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여인, 바그다드 괴물… 그들은 왜 운명에 맞섰나

조선일보
  • 정상혁 기자
    입력 2018.07.07 03:00

    노벨문학상 수상자 파묵, 맨부커상 최종 후보 사다위
    종교와 세속, 신화와 현실서 번민하는 인간의 모습 그려

    이슬람 문화권의 두 대표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나란히 장편소설을 내놨다. 터키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66)의 신간 '빨강머리 여인'과 이라크의 떠오르는 스타작가 아흐메드 사다위(45)가 쓴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 '이스탄불의 소설가'를 자처하는 파묵과 '바그다드의 카프카'로 호명되는 사다위는 그들이 태어난 두 도시를 배경으로 종교와 세속주의, 과거와 현대, 국가와 민족의 불화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좌절하고 변화하는지 보여준다. 둘 다 평범한 자의 죽음을 씨앗 삼아 신화와 현실의 이종교배를 감행하는데, 추리 기법을 통해 진통을 전달하는 동시에 존재를 덮치는 운명에 대한 저항을 은유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빨강머리…'는 터키 현지에서만 40만 부 판매됐다고 출판사 측은 주장하고, '바그다드…'는 국제아랍소설상(2014), 프랑스 상상 그랑프리(2017)에 이어 올해 맨부커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에 올랐다. 책을 펼치면, 이슬람 여인과 괴물이라는 두 신비가 걸어나온다.

    빨강머리 여인

    빨강머리 여인

    오르한 파묵 지음이난아 옮김|민음사
    376쪽|1만4000원

    이 소설을 한 줄로 줄이면 '아버지와 아들'이 될 것이다. 그러니 제목은 일종의 속임수다.

    아버지 없는 아들의 과거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좌익주의자 아버지가 집을 떠나버린 탓에 학비를 벌기 위해 이스탄불 근교의 소도시에서 우물 파는 일을 하게 되는 고등학생 젬. 젬은 함께 우물을 파는 엄격한 장인 마흐무트 우스타에게서 복잡한 부성(父性)을 느끼는 동시에, 그가 처음으로 동침한 엄마뻘 되는 마을 유랑 극단의 빨강 머리 여인을 두고 묘한 질투심을 품는다. 그러다 실수로 우물 밑바닥에 있던 우스타 위로 무거운 양동이를 떨어뜨리게 되고, 그가 죽었다고 생각한 젬은 급히 마을을 떠난다. 성장하고 성공하지만 젬의 정신은 여전히 우물 곁을 맴돌고, 살인의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르한 파묵
    오르한 파묵. /민음사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운명에 맞서려다 어머니를 아내로 맞고 끝내 아버지까지 죽이는 아들의 고통이 소설의 거의 전부를 구성하는데, 이 때문에 독자는 사라져버린 빨강 머리 여인이 젬의 아버지와 모종의 연관이 있을 것이라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비슷한 비중을 차지하는 페르시아 서사시 '왕서' 속 아들을 죽이는 아버지의 메타포 역시 마찬가지다. 젬은 부부 사이에 아들이 없으나, 곧 어디선가 젬의 아들이 나타날 것이라 독자는 쉬이 짐작하게 된다.

    이 소설을 한 줄로 줄이면 '막장 드라마'가 될 것이다. 파묵은 "나는 이스탄불을 순수하기 때문이 아니라, 복잡하고 불완전하며 폐허가 된 건물들의 더미이기에 좋아한다"고 쓴 적이 있는데, 이번엔 그 철학의 재확인을 택한 듯하다.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

    아흐메드 사다위 지음조영학 옮김|더봄
    304쪽|1만5000원

    자살 폭탄 테러로 누더기가 된 인간의 부속을 조각조각 기워 만든 괴물이 바그다드를 헤집고 다니며 살인을 일삼는다는 줄거리만으로 읽어야 할 이유를 확보한다. 이 소설은 테러와 고문 등으로 죽음이 일상화된 미군 점령하 바그다드의 몸뚱이에 갖다 댄 메스이며, 지나간 자리마다 피 맺히는 사악한 농담이라 할 수 있다.

    허풍쟁이 폐품업자 노인이 거리에 널린 시체를 주워 모아 꿰매기 시작한다. 그러다 호텔 폭탄 테러로 목숨을 잃은 남자의 영혼이 그 시체에 스며들고, 상처와 바느질 자국과 토마토주스처럼 끈적이는 몸을 움직여 복수를 이행한다. 곧 언론에 의해 '프랑켄슈타인'으로 불리게 될 이름 없는 자, '무명씨'가 탄생한 것이다.

    아흐메드 사다위
    아흐메드 사다위. /더봄

    시체의 연쇄는 이라크에 닥친 정신적 참사의 알레고리로 작동하고, 모든 민족·부족·인종·계급의 몸뚱이를 하나로 꿰맨 이 무명의 괴물은 "시민의 이상적인 모델"이며 "이 나라에 유일하게 남은 정의"가 된다. "각 신체 부위의 원래 주인의 출신과 배경이 다양하므로 내 존재는 과거에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불가능한 통합을 상징한다"는 논리. "거리의 정의"를 수행하는 무명씨는 곧 신화가 된다. 그의 몸을 다른 시체로 기워 수선해주고, 제 목숨까지 내주는 추종자도 늘어난다. 그를 처치하려는 정부 특수정보추적국의 시선에서 보자면 "무지와 두려움, 혼란을 틈타 교묘하게 신화의 주인공으로 둔갑"하는 것이다.

    어느덧 괴물은 삶에 집착하며, 죽음에 저항하지 않는 자들을 제 몸으로 취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진짜 시체는 누구인가? 소설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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