동' '체벌 금지' '교실 붕괴 방지 대책' 등 다양한 교육 운동을 펼쳐 많은 학부모의 박수를 받았다.

그런데 30년 후 다른 모습이 우리를 맞는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 전교조 교사 2000여명이 벌인 연가(年暇) 투쟁에서 참석자들은 한(恨)이 서린 듯한 말들을 쏟아냈다. "우리는 이미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중환자" "오늘 자른 이 머리칼이 당신(대통령)을 졸라매는 사슬이 될 것" "내 몸을 갉아서 대통령 결단을 촉구한다"…. 교사 40명은 현장에서 삭발식도 가졌다.

이날 연가 투쟁은 '법외 노조 통보'를 문재인 대통령이 직권으로 취소하라고 주장하며 벌인 것이다. 지난해 12월에도 같은 요구를 하며 연가 투쟁을 벌였다. 작년 6월에는 민주노총 주최 총파업에 동참하는 연가 투쟁을 가졌다. 박근혜 정부 시절엔 국정 역사 교과서 반대,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공무원연금 개혁 반대 같은 반(反)정부 주제로 대규모 연가 시위를 벌였다. 1999년 이후 이런 식으로 전교조가 벌인 크고 작은 연가 투쟁만 줄잡아 20건에 이른다. 1년에 한 번 연가 투쟁을 벌인 꼴이다.

역설적인 건 이 많은 연가 투쟁 가운데 전교조가 학생과 참교육을 위해 벌인 시위는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공무원연금법이나 사립학교법 개정, 교원평가제나 성과급제 반대 같은 '기득권 지키기' 투쟁이 대부분이고 지난해부터는 노조 지위를 임의로 회복해달라는 '떼쓰기'를 하고 있다.

우리 학생들이 처한 교육 현실이 연금·교원평가제나 법외 노조 문제보다 덜 심각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전교조가 사교육비와 대학 입시제도 개편 같은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투쟁'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다.

전교조 교사들은 근래 이 땅의 참교육을 위해,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위해 진지하게 행동하고 목소리를 높인 적이 있는가. 오직 기득권을 위해 서울 시내 한복판을 점거하고 가시 돋친 말로 정부를 위협하는 자신들을 학생들이 '참교육, 참스승'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전교조가 법외 노조 철회 투쟁을 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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