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軍사기 떨어뜨린다며 금했던 노래, 우여곡절을 견딘 삶의 승전가인데…

조선일보
  • 이주엽 작사가·JNH뮤직 대표
    입력 2018.07.06 03:01

    [이주엽의 유행가 예찬] 양희은 '늙은 군인의 노래'

    가수 양희은
    가수 양희은. / 뉴시스
    제복을 입은 사람은 시스템의 나사못이 아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기쁨과 슬픔의 체온을 지닌 개인들이다. 모든 삶은 제각각 절대적이다. 어떤 경우라도 획일화할 수 없다. 상명하복 같은 제복의 규율은 공적 영역에서 맺은 개인들의 자발적 합의일 뿐이다. 하지만 우린 사회는 오랫동안 공적 위계로 사적 내면까지 규율해 왔다. 김민기가 만들고 양희은이 부른 '늙은 군인의 노래'는 이 사회적 묵약에 균열을 냈다. 노래가 나오자 비로소 제복 안의 개인이 보였다.

    노래가 발표됐던 1979년은 전 사회가 정치적 전체성에 눌려 있던 시절이었다. 김민기가 만든 건전 가요라 해도 무방할 이 노래가 "군대 사기를 저하시킨다"는 이유로 곧장 금지곡이 됐다. 개인의 연민조차 국가의 적으로 삼던 시대였다. 방송에서 사라진 노래는 입에서 입으로 퍼져, 광장의 운동 가요가 됐다. 그사이 '군인' 대신 '투사'로 개사됐다. 그러다 지난 6월 현충일 국가 기념식에서 이 노래를 최백호가 불러 다시 화제가 됐다. 국가가 금지한 노래가 먼 길을 돌아 국가의 공식 무대에 오른 운명이 파란만장하다.

    노래 형식은 경쾌한 군가풍이나 내용은 처연하다. '씩씩한 슬픔'이라는 이 역설적 미학이 노래의 핵심이다. 노래가 시작되면 행진을 알리는 스내어 드럼(작은북) 소리가 들려온다. 저 소리가 통제하는 보폭에 맞춰 일사불란한 행렬이 아니라, 사연 많은 한 세월이 물결치듯 지나간다.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라고 의기 높게 시작한 노래는 곧장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년"이라며 쓸쓸한 회고의 정서로 반전된다. 노래는 군인이 아니라 '늙은' 삶이 주인이다.

    이어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는 연민 어린 자문(自問)에 "나 죽어 이 흙 속에 묻히면 그만이지"라는 자부와 달관이 섞인 자답(自答)을 한다. 이 문답은 이름 없는 모든 평범한 삶에 대한 김민기의 지극한 헌사다. 삶의 우여곡절을 기꺼이 견디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승자다. 그러므로 이 노래는 우리 모두를 위한, 삶의 애틋한 승전가다.

    늙은 군인은 목청을 높인다.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이 애잔한 회한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저 멀리 푸른 옷을 입은 청년의 꿈과 사랑이 출렁인다. 김민기가 복무하던 부대의 선임 상사 퇴역을 기념해 만들어준 이 노래가, 그의 마음을 어떻게 건드렸을지 궁금하다. 두 남자의 뜨거운 우정이 눈에 잡힐 것만 같다.

    오랫동안 구전되던 이 노래는 대체로 3절까지만 불렸으나, 사실 백미는 4절 첫 문장이다. 3절까지의 모든 가사는 이 한 구절을 예비한 것이다. "푸른 하늘 푸른 산 푸른 강물에/ 검은 얼굴 흰 머리에/ 푸른 모자 걸어가네." 양희은의 서늘한 목소리를 타고 이 대목이 울려 퍼질 때마다 눈이 아려온다. 저 멀리 외로운 노병 하나가 소실점을 향해 뚜벅 걸음으로 간다. 전선의 거친 노고가 훈장처럼 남은 "검은 얼굴"과 세월에 맞서 싸운 흔적인 "흰 머리"만 뚜렷하다. 김민기는 이 묵묵한 삶의 퇴장에 경의를 표하며 "푸른 모자"를 씌워준다. 그리고 생의 자부심을 영원히 푸르게 박제시킨다. 슬프고 아름답다. 푸르고 검고 흰 3색이 변주하는 페이소스 가득한 이 절경은 오로지 김민기만의 솜씨다.

    이름 없이 평생 고단한 싸움을 자처한 노병이여, 죽지도 사라지지도 말거라. 푸른 하늘, 푸른 산, 푸른 강물을 사열하며 더 이상 늙지 않는 푸른 세월을 살아라. 그 세월에 영광 있으리라.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