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사람이 먼저다'에서 '主流 교체'까지

조선일보
  • 김광일 논설위원
    입력 2018.07.10 03:15

    기업보다 勞組, 경찰보다 시위대 대립 앞세운 선동으로 흐를 위험
    안보·경제 중시하는 主流를 용도 폐기하겠다는 뜻은 아닌가

    김광일 논설위원
    김광일 논설위원
    '사람이 먼저다.' 이 여섯 글자는 문재인 정권의 핵심 이데올로기다. 몇 년 전 '문재인의 힘- 사람이 먼저다'라는 책도 나왔다. 문 대통령 선물용 시계에도 이 말은 쓰여 있다. 선거 구호로서 '저녁이 있는 삶'보다 전파력이 월등 세다. 너무 완벽해서 흠잡을 데가 없다. 사람이 먼저라는데 아니라고 말할 사람 누가 있겠는가. 이 말은 듣는 이를 취하게 만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묻게 됐다. "사람이 '먼저'라면, 사람보다 '나중'은 무엇인가?" "여기서 사람은 누구를 말하는가?" 지난 14개월 문 정권의 노선을 보면, 사람이 기업보다 먼저라는 것이고, 사람이 제도(혹은 법)보다 먼저라는 것이고, 사람이 공권력보다 먼저라는, 피할 수 없는 논리 전개를 따르고 있다.

    천부인권설만큼 황홀한 이 말은, 바꿔 말해 노조가 기업보다 먼저라는 쪽으로 정책이 흘러갈 공산을 키웠다. 사람이 공권력보다 먼저이니, 당연히 시위대가 경찰보다 먼저가 된다. '사람이 먼저'라는 이념이 현실화하면 세상이 사람 살기 좋은 사람 판이 되어야 할 것 같지만, 되레 혼란스럽고 궁핍한 비(非)인간 판이 될 위험이 곳곳에 도사렸다.

    '사람이 먼저'라는 정치 이념은 '경제와 안보가 먼저'라는 생각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상황을 선제적으로 장악했다. 그들은 안보와 경제가 무너지면 사람이 먼저라고 주장할 기회마저 사라진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람'을 다른 말로 바꾸면 인권이다. 사람은 '인권' 그 자체다. 그렇다면 문 정권이 말하는 '사람이 먼저다'에 북한 인권도 정확하게 자리 잡고 있어야 했다. 최근 통일부가 북한인권재단 사무실을 폐쇄한 것을 볼 때, 남쪽에서는 기업·제도·공권력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해놓고, 북쪽에 대해서는 주민보다 세습 체제가 먼저일 수 있다고 추인해주고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사람이 먼저다. 아름다운 말이다. 아름다운 말은 대체로 모호함을 본질로 삼는다. 속뜻을 알려면 포장지를 뜯어내야 한다. 사람이 먼저라고? 정권에 표(票)를 준 사람이 먼저인가? 정권에 반대한 사람은 '먼저'로 우대받기는커녕 '적폐'로 몰려 인생 망신을 당하는 프레임이 가동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과거 '사람이 미래다'라는 기업 이미지 광고도 있었고, 한 대선 후보는 '사람이 희망'이라고 했다. 필자가 몸담은 신문사도 "결국은 사람!"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사람을 키워야 신문도 큰다. 신입 때부터 투자하고 대접하고 꿈을 품게 해야 기업도 번창한다는 평범한 철학이다. 구성원인 사람과 구성체인 기업이 한 몸이라는 뜻이지, 어느 한쪽이 먼저라는 개념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먼저다'는 사람 사이에 선후(先後)를 만들고, 줄 세우기를 하고, 긴장 속에 대립각을 세우는 구도를 만들어 인위적인 정치 에너지를 창출해낸다. 그래서 '사람이 먼저다'는 선동 구호로 흐를 위험에 빠진다. '안보와 경제가 먼저다'는 용도 폐기된다.

    사람이 먼저다. 간명하고 뭉클했다. 안치환이 부른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들었을 때 따스하게 밀려오던 감동은 저리 가라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즐겨 불렀다는 민중가요 '어머니'는 이렇다.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내가 부둥켜안을 때/ 모순 덩어리, 억압과 착취/ 저 붉은 태양에 녹아내리네/ ….' 중장년은 대학생 때 이 노래를 부른 추억이 있을 것이다. 피억압자가 착취자를 몰아낼 때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온다는 뜻이다. 사람이 먼저다, 다른 말로, 이 나라 주류(主流)를 바꾸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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