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브렉시트…강경파 줄사표에 흔들리는 '메이 총리' 리더십

입력 2018.07.10 14:08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선호하는 온건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협상) 방안에 불만을 표시했던 보리스 존슨 외무장관이 9일(현지시간) 전격 사퇴했다. 메이 총리가 ‘소프트 브렉시트’안을 내놓은 지 불과 이틀 만에 브렉시트를 담당하는 부처인 브렉시트부의 데이비드 데이비스 장관에 이어 두 장관이 연이어 사퇴의사를 밝히면서 브렉시트를 둘러싼 갈등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메이 총리가 내세우는 소프트 브렉시트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후에도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 남을 수 있도록 하는 탈퇴 방식이다. 반면 보리스 장관 등이 주장하는 ‘하드 브렉시트’란 EU로부터 국경통제권, 사법권의 완전 탈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브렉시트의 방식을 둘러싸고 정부 내에서도 뚜렷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메이 총리을 향한 사퇴 압력도 커지는 형국이다.

메이 총리와 보리스 전 장관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조선일보 DB
◇ 메이 총리 “브렉시트 후에도 EU와 관세동맹”

발단은 메이 총리가 지난 6일 지방관저에서 열린 회의에서 농산품 상품 교역을 위한 자유무역지대 설치, 금융 분야의 협정 추진, 영국-EU간 거주 이동 체계 재정립, 관세협정 추진 등을 담은 소프트 브렉시트 안을 내놓으면서부터다.

메이 총리는 “공산품과 농산물에 대한 일반 규정서와 기업 친화적인 새로운 관세 모델을 만들어 EU 기준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무역협정도 체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메이 총리는 그동안 브렉시트 뒤 EU 시민의 영국 유입을 막기 위해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을 이탈하는 ‘하드 브렉시트’를 주장해왔으나 입장을 바꿨다. 기업들이 잇따라 영국에서 철수 의사를 밝히는 등 하드 브렉시트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 英보수당 갈등 표면화…브렉시트 강경파 장관들 줄사표

메이 총리의 발표 직후 브렉시트부의 데이비스 장관과 스티브 베이커 차관이 동시에 사임 의사를 밝혔다. “메이 총리의 방침대로라면 EU와의 협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표면적인 이후였다. 그리고 두 장·차관이 사직서를 쓴 지 15시간 만에 존슨 장관까지 사표를 던지면서 영국 정치권은 혼돈에 빠졌다. 브렉시트의 방향을 두고 정부 방침이 2년 넘게 오락가락하던 마당에, 메이 총리의 리더십은 크게 흔들리게 되면서 브렉시트 협상 방향이 또다시 바뀔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영국 총리실은 보리스 장관의 사퇴 직후 “총리는 오늘 정오에 존슨 장관의 사의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한 배에 탈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존슨 장관은 EU로부터의 완전한 탈퇴를 의미하는 하드 브렉시트를 신봉해온 강경파로 전날부터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거취를 고민해왔다.

존슨 외무장관 등이 줄줄이 사퇴한 것은 이들이 메이 총리의 소프트 브렉시트안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영국이 EU 법에 속박되지 않는 ‘진짜 독립국가’를 만들려면 EU 단일시장에서 탈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보리스 장관 후임엔 ‘EU 잔류파

메이 총리는 데이비스 장관과 베이커 차관이 사임하자 곧바로 유럽통합에 반대 목소리를 높여온 도미닉 랍(44) 주택부 차관을 브렉시트부 장관에 임명하며 수습을 시도했다. 반(反) EU 색채가 뚜렷한 랍의 브렉시트부 장관 임명으로 보수당 우파세력의 반발을 무마하려 한 것이다.

존슨 장관까지 사퇴하면서 메이 총리와 보수당 우파세력의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깊어진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내각에서 ‘하드 브렉시트’를 주장하는 강경파가 속속 빠져나가면서 정부가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음에 따라 교섭 일정에 실질적인 영향은 없다는 시각도 있다.

새 외교부 장관에 지명된 헌트 전 보건부 장관 /미러
메이 총리는 보리스 장관의 후임으로 제러미 헌트(51) 보건부 장관을 외무 장관에 임명했다. 헌트 장관이 EU와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방안을 선호하고 있으며, 2016년 치러진 국민투표 때 EU 잔류를 지지한 바 있다.

◇ 총리 교체설도 ‘솔솔’

하드 브렉시트를 원하는 보수당 내 의원들은 당 대표와 총리를 교체하는 선거를 요구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보수당 의원 15%(48명)가 불신임을 건의하면 새로 당 대표를 선출하는 투표를 개시할 수 있다.

메이 총리는 이미 국정 운영에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6월 안정된 정권 유지를 통해 브렉시트 협상력을 키우려고 무리하게 추진한 조기 총선에서 총 하원 의석 650석 가운데 과반에 미치지 못하는 318석을 얻는 데 그쳤던 게 결정적인 계기였다. 메이 총리는 지난 9일 하원에서 자신의 브렉시트 협상 철학을 설명하려다 야당의 야유로 인해 여러차례 연설이 중단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당시 제1야당인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는 “메이 정권은 붕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데이비스 장관은 지난 9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총리에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국가를 위해) 좋지 않다”고 밝히며 자신의 사임이 총리 교체로 이어지는 것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까진 메이 총리가 사임하기엔 시기 상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네덜란드계 금융기관인 ING는 9일 보고서에서 “전임 브렉시트부 장관(데이비드 데이비스)은 메이 총리의 불신임 투표를 촉구하는 충분한 지지세력을 모을 수 있겠지만, 그런데도 메이 총리는 살아남을 것”이라며 “보수당은 조기 총선이 필요할지 모르는 총리 교체 카드에 우호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3개월 내 타협 실패시 무질서한 브렉시트

메이 총리가 갈등을 수습하더라도 브렉시트를 타결하기까지는 아직 첩첩산중이다.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협상안을 두고 EU 교섭담당자들은 “영국이 좋은 것만 취하려 한다”고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데이비스 브렉시트 담당 장관은 “정부 브렉시트 협상안은 알맹이가 빠진 협상안”이라고 비판했다. EU와 브렉시트 강경파 등 양측에서 압박을 받는 모양새다.

EU와 영국은 2018년 3월 19일(현지 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만나 브렉시트의 과도기를 21개월로 정했다./조선일보 DB
EU는 통상협의뿐 아니라 아일랜드 국경문제 등 주요 사안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브렉시트 협상자체를 백지화할 방침이다.

현재 EU 28개 회원국 가운데 하나인 영국은 탈퇴 절차를 개시하는 리스본 조약 50조를 작년에 발동, 2019년 3월 29일자로 브렉시트를 공식 단행한다. 협상 시한까지 8개월이 남은 가운데, EU와 극적인 타결을 이루지 못한다면 내년 3월부터 무질서한 브렉시트가 진행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이 경우 기업과 경제는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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