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은 10년 쓰잖아요… 집과 한 몸 같은 디자인이 중요하죠"

조선일보
  • 김상윤 기자
    입력 2018.07.06 03:01

    사물인터넷 시장의 선두주자, 구글 네스트 수석 디자이너 배성균
    "실리콘밸리, 기술보단 디자인 우선… 어려운 제안도 '안된다' 하지 않죠"

    미국 실리콘밸리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사물인터넷(IoT) 시장에서 격돌하고 있다. 그중 가장 앞서가는 곳은 구글 네스트(Google Nest). 구글이 2014년 32억달러(약 3조6000억원)를 들여 인수한 업체다. 네스트 제품은 '사물인터넷계의 아이폰'이라고도 한다. 똑똑한 기능뿐 아니라 수수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으로 미국과 유럽에서 큰 인기다. 한국에서도 직구해서 쓰는 이가 많다.

    네스트의 감성적 디자인을 이끄는 이 가운데 한국인이 있다. 수석 디자이너 배성균(42)씨다. 배씨는 미국 프랫 인스티튜트와 이탈리아 도무스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와 모토롤라, 델을 거쳐 2015년 네스트에 입사했다.

    한국디자인진흥원 국제디자인융합캠프 강연차 방한한 그를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배씨는 "첨단 기술을 적용했지만 인간적이고 따뜻한 전자제품, 마치 가구 같은 디자인이 네스트의 성공 요인"이라고 했다.

    구글 네스트의 수석 디자이너 배성균씨는 “첨단 기술을 집약했지만 마치 가구처럼 집과 잘 융화되고, 오래 두고 봐도 질리지 않는 간결한 디자인이 네스트의 성공 요인”이라고 했다.
    구글 네스트의 수석 디자이너 배성균씨는 “첨단 기술을 집약했지만 마치 가구처럼 집과 잘 융화되고, 오래 두고 봐도 질리지 않는 간결한 디자인이 네스트의 성공 요인”이라고 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네스트의 대표 제품인 온도 조절기 '서머스탯 E'가 그의 작품이다. 집주인의 사용 패턴을 학습한 뒤 알아서 온도를 맞춰주는 기기다. 센서로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해 외출 모드로 바꾸거나, 온도·습도·날씨를 분석해 집 안 기기들에 지시를 내린다. 배씨는 한손에 들어오는 작고 동그란 벽시계처럼 온도 조절기를 디자인했다. 색깔은 순백.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있는지 모를 정도로 튀지 않고 주변에 녹아 있다. 그가 디자인한 웹캠도 최대한 도드라지지 않게 만들었다.

    "사물인터넷 기기는 집에 몇 년씩 설치해놓고 써요. 질리거나 이질감 들지 않게 디자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집과 한 몸처럼 융화되고, 집주인을 돌보고 배려한다는 느낌을 줘야 합니다." 배씨는 '스위스 커피'색(흰색 계열) 등 가정에서 가장 많이 쓰는 페인트 색을 제품에 적용했다. 소재는 다른 가구나 소품과 어울리도록 구리 등을 썼다.

    배성균씨가 디자인한 안면 인식 기술 탑재 웹캠 ‘캠 IQ’(사진 왼쪽), 네스트의 온도조절기(사진 가운데와 오른쪽).
    배성균씨가 디자인한 안면 인식 기술 탑재 웹캠 ‘캠 IQ’(사진 왼쪽), 네스트의 온도조절기(사진 가운데와 오른쪽). /네스트
    한국과 외국의 IT 기업을 두루 경험한 그에게 차이를 묻자 "실리콘밸리 IT 기업에선 디자인이 기술을 이끌고, 한국 기업에선 디자인이 기술을 따라가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에선 '이번에 이런 기술을 개발했으니 여기 맞춰 디자인하라'는 식이었는데, 실리콘밸리에선 디자인 아이디어를 우선하고 '그에 맞는 기술은 개발하면 된다'고 해요." 그는 "엔지니어에게 다소 어려운 안을 보여줘도 '노(No)'가 아니라 '그래, 일단 해보자'는 답이 온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며 "IT 기기 오작동은 대부분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간의 소통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엔지니어는 불확실성을 줄이고 답을 찾는 게 목표라면 디자이너는 불확실성을 즐기는 이들이에요. 서로 다르니 그만큼 긴밀히 소통하고 서로 영역을 존중해야 하지요."

    최근 본 전자제품 중 최고 디자인으로는 프랑스 디자이너 로낭·에르완 부훌렉 형제가 디자인한 삼성전자 세리프 TV를 꼽았다. 최악은 가전 회사에서 쏟아내는 에어컨이라고 했다. "로봇처럼 방 한쪽에 서서 위압감을 준다고 할까요. 제 기준에선 디자인 공해에 가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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