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미 정부 北과 협상 내용 더 이상 과대 포장하지 말라

조선일보
입력 2018.07.09 03:20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7일 평양을 떠나며 "비핵화 시간표 등 협상에 많은 진전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5시간 만에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폼페이오 방북 결과는 "유감스럽기 그지없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미국 측은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와 신고·검증 등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요구만 들고나왔다"고 했다. 그러자 마치 방북에 성과가 있었던 듯 강조하던 폼페이오도 8일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 직후 "미국 요구가 강도 같은 것이라면 전 세계가 강도"라고 맞받았다. 폼페이오는 1·2차 방북 때와 달리 김정은도 만나지 못했다. 비핵화 돌파구를 찾지 못한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의 이번 방북은 북이 정말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는지를 확인할 기회였다. 김정은 약속대로 '완전한 비핵화'를 신속하게 이행하려면 폼페이오 장관에게 최소한 핵 신고·검증 절차 등 기본적 비핵화 시간표 정도는 제시하고 자신들이 얻을 것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북 외무성 담화에 따르면 북은 종전(終戰) 선언과 탄도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쇄, 미군 유해 발굴 같은 비핵화 실질과 거리가 있는 문제들만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종전 선언은 유엔사 해체 등과 연결되기 때문에 비핵화 협상 초입에서 다룰 성격 자체가 아니다. 북은 한·미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중 하나인 한·미 연합훈련 중단조차 평가절하해 버렸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독단으로 결정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란 커다란 대북 카드가 이런 식으로 허비됐다.

북은 지난 25년간 이런 수법으로 비핵화 협상을 질질 끌어왔다. 비핵화 단계를 잘게 쪼개는 협상술 등으로 시간을 벌면서 핵실험을 6번이나 했다. 북이 트럼프까지 '핵 협상 늪'에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될 수 있다. 트럼프의 비핵화 해법에 기대를 걸었던 것은 과거와 달리 '단기간 내 완전 핵 폐기'를 공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6개월~1년이던 미국 측 북핵 폐기 시한이 2년 반(폼페이오) → 천천히 해도 된다(트럼프) → 비핵화 시간표 두지 않을 것(폼페이오) 등으로 계속 밀리고 있다. CVID라는 핵 폐기 원칙도 흔들리는 분위기다. 북 외무성은 이런 틈을 타 "비핵화 의지가 흔들릴 수 있다"며 오히려 미국을 압박하고 나섰다. 이대로 가면 북핵 실패의 전철을 또 밟게 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비핵화 협상이 길어지고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고, 월스트리트저널은 "협상의 운명이 의문에 빠졌다"고 했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면 이렇게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은 무조건 '잘됐다'고 한다. 한국 청와대는 "첫술에 배부르랴"고 했다. 11월 미국 중간 선거에 목을 매고 있는 트럼프는 북이 어떻게 나와도 '협상이 잘되고 있다'고 과대 포장할 수밖에 없는 길로 들어서 있고, 한국 햇볕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한·미 정부는 북핵 협상의 실상을 더 이상 과대 포장해선 안 된다. 그 자체가 북을 잘못된 길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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