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북한 불법환적 사진공개…아베, 다시 강경 입장 돌아서나

입력 2018.07.05 13:57

일본 방위성이 4일 동중국해 해상에서 북한 선적 유조선이 몰래 석유제품 등을 옮겨싣는 이른바 ‘불법 환적(換積)’ 행위를 하는 현장을 포착했다며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일본 정부가 북한의 환적이 의심된다며 현장 사진을 공개한 것은 올해로 8번째다. 일본 정부는 앞서 6월 12일 미·북 정상회담 이후인 6월 27일에도 북한의 불법 환적 현장 사진을 공개한 바 있다.

일본 방위성의 이번 발표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희망한다는 의사를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있는 가운데 나와 향후 북·일 관계가 어떻게 펼쳐질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이날 공개된 사진 속 ‘안산 1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뿐만 아니라 미국의 제재 명단에도 오른 선박으로 확인돼, 일본이 북한에 대한 유화적인 제스처에서 다시 강경 입장으로 돌아선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일본 방위성이 2018년 7월 4일 홈페이지에 올린 북한 선적 유조선의 불법 환적 현장 사진. / 일본 방위성
일본 방위성이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현장 사진은 지난달 29일 오후 해상자위대 제14호위대가 포착한 것으로, 중국 상하이 남동쪽 약 350㎞ 해상에서 북한 선적 유조선 ‘안산 1호’와 선적 불명의 선박이 동중국해상에서 나란히 붙어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와 관련, 일본 방위성은 두 선박이 호스를 연결해 어떤 작업을 하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를 유엔 안보리에 통보하는 한편 관계국들과도 정보를 공유했다고 밝혔다. 방위성은 또 북한이 ‘안산 1호’의 이름을 ‘HOPE SEA호’로 위장했다는 점도 확인했다며 대북제재를 빠져나가기 위한 조치로 추정된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일본은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미국과 한국,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며 불법 환적에 대한 대응을 포함한 유엔 안보리 결의의 실효성을 확보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이를 위해 미국 등 관계국과 협력해 불법 환적을 포함한 북한의 불법 해상 활동을 감시하는 목적으로 정찰기를 파견할 계획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8년 6월 7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회견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과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북한과 직접 만나 대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이후 북·일 정상회담에 대한 의욕을 보여왔다. 회담 장소로는 오는 9월 11~13일 ‘동방경제포럼’이 개최되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9월 말 유엔 총회가 열리는 미국 뉴욕이 거론되고 있으며, 일본은 지난달 14일 몽골에서 북한 측과 만나 이 같은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비한 주민 대피 훈련도 잠정적으로 중단했다. 지난달 26일 정부와 합동 훈련을 앞두고 있던 도치기현 야이타시는 훈련 중단 배경에 대해 “현을 통해 미·북 정상회담 등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훈련을 미루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도치기현은 미·북 정상회담 이후로는 처음 훈련을 실시하는 현이 될 전망이었다. 앞서 군마현과 후쿠오카현은 올해 훈련을 실시했다.

하지만 일본의 러브콜에도 북한이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자 아베 총리가 대북 강경노선으로의 회귀를 시사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북한이 미·북 정상회담 합의문을 어기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쏟아져 나오면서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자, 이에 합류했다는 해석도 있다.

실제 일본은 보유한 미사일 방어체계 ‘이지스 어쇼어’에 한반도 전역을 감시할 수 있는 최신형 레이더 ‘LMSSR’을 탑재하기로 하고 조만간 이를 공식 발표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약속하면서 아직까지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으며, 중국의 미사일 위협 또한 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북·일 정상회담 개최에 일본인 납치자 문제 해결이라는 전제조건을 달며 일본 정부의 태세 전환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지난 1일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제 발전을 하려면 보유한 핵·미사일의 완전한 폐기와 일본 납북자 문제가 모두 해결돼야 한다는 걸 북한도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본 참의원이 2018년 6월 29일 본회의를 열고 자민당과 공명당 등 연립여당과 여권 성향 야당 일본유신회의 찬성 다수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발효 이후 농가 지원 대책 등을 담은 10개 관련 법안을 가결했다. / 자민당 홈페이지
일본 정부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는 일본 국내 정치 상황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 있다. 오는 9월 사실상 후임 총리를 뽑는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아베 내각의 지지율이 눈에 띄게 오른 상황에서 무리하게 북·일 정상회담을 추진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상회담을 했다가 쟁점 사안인 일본인 납치 문제에서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만 대두되면 선거 결과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일본의 최근 동향을 바라보는 북한의 시선도 곱지 않다. 특히 북·일 합작사 10곳의 대북 불법송금·돈세탁 혐의와 관련, 일본 정부가 조사에 착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는 연일 관영매체를 통해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북한 관영 노동신문은 지난달 29일 “아베는 조선반도 정세를 악화시켜보려는 불순한 책동에 동남아시아 나라들을 끌어들이고 어리석게 획책했다”며 “조선 인민에게 헤아릴 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들씌운 범죄국가인 일본이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보장 문제에 머리를 들이밀어보겠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격에 맞지 않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이날도 ‘과거청산부터 바로해야 한다’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과거청산 문제를 뒷전에 밀어놓으려 하는 한 언제 가도 지역에서 외톨이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8년 4월 18일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소재 트럼프 대통령 개인 별장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처럼 양국 간 미묘한 흐름이 감지되면서 미국을 대하는 일본의 태도도 변할지 주목된다. 미국이 싱가포르 회담을 기점으로 북한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데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미국의 ‘최대 압박’ 슬로건을 강조하며 ‘재팬 패싱’ 우려를 종식하고자 했던 노력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가 미국과의 거리 조절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아베 총리가 5~7일 북한을 방문하고 일본에 들를 예정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만나는 대신 지방 순회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대신 고노 외무상과 만나 북한과의 협상 내용과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북한과 접촉한 한국 측 고위 관계자를 직접 만나는 등 북한 문제를 각별히 챙기는 모습을 보여왔다.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4월 27일 열린 첫 번째 남북 정상회담 다음날 일본을 방문한 것이 한 예다. 당초 고노 외무상을 서울로 보낼 계획이었던 아베 총리는 회담 직후 서 원장이 직접 와서 설명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로써는 아베 총리가 폼페이오 장관과의 면담보다는 자민당 총재 선거를 우선시한 것이라는 분석이 신빙성을 얻고 있다. 아베 총리가 오는 7~8일 방문할 가고시마현과 미야자키현은 그가 2012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에게 졌던 지역이다.

아베 총리가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에 거는 기대가 크지 않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폼페이오 장관이 김정은과 만날지 여부도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미 예정된 지방 순회를 취소하면서까지 그와 면담할 필요는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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