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꽉 똬리 튼 평양냉면… 잔기술 없이 우직하다,

조선일보
  • 정동현 음식 칼럼니스트
    입력 2018.07.06 03:01

    [인생식탁]

    [정동현의 음식이 있는 풍경] 서울 삼성동 '경평면옥'

    한국에서 가장 '핫한' 음식은 차가운 국수 냉면이다. 왕족처럼 강북에서 고고하게 풍월을 읊던 냉면은 이제 강남으로 내려와 격전을 치르고 있다. 한국에서 핫한 것들이 보통 그러하듯 새로 생긴 냉면집 대부분은 돈이 몰리는 강남에 자리를 잡았다. 그중 삼성동 '경평면옥'은 생긴 지 반년도 되지 않은 이등병이다. 하지만 실력으로 따지면 고참 병장 못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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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경평면옥의 주인공인 평양냉면. 어떤 파도가 몰아치더라도 끄떡하지 않을 기세로 단단히 똬리 튼 면다발 위에 빈틈없이 꾸미가 올라가 있다. ② 고소한 비계와 부드러운 살코기의 조화가 산수화 속 산과 강처럼 자연스러운 제육(왼쪽)과 소고기의 고급스러운 감칠맛이 돋보이는 편육. ③ 탄성이 상당한 만두피가 간신히 꽉 찬 소를 버텨내는 손만두.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외국인 카지노 세븐스타 건너편, 택배 트럭과 퀵 오토바이가 뒤엉켜 탁류(濁流)를 일으키는 좁은 골목은 경평면옥 자생지다. 인근 '월드 트레이드 센터' 거주 직장인들이 낮 12시가 채 되기도 전에 경평면옥을 꽉 채웠다.

    북적거리는 인파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이 집의 주방이다. 주방과 홀의 경계가 없다시피 한 극단적인 스탠스 구조를 보면 이 집 주인장의 자신감을 넘은 솔직함이 느껴진다. 신격화된 비법이 이끌던 구시대가 아닌 신시대 평양냉면집이 가진 새로운 자세다. 주방처럼 메뉴에도 손님을 끄는 잔기술이 없다. 대신 공자 왈 맹자 왈 평양냉면의 정통을 밟는 우직함이 메뉴에 서렸다.

    시작은 면수였다. 면수를 훌훌 불어가며 천천히 마셨다. 기름지지도, 온화하지도 않은 차갑고 냉혹한 기후와 척박한 땅이 만들어낸 질기고 거친 땅의 기운이 꼬인 위장을 풀어 내렸다. 배가 부르지 않다면 이 집 만두는 당연히 거치고 가야 한다. 중국 딤섬처럼 현란하고 교묘한 모양새나 맛은 아니었다. 대신 한옥 처마 서까래처럼 넓지도 좁지도 않은 주름이 잡혀 단정히 접시 위에 올려져 있었다. 숙성을 시켜 노르스름한 색을 띤 만두피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만두피가 허용하는 만큼 최대한 소를 욱여넣었기 때문이다. 어른 주먹보다 살짝 작은 만두를 반으로 잘랐다. 숙주와 고기, 두부로 만든 만두소가 막혔던 숨을 터뜨리듯 만두피 밖으로 튀어나왔다. 숟가락으로 맛간장을 살짝 뿌리고 만두 반쪽을 입에 넣었다. 볼 한쪽이 만두 형상으로 부풀어 올랐다. 간장의 달달한 짠맛이 먼저 혀에 올라탔다. 그 뒤로 갈아 넣은 두부가 성글성글한 표정을 하고 이에 닿았다. 숙주나물은 오드득, 고기는 질근질근 씹혔다. 그 뒤로 북 장단을 치듯 둥둥둥 울리는 소금간이 무심히 맛의 윤곽을 잡았다.

    냉면집에 갔으면 제육도 꼭 먹어보는 편이 좋다. 보통 평양냉면집 작명법대로 제육은 삶은 돼지고기를 뜻한다. 돼지고기 삶은 것이 뭐 그리 대단한가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맛없는 제육을 만나면 그 단순한 생각이 틀렸음을 재빨리 깨닫는다. 어떤 제육은 냄새가 나고 어떤 제육은 이 맛도 저 맛도 아니다. 냉면집 제육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한 번 익혔다 식혀 쫀득한 식감을 살린 방식과 뜨겁게 익혀 그대로 잘라낸 방식이 탕수육 '부먹(소스 부어 먹기)'과 '찍먹(찍어 먹기)'처럼 팽팽히 그 세를 겨루고 있다. 식힌 쪽은 쫀득한 식감과 질긴 식감 사이의 균형 잡기가 어렵다. 뜨거운 쪽은 오히려 냄새가 나기 쉽다. 편하게 일하려고 익혔다 식힌 고기를 다시 데우면 돼지고기는 백이면 백 잡내가 난다.

    경평면옥의 제육은 하얗고 뜨거운 증기를 뿜어냈다. 새우젓을 젓가락으로 살짝 들어 돼지고기에 얹은 뒤 입에 넣었다. 비계가 스르르 녹고 살코기가 질컹 씹혔다. 깨끗한 지방의 단맛이 젊은 사내의 허벅지처럼 묵직한 살코기 맛과 얽혀 위장을 채웠다.

    그래도 단연 이 집의 주인공은 평양냉면이다. 육수의 때깔을 보니 태풍이 오기 전 바다처럼 큰 물결을 깊은 곳에 품고 잔잔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떤 파도가 오더라도, 흔들릴지언정 가라앉지 않을 단단한 등대처럼 꽉 똬리를 튼 면다발과 그 위에 올려진 꾸미는 빈틈이 없었다.

    그릇째 들어 육수를 마셨다. 바다의 짠 내를 닮은 간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독한 짠 내가 아니었다. 비가 내리는 날, 바다 위로 뭉근히 퍼지는 간기처럼 푸근하고 맑은 짠맛이었다. 동물성 감칠맛이 말없이 진군하는 병사들처럼 서서히 창자 속으로 밀려들어왔다. 얼음처럼 차갑지 않지만 검처럼 서늘한 날이 선 육수가 선두였다. 툭툭 끊기는 질감과 금속성 냉한 맛을 지닌 거무스레한 면은 후순위였다. 신맛을 품은 무김치와 오이는 정중동의 파동을 만들었다. 식당 안 모든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면을 씹었다. 잠시 뒤 모두 고개를 들고 마지막 남은 육수 한 방울을 마셨다. 그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차갑고도 뜨거운 냉면 한 그릇이었다.

    경평면옥: 평양냉면(1만1000원), 비빔냉면(1만1000원), 손만두(1만1000원), 만두 반 접시(6000원), 제육(2만5000원), 제육 반 접시(1만3000원). (02)539-6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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