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노후 자금 635조원 투자를 책임지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 인선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종 후보로 추천됐다 탈락한 인사가 이런 사실을 폭로했다. 그는 "장하성 실장이 1월 30일 전화를 걸어 지원하라고 권유했다"고 말했다. CIO 후보 선정을 위해 외부 전문가로 추천위원회가 구성되고 공모가 시작된 것은 지난 2월 19일인데, 그보다 한참 전에 이런 통화가 있었다면 추천위는 허수아비라는 얘기다. 정식 절차는 공모를 거쳐 보건복지부 장관 승인으로 국민연금 이사장이 임명하는 것인데 청와대가 미리 점찍었다면 인사 전횡이고 적페다. 전(前) 정권 사람들은 이런 혐의로 감옥에 갔다.

청와대는 폭로가 나온 지난 5일 "장 실장이 추천한 것이 아니라 덕담으로 전화한 것"이라고 했지만 불과 3시간 뒤 말을 바꿨다. "장 실장이 전화로 권유한 것은 맞지만, 심사는 (장 실장과) 무관하게 진행됐다"고 했다. 국민을 바보 취급하는 것 같다.

더 문제는 청와대 정책실장이 민 인사가 탈락한 이유다. 청와대는 "검증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해) 기업 지배 구조를 바꾸려면 기금운용본부가 여러 부처와 손발을 맞춰야 하는데 내가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 본 모양"이라고 했다. 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해 사회적 투자라는 명분으로 퍼주기 복지를 늘리거나, 스튜어드십(주주권 행사 강화)을 통해 대기업 경영에 간섭하려는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을 공공 사업에 사용하는 것과 관련, 장 실장으로부터 "기금의 1%로 한정돼 있어 추가로 사용하고 싶으면 (공공사업 관련) 채권을 (국민연금이) 사는 것으로 일단 결론지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정부 인수위 역할을 했던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작년 7월 "국민연금의 공공 임대주택, 국·공립 보육 시설 투자 방법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민연금은 수익성과 안정성이 가장 중요하다. 공공성을 앞세우는 것은 모험적 발상이다. 국민의 돈으로 산 주식으로 정부가 기업 경영에 간섭하는 '연금 사회주의'도 논란 대상이다. 청와대는 이 사람의 항변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있다. 무엇이 사실인지 밝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