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 미·북 정상회담 이후 첫 고위급 접촉을 위해 5일(현지 시각) 방북 길에 오른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두 개의 선물을 들고 간 것으로 4일 알려졌다. 하나는 트럼프의 친서, 또 하나는 영국 가수 엘턴 존이 부른 노래 '로켓맨'이 실린 CD〈사진〉이다. 복수의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 선물은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공동성명의 조속한 이행을 기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뜻을 전하기 위한 것이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로켓맨 CD 선물'은 미·북 정상회담 때 오찬에서 나눈 트럼프-김정은 대화가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당시 트럼프 대통령에게 "지난해 미·북 간 분위기가 최악으로 치달을 때 당신이 나를 '로켓맨'이라고 부르기도 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엘턴 존이 부른 '로켓맨'이란 노래를 들어봤느냐"고 물었다. 김정은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당시 대화를 기억하고 있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 폼페이오 장관 편에 이 CD를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 CD 재킷엔 트럼프의 서명과 메시지도 담았다고 한다. 폼페이오는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도 들고 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폼페이오 장관은 5일 새벽 워싱턴을 떠나 6일 평양에 도착해 1박2일을 머물 예정이다. 이번이 세 번째 방북으로 평양에서 숙박하는 것은 처음이다.
미국 측에선 미·북 정상회담 전 실무 협상을 담당했던 성 김 주필리핀 미국 대사,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보좌관, 랜디 슈라이버 국방부 아·태차관보, 앤드루 김 CIA 코리아미션센터장 겸 부국장 등이 방북한다. 국무부 출입기자 6명도 동행한다.
폼페이오 장관의 3차 방북을 앞두고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접근 방식이 유연해졌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4일 폼페이오 장관이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식의 접근법은 접어둔 것 같다"고 전했다. '판을 깨지 않는 상황 관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이다. 국무부가 최근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대신 내놓은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는 분석이다. 북한이 CVID에 대해 극도의 거부 반응을 보이자 새로운 표현을 대안으로 내놓았다는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이번 방북에서 북측과 우선 논의해야 할 현안으로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이 있다. 이미 합의는 했지만 송환 시기와 보상 조건을 최종 결정해야 한다.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 파괴 시기와 미 전문가 참관 여부도 결정해야 한다. 비핵화 실무 협상 진행 방식도 논의해야 한다.
하지만 핵심은 폼페이오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행동'에 대한 약속을 받아낼 수 있느냐다. 예를 들어 '핵탄두 몇 개를 언제까지 폐기한다'는 식의 구체적인 행동과 시간표에 대해 북한이 합의할지가 관건이다. 합의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미·북이 공동 합의문 등을 발표할 가능성도 있다.
폼페이오의 3차 방북이 북한을 구체적인 비핵화의 길로 들어서게 할 것인가에 대한 워싱턴 분위기는 회의적이다.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에 대해 여전히 물음표를 달고 있다. 지난주엔 미 정보기관의 북한 핵 은폐설이 잇따라 터져 나오면서 북한이 위장 비핵화 협상에 나서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