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퇴계가 그린 '비밀의 지도'… 그 암호를 풀어드립니다

조선일보
  • 이선민 선임기자
    입력 2018.07.05 03:00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이황의 '성학십도' 풀이한 책 출간

    "16세기에 살았던 퇴계가 자기 발견과 완성의 비법을 일러준 '비밀의 지도'를 21세기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고심했다. 불교의 만다라나 정교회의 이콘처럼 명상과 체화(體化)의 수단으로 만든 그림을 꼭꼭 씹어가면 신(神)이나 외부의 힘이 아니라 스스로 '인간의 길'을 찾는 유교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형조 교수는“철저한 합리성, 자각과 결단을 중시하는 유교는 과학에 기반한 초현대사회의 지적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형조 교수는“철저한 합리성, 자각과 결단을 중시하는 유교는 과학에 기반한 초현대사회의 지적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중진 동양철학 연구자인 한형조(59)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퇴계 이황의 필생 역작인 '성학십도(聖學十圖)'를 풀이한 '성학십도, 자기 구원의 가이드맵'(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을 펴냈다. 67세의 노학자 이황이 막 즉위한 16세의 청년 국왕 선조에게 올린 글로 자신이 평생 터득한 '성인(聖人)이 되는 길'의 요체를 담고 있다. 한 세대 후배인 율곡 이이가 좀 더 자세하고 친절하게 '자기 구원의 가이드북'으로 쓴 '성학집요(聖學輯要)'와 함께 조선시대 유학의 수양·교육론을 담은 쌍벽으로 꼽힌다.

    '성학십도'는 천도(天道)를 밝히는 '태극도(太極圖)' '서명도(西銘圖)' '소학도(小學圖)' '대학도(大學圖)' '백록동규도(白鹿洞規圖)', 심성(心性)의 본질과 수련법을 말하는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 '인설도(仁說圖)' '심학도(心學圖)' '경재잠도(敬齋箴圖)' '숙흥야매잠도(夙興夜寐箴圖)'로 구성돼 있다. 서문, 10개의 도표와 해설을 합쳐 목판본 82쪽에 불과한 작은 책이지만 성리학의 완성자인 주희와 주돈이·장재·정복심 등 중국 유학자, 권근·노수신 등 한국 유학자가 두루 인용된다. 그림 하나, 글자 한 개가 고도로 압축된 의미를 담고 있어 해독이 몹시 어렵다. 한 교수는 "글자마다 빙산이 들어 있다"고 했다. 선조에게 해설 강의를 부탁받은 조정 신하들은 하나같이 난색을 표했다.

    유교에 익숙한 당대 지식인도 쉽지 않은 한문 고전을 근대 문명과 한글에 길들어 있는 현대 한국인이 이해할 수 있을까? 한형조 교수가 '성학십도'의 해설에 뜻을 둔 지 15년 만에 200자 원고자 3000매의 책을 낸 것은 그런 어려움을 말해준다. 그는 "이제 겨우 산의 8부 능선을 보여주는 책이 됐다"며 "그 안내를 받아서 정상에 오르는 것은 각자의 몫"이라고 했다.

    한형조 교수가 고금(古今)의 심연에 다리를 놓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원문, 한문에 우리말 조사나 어미를 붙여 읽는 현토(懸吐), 현대어 번역, 내용과 의미를 풀이하는 주석 및 해설을 이어가는 사중(四重) 장치다. 그럼에도 이 책은 친절하지 않다. 요즘 책으로는 매우 이례적으로 한자는 물론 한문까지 그대로 노출한다. 한 교수는 "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기계발서를 기대하는 독자는 사양한다"며 "공부가 자신을 자유케 할 것이라고 믿고 '생각하는 힘[思]'을 기르려면 직접 사전을 들추는 수고 정도는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책의 백미는 중국·한국의 유교 경전, 저술은 물론 서양의 유교 연구서, 서양 학자들의 종교와 철학서, 진화심리학 등 현대 학문까지 종횡으로 오가는 주석 및 해설이다. 문체가 현란하고 서양철학에도 해박한 한 교수는 "그동안 읽고 생각하고 연구한 수십 년이 이 작업을 위한 준비였나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퇴계가 강조한 '경(敬)'은 유대교의 '경건'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며 "동서양의 지혜는 70~80%를 공유하며 함께 논의할 때 시너지가 극대화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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