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나와보니… 몰카·여성혐오 공기처럼 퍼져있어"

입력 2018.07.06 03:01

[분노의 여성들] [上] 2030은 왜 거리로 나왔나

몰카 편파 수사 규탄 집회에 참석한 한 여성이 ‘분노한 여성이 세상을 바꾼다’는 뜻의 손 피켓을 들었다.
몰카 편파 수사 규탄 집회에 참석한 한 여성이 ‘분노한 여성이 세상을 바꾼다’는 뜻의 손 피켓을 들었다. /뉴시스

7일 서울 대학로에서 제3차 '혜화역 여성 집회'가 열린다. 3만명 넘는 여성이 전국에서 모일 예정이다. 2000년대 호주제 폐지 운동 이후 여성 관련 집회로는 최대 규모다.

앞선 집회도 예상을 뛰어넘었다. 1000명이 올 것이라고 신고한 1차 집회(5월 19일)에는 1만2000명이 모였고, 2차 집회(6월 9일) 때도 1만명을 신고했지만 실제는 2만명이 넘게 참가했다. 이낙연 총리는 여성가족부에 '혜화역 집회 현상'을 분석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 집회에 참여하는 여성들은 주로 20~30대들이다. 표면적 요구는 "불법 촬영(몰카)을 하거나 유포한 남성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1·2차 집회 때 현장 분위기는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해 분노'에 가까웠다.

본지 취재팀은 이 집회를 기획하거나 참석한 여성 30명을 만났다. 이들은 "여성을 먹잇감으로 보는 우리 사회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일상에서 여성 혐오 경험

중견기업에서 대리로 일하는 황유정(31)씨는 지난달 9일 열린 제2차 서울 혜화역 집회에 나갔다. 태어나 처음 나가 본 집회였다. 황씨는 "여성 혐오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 돌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황씨 부모는 모두 대학을 졸업했다. 아버지는 중소기업을 운영한다. 어머니는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다 출산 후 남편의 권유로 가정주부가 됐다. 어머니는 황씨에게 "여자도 자격증이 있는 전문직이 돼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황씨는 사립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황씨는 "대학부터 여성 혐오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남자 선배들은 황씨를 앞에 두고 "가슴이 없네" "여자는 엉덩이가 빵빵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서슴없이 했다. 취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성 3명과 함께 들어간 최종 면접에서 면접관은 황씨의 정장 바지를 가리키며 "자네는 여자인데 왜 남자같이 입었나. 여자는 치마를 입어야지"라고 했다. 황씨는 7일 3차 집회에도 참석할 계획이다.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은 "집에선 부모가 남자 형제와 똑같은 기대를 걸고 키웠고, 학교에서도 남자들한테 안 밀렸는데 사회생활은 남성 중심의, 완전히 딴 세상이더라"고 했다. 2차 집회에 참여했던 설모(37)씨는 "결혼하고 애를 키우다 보니 조선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간 기분"이라고 했다. "일·출산·육아 문제에서 우리 사회는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남성 중심적"이라는 것이다.

◇온라인 통해 결집

20대 여성 가운데는 '디지털 여혐(여성 혐오)' 때문에 집회에 참석하게 됐다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 초등학교 때부터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쓰며 자랐다. 이들은 '김치녀(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말)' 'X슬아치(여성의 성기와 벼슬아치를 합친 말)' 같은 단어가 인터넷에서 유행처럼 쓰인다는 것에 분노했다. 대학생 최은정(22)씨는 "인터넷만 켜면 모든 곳에 여성 혐오가 있다. 일상이다"라고 말했다.

분노에 휩싸인 수만 명의 2030 여성이 매달 거리로 나서고 있다. “여성 혐오가 팽배한 우리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다. 이들은 여혐이 유행처럼 퍼졌고 각종 여혐 용어는 일상어가 됐다고 느낀다. 여자이기 때문에 언제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공포도 이들을 자극했다.
분노에 휩싸인 수만 명의 2030 여성이 매달 거리로 나서고 있다. “여성 혐오가 팽배한 우리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다. 이들은 여혐이 유행처럼 퍼졌고 각종 여혐 용어는 일상어가 됐다고 느낀다. 여자이기 때문에 언제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공포도 이들을 자극했다. /뉴시스

이런 여성들은 여성 관련 온라인 카페나 유튜브 채널에 모여들었다. 자신의 피해를 공유하고 남성을 비판하며 서로 위로한다. 집회에 참가했던 박서희(26)씨는 전 남자 친구로부터 데이트 폭력을 당했다. 3년쯤 전 여성만 가입할 수 있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했다가 자신과 비슷한 경험이 있는 여성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여혐에 대한 공포와 분노 그리고 이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도 이 사이트에서 논의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장미혜 실장은 "성희롱·성폭행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던 범죄이지만 여성들의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집단화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라며 "이 공간에서 여성들은 연대하고 공감했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함께 분노하며 결집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학원 강사 성모(22)씨도 자신이 겪은 여성 혐오를 온라인에 공유한 적이 있다. 호신용 스프레이를 가지고 다니던 성씨에게 당시 아르바이트를 하던 가게의 남성 사장이 "궁금하니 한번 뿌려보자"고 했다. 화가 난 성씨가 "그럼 사장님 얼굴에 뿌려도 되느냐"고 하자 사장은 "그럼 내가 너 강간해도 되느냐"고 했다. 온라인 게임을 할 때는 단체 채팅방에서 '우리 팀에 여자 있네' '신음 소리 내 봐라' '왜 이렇게 예민해? 생리하느냐' 등의 말을 듣는다고 했다. 성씨는 "온라인엔 여혐이 정말 많다"고 말했다.

◇강남역 살인 사건과 홍대 몰카 사건

혜화역 집회는 올해 벌어진 '홍대 불법 촬영 사건'이 발단이 됐다. 홍익대 미대 수업 시간에 한 여성 모델이 남성 누드모델의 몸을 휴대전화로 찍어 인터넷에 올린 사건이다. 경찰이 즉각 수사에 나서고 곧 검거하자 여성들은 "여성 몰카 사건과 달리 피해자가 남자라서 경찰 수사가 신속하게 이뤄진 것"이라며 "편파 수사"라고 했다.

집회에 참가한 여성들은 "남성을 찍은 건 금세 잡으면서 하루에도 수백 건씩 터지는 몰카 범죄를 경찰이 못 막는 이유가 뭐냐"고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몰카를 찍다 잡힌 사람은 2012년 1800여 명에서 지난해 5437명으로 매년 1000명씩 늘어나고 있다. 직장인 최윤조(28)씨는 "공중 화장실에 갈 때면 '나도 찍힐 수 있다'는 불안부터 든다"며 "여성 커뮤니티에서 받은 몰카 방지 스티커를 항상 지니고 다닌다"고 말했다.

집회 참가자 중에는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이 "여성 혐오 문제에 눈을 뜬 계기가 됐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학생 남모(21)씨는 "처음엔 여성들의 피해망상이려니 했다가 객관적 사실들을 살펴보니 여혐이 깔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그때 페미니즘을 접했고 여성 혐오가 무엇인지 똑바로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촛불 시위로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는 '학습 효과'가 반영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청소년·여성 보호 단체인 '탁틴내일'의 이현숙 대표는 "한국적 상황에서 보면 새 정부 들어 소수의 목소리를 듣는 추세도 이유 중 하나"라며 "작년 촛불 집회 이후 '뭐든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기폭제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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