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향연] 여성의 敵은 남성이 아니라 '남성 중심주의'

조선일보
  • 권지예 소설가
    입력 2018.07.10 03:13

    戰雲 감도는 여성 시위 보면서 '南北 전쟁' 대신 '男女 전쟁' 연상
    페미니즘 근본은 차이 인정하되 남녀 차별을 타파하자는 것
    극한 치닫는 혐오 극복하고 서로에게 귀 기울이는 대화를

    권지예 소설가
    권지예 소설가
    1980년대 초반, 대학 졸업 후, 나는 서울 시내의 한 공립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어느 날, 교무실이 떠들썩했다. "잡았대요!" "걔?" 여선생들이 눈짓을 주고받았다. 한 남학생이 학생주임에게 혼나고 있었다. 교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창백한 안색의 몸집 작은 그 아이. 변성기도 오지 않은 여린 목소리로 몸이 아프다며 가끔 양호실에 가서 쉬던 아이였다. 설마?!

    그 아이의 병은, 아니 죄(罪)는, 관음증이었다. 그 아이는 양호실에 갔던 게 아니라, 여교사 화장실에 숨어들었던 것이다. 범행 도구인 거울이 학생주임의 책상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현장 검증을 하러 여교사 화장실에 가보니 눈여겨보지 않았던 나무 칸막이에서 구멍이 발견되었다.

    여교사는 성(性)에 호기심이 많은 사춘기 남학생들의 은밀한 성추행 대상이었다. 몰카(몰래 카메라) 도 없던 그 시절, 교실에서 거울 하나만 있으면 여교사들의 치마 안 '속사정'을 애인이나 남편보다 제자들이 더 잘 알았다.

    사실 당시 여교사들 사이에서는 꼭 잡고 싶은 범인이 있었다. '걔'. 관음증 소년도 '걔'는 아니었다. 젊은 여교사들에게 걸려오는 얼굴 없는 변성기 소년의 전화는 거의 테러였다. 짐승처럼 거친 숨소리로 시작해서 입에 담지 못할 상스러운 성행위 묘사와 욕설은 끔찍했다. 잡아 볼 테면 잡아봐! 거의 2년간, 소년은 큰소리쳤고 결국 그는 잡히지 않았다. 그런 전화를 받고 교단에 서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걔'가 사춘기 소년 60명 속에 숨어 있다는 느낌에 발가벗겨진 듯한 수치심과 자괴감을 느꼈다. 교단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교사면 뭐 하나. 여자는 아무리 지위가 높건 지적(知的)으로 우세하건 성적으로는 남자들의 밥이구나. 심지어 어린 십 대의 제자들한테까지도.

    갑자기 옛날 기억이 떠오른 건, 지난 토요일인 7일 서울 혜화동에서 벌어진 여성들 시위의 발단이 홍익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이기 때문이다. 세월은 흘러 거울은 스마트한 몰카로 진화했다. 이 집회는, 피의자인 여성이 구속되면서 '남성이 피해자인 경우에만 경찰이 적극 수사에 나선다'는 편파 수사 주장과 함께 기획되었는데, 이날은 6만 명이나 모였다고 한다.

    [인문의 향연] 여성의 敵은 남성이 아니라 '남성 중심주의'
    /일러스트=이철원
    당연히 불법 촬영은 성차별 없이 근절해야 한다. 그동안 억눌려온 여성들의 불평등한 성차별과 집회의 취지에는 여성이라면 깊이 공감하리라. 그런데 페미니즘의 성격을 띤 집회에 분노를 넘어 위험한 전운(戰雲)이 감도는 건 왜일까. 남북 전쟁이 물러가는 대신 남녀 전쟁이 일어나려는 걸까.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이 페미니즘의 의식을 점화하는 듯했지만, 언제부턴가 '메갈'이니 '워마드'니 '한남충'이니 '남혐'이니 '여혐'이니 남녀 갈등이 심상치 않았다. 페미니즘의 근본은 남녀 간의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은 타파하자는 것. 극혐의 남녀 대립 구도로 서로를 적(敵)으로 여기면 성차별은 영원히 끝낼 수 없다. 남자와 여자는 상호 보완하는 존재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의 저자 벨 훅스는 미국의 페미니즘이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성차별에 저항해서 일어났던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을 혐오하고 여성 자신의 성차별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겪은 시행착오를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적은 남성이 아니라 남성 중심주의이며, 새로운 길잡이로 소년과 남성을 보듬어 함께할 '페미니즘 남성성'을 고민하고 제시해야 할 때라고 본다.

    "선구적인 페미니즘은 우리에게 미래를 향한 희망을 준다. 페미니즘 사고는 상호관계와 상호의존의 윤리를 강조함으로써 우리에게 불평등이 초래한 결과를 바꾸고 동시에 지배를 종식할 방법을 제안한다"고 했다.

    사실 가부장제에서 성차별을 당해도 그저 제 인생 안에서 혼자 각개전투하며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걸었던 '82년생 김지영'의 엄마 세대는 여성들의 목소리와 연대가 든든하고 반갑다. 그런데 정작 이 목소리는 누가 들어야 하는가. 세상의 반(半)인 남자를 바꾸려면 남성들의 공감과 이해가 필요하다. 어쩌겠는가. 멸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사는 남녀평등의 세상을 꿈꾼다면. 그러니 남성과 여성들이여, 지혜롭게 대화하자. 미워도 다시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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