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병의 원숭이는 왜 두꺼비에게 밀려났나

조선일보
  • 곽아람 기자
    입력 2018.06.30 03:02

    라면·그릇·담배 등 디자인 연대기

    '일상과 감각의 한국디자인 문화사'
    일상과 감각의 한국디자인 문화사|조현신 지음|글항아리|340쪽|2만원

    진로소주의 초창기 상징은 두꺼비가 아니라 원숭이였다. 진로소주는 1924년 평남 용강군에 설립된 '진천양조상회'에서 시작됐다. 상표에 원숭이가 등장한 건 생김새가 사람과 비슷하고, 사람의 말을 이해하며, 술을 즐기는 기이한 짐승이라 하여 한반도 서북 지방에서 복신(福神)으로 추앙받아 온 영물이었기 때문이다. 두꺼비가 원숭이를 제치고 등장한 건 6·25전쟁 때 부산으로 피란했다 서울로 올라온 이듬해인 1955년부터다. 이북과 달리 서울에서는 원숭이를 속임수와 교활한 동물로 여겼다. 그리하여 '떡두꺼비 같은 아들' '은혜를 갚을 줄 아는 두꺼비'의 주인공이 원숭이 대신 발탁됐다.

    책의 부제가 '우리가 사랑한 물건들로 본 한국인의 자화상'이다. 한국 디자인사(史) 연구자로 국민대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 교수인 저자가 "디자인은 기술력을 통해 한 시대의 욕망과 미감을 형상화하는 작업"이란 전제 아래 소주·라면·책·담배 등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사물 15종의 디자인에 대해 쓴 연대기다. 1998년 '진로'가 '참이슬'로 바뀌고 2014년 환경운동 바람과 함께 맑은 이슬의 이미지가 강조되면서 위풍당당했던 두꺼비는 가느다란 크로키 선으로 자그맣게 그려져 한구석으로 밀려나 버린다. 저자는 '진로'에서 두꺼비가 사라져가는 이 과정을 "초현실적인 힘을 지닌 자연의 힘, 그것을 이야기한 전설과 민담이 사라지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해석한다.

    라면 디자인사도 재미있다. 한국 최초의 라면은 1963년 삼양식품 전중윤 회장이 일본 묘조식품의 기술 지원과 한국 정부의 국민 영양정책 보조금을 받아 미국 원조품 밀가루로 만든 '삼양라면'. 최초의 포장은 닭고기 국물 맛을 낸 일본의 '치킨라면' 포장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1969년엔 주황색 바탕에 짙은 파랑 글씨를 새긴 포장으로 변했는데, 이후 삼양라면의 원형이 됐다. 주황색 위주의 라면 포장에 빨간색이 자리 잡은 건 1986년 '신라면'이 나오면서. 빨간 바탕에 까만색 '辛'을 힘찬 붓글씨로 쓴 이 라면은 자극과 열정의 상징이 되었는데, 이는 올림픽과 경제성장의 분위기가 허용한 강렬함이기도 했다.

    한국 근대 식기류 산업의 발상지인 행남자기 변천사도 나온다. 행남자기 장식무늬를 보면 1940년대엔 장수를 염원하고 복을 비는 '壽'와 '福'자를 길상문양과 함께 새겨 넣었다. 1950년대엔 작고 소박한 꽃무늬가 많이 들어가고 1960년대부터 금박의 단순한 기하무늬와 함께 짙고 큰 장미, 백합 등 서구적 꽃무늬가 등장한다. 영국 로열앨버트사의 '올드 컨트리 로즈'에서 영향받은 행남자기의 '홍장미 세트'가 큰 인기를 누리며 팔려나갔고, 한국도자기에서도 1968년 '황실장미' 세트를 내놨다.

    출판계 대표적 장수 기업은 1945년 탄생한 을유문화사다. 1960년대 주택 건설 붐과 함께 하드커버 전집이 줄지어 꽂힌 유리문 책장은 도시 중산층의 새로운 지위재(地位財)가 되었다. 을유문화사의 '세계문학전집' 100권의 표지는 당시엔 보기 힘든 서양 명화들로 구성돼 있다. '제인 에어'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 표지로는 샤갈의 '나와 마을'이 쓰였다. 화집이 귀하던 시절, 서양 예술에 대한 갈증을 일부나마 만족시켜준 통로였다.

    학술서 같은 제목과 달리 친근한 소재와 재치 있는 문장 덕에 잘 읽힌다. 책장을 덮고 나면 무심히 지나쳤던 사물의 디자인이 달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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