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포격 사건을 구술로 기록하다

조선일보
  • 유석재 기자
    입력 2018.07.04 03:01

    民博, '연평도 민속조사' 출간 "북한군 내려올까 공포에 떨어"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하던 2010년 11월 23일, 마을 사람들과 갯벌에서 굴을 딴 뒤 점심을 먹던 A씨는 별안간 집이 흔들리는 폭발음을 듣고 '훈련인가 보다' 했다. 주민 한 명이 뛰어들어와 "집에 불이 났다"고 외쳐 허겁지겁 뛰쳐나오는 순간 불덩이가 쏟아지며 천장이 내려앉았다. "조금만 늦었어도…." 6·25 참전용사인 B씨는 폭음을 듣자마자 국방부와 보훈처에서 받은 상장을 모두 태웠다. '행여 북한군이 연평도에 들어온다면….' 선착장 근처 여객선은 인천항으로 회항하려 했지만 승객들이 제지했다. "한 명이라도 더 태우고 가야죠!" 주민들은 황급히 대피소로 향했지만 노후돼 물이 새거나 흙이 들어찬 곳도 있었다.

    부대로 복귀 중인 연평도 해병대 장병들.
    부대로 복귀 중인 연평도 해병대 장병들. /국립민속박물관

    이것은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한 민속학적 '구술 기록'의 일부다. 국립민속박물관과 인천광역시는 '2019년 인천 민속문화의 해' 사업으로 지난해 실시한 민속조사의 3권짜리 보고서 '연평도 민속조사'를 3일 출간했다. 연구자 등이 8개월 이상 마을에 상주하며 조사한 결과물이다. '인천 공단과 노동자들의 생활문화' '70년 만에 다시 찾은 강화도 선두포' 등 9권도 함께 출간됐다.

    연평도 포격 구술 기록은 연평성당 사제관이 반파됐는데도 성모상은 피해가 없어 '기적의 성모상'으로 불렸으며, 산불이 났는데도 임경업 장군의 사당인 충민사는 멀쩡했다는 뒷이야기도 실었다. '연평도 민속조사'는 연평도에 대대로 살아온 토착민, 6·25 때 이주한 피란민, 군인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생활상을 조사한 보고서. 특히 조기잡이 파시가 있던 시절의 주거 환경과 변화상을 확인하기 위해 파시 골목의 가옥을 전수조사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