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째 담배를 피우는 회사원 김모(40)씨는 연초마다 '작심삼일'인 금연 시도를 올해엔 아예 하지 않았다. 작년부터 궐련형 전자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뒤 담배를 끊어야 할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김씨는 "(궐련형) 전자담배로 갈아탄 뒤부터 전처럼 냄새도 나지 않고 몸도 가뿐해진 것 같다"며 "아무래도 일반 담배보다 건강에 훨씬 덜 해롭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처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연의 기로에서 고민하던 흡연자 중 상당수가 궐련형 전자담배를 접하면서 금연을 포기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전자담배는 덜 해롭다'고 홍보하는 전자담배 제조업체 전략이 먹혀들면서 심리적 위안을 얻은 흡연자들이 금연을 미루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는 어디까지나 전자담배 애호가들의 '희망 사항'일 뿐, 궐련형 전자담배도 결국 똑같은 담배이기 때문에 담배의 해악을 피해갈 수는 없다고 말한다.

◇전자담배 열풍에 금연 시장 직격탄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의 금연 치료제인 '챔픽스'는 지난 2015년부터 2월부터 시작된 국가 금연 치료 사업에 사용되면서 지난 2014년 63억원 수준이었던 매출이 지난해 약 650억원으로 10배 이상 급증했다. 하지만 올해 1분기 챔픽스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0%나 곤두박질쳤다. 최근 전자담배 영향으로 금연 시도자가 줄어든 영향이다.

보건소와 병·의원에 등록한 금연 치료자 수는 지난 2015년 약 22만8792명에서 2016년과 2017년 각각 35만8715명, 40만8097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하지만 올 들어 지난 5월까지 참여자 수가 13만2024명을 기록하며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3%나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일부 흡연자들이 전자담배를 담배로 인식하지 않거나 일반 담배에 비해 유해성이 훨씬 적다고 생각해 금연 시도를 미루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이철민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가정의학과 교수는 "궐련형 전자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흡연을 안 하고 있다고 응답하는 경우가 많아 흡연율 조사도 믿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일반 담배와 달리 냄새가 안 난다는 점도, 금연에는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 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과거엔 환자 중에 담배 냄새 나는 사람들에게 금연 치료를 권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요즘은 거의 그러지 못하고 있다"며 "아이코스처럼 냄새가 아예 안 나는 담배가 나타나 금연 권유를 방해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담배는 담배일 뿐

지난 7일 식약처는 "아이코스를 비롯한 궐련형 전자담배 유해성 조사 결과, 일반 궐련형 담배만큼이나 유해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조사 방식에 따라 니코틴은 일반 궐련형 담배의 67~80% 수준으로, 타르는 오히려 1.2~1.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앞서 관련 조사를 실시한 독일 등의 경우와 비슷한 결과다. 식약처 관계자는 "타르가 더 많이 들어 있다는 건 여태까지 밝혀지지 않은 유해 물질이 많이 포함됐을 수도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담배 제조사들은 "타르 함량이 높다고 유해성이 크다고 하기 어렵고, 조사 대상 11개 유해 물질 중 타르를 제외한 나머지 검출량은 적게 나타났다"고 반박했다. 오히려 식약처 연구 결과가 궐련형 전자담배가 덜 유해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담배는 담배일 뿐 유해한 건 마찬가지"라고 입을 모은다. 이성규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국가금연지원센터장은 "일부 흡연자는 궐련형 전자담배가 덜 해롭다는 담배회사의 홍보에 넘어가 이를 위안으로 삼기까지 한다"면서 "하지만 건강을 잃고서야 속았다는 걸 깨닫는다면 그땐 너무 늦다"고 말했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는 "(궐련형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덜 해롭거나 유해 성분이 덜 배출된다거나 간접흡연 피해가 감소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