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혜화역 현상'

조선일보
  • 김기철 논설위원
    입력 2018.07.10 03:16

    "딸이 페미니즘 카페에 가입해 혜화역 집회가 열릴 때마다 간대요. 말 한번 잘못하면 찍혀요." 며칠 전 만난 기업체 임원은 "요즘 집에서 발언의 자유가 없다"고 했다. 엄살로만 들리지 않았다. 20대 딸을 둔 50대 가장이 '혜화역 현상'을 모르면 자녀와 얘기를 나누기도 힘들다고 한다. 두 달 전 1만2000명으로 시작한 혜화역 집회가 지난 6일엔 주최 측 추산 6만명(경찰 추산 1만9000명)으로 불어났다. 참가자 대다수는 20~30대 여성이다.

    ▶혜화역 집회는 여성 대상 몰래카메라 범죄 근절을 내걸고 시작했다. 그러다 직장과 가정·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불이익을 성토하는 자리로 확대되고 있다. 지금의 2030 여성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또래 남성과 대등하게 경쟁해온 세대다. 이들이 사회에 진출해 맞닥뜨리는 차별을 참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만물상] '혜화역 현상'
    ▶2030 여성들은 사이버 논쟁에서도 물러서지 않는다. '한남충'(한국 남자와 벌레를 결합) '꽁치남'(돈 안 쓰는 치졸한 남자)은 애교에 속한다. '숨쉴한'(남자는 숨 쉴 때마다 한 번씩 맞아야 한다) '소추민국'(성기 크기가 작은 남자가 모여 있는 나라) 같은 표현도 예사다. 남성들이 쓰는 여성혐오 표현을 똑같이 되받아치는 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홍익대 누드모델 몰카사건에 대해 "편파 수사는 아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게 이들을 자극했다. 지난주 집회 참석자들은 문 대통령을 향해 "재기해"라고 외쳤다. '재기해'는 여성들이 한국 남성들을 비판할 때 "자살하라"는 의미로 쓰는 말이다. 한강에 뛰어내려 숨진 남성연대 고(故) 성재기 대표의 이름에서 따왔다. 혜화역 집회를 찾은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생생한 목소리를 잊지 않겠다"는 글을 올렸다가 이번에는 문 대통령 지지자들을 자극했다. "대통령을 모독하는 극렬시위에 동조했다"며 정 장관을 해임하라는 청와대 국민 청원에 4만 명 넘게 몰렸다. 대부분 남성 지지자들일 것이라고 한다.

    ▶현 정부 지지층으로 알려진 2030 여성들이 대통령을 공격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이 문제가 민감하고 갈등의 수위가 높다. 젊은 여성들은 사회에 남아 있는 성차별에 분노하고 몰래카메라 불안에 시달린다. 젊은 남성들은 여성들 때문에 자신들이 역피해를 당하고 있다고 분노한다. 남북, 동서, 계층, 연령 등 우리 사회 갈등 전선에 '남녀'가 빠질 수 없는 단계로 가고 있다.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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