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 뒤바뀐 운명... 야당 때 반대하던 민주당 이번엔 야당 탓?

입력 2018.06.30 13:56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규제개혁’을 본격적으로 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 27일 규제혁신회의를 연기하면서 "답답하다”고 했던 게 계기가 됐다. 다음날 민주당에선 규제혁신에 속도를 내자는 발언이 쏟아졌다. “야당이 규제혁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자 야당은 “이런 적반하장, 내로남불이 어디 있느냐”고 반발했다. “민주당이 야당시절 규제혁신법안을 줄곧 반대해놓고 이제 와서 남탓하느냐”고도 했다.

여당이 자신들이 발의한 규제개혁법안을 처리하자고 하고 야당은 자신들이 이미 발의해 놓은 법안부터 우선 논의하자고 하고 있다. 여야 공방 속 규제개혁 법안이 또다시 표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민주당 지난 3월 규제혁신 5법 발의... 규제샌드박스·규제 특례 도입이 핵심

그래픽=김란희
여당이 “야당이 규제혁신의 발목을 잡는다”고 비판하는 근거는 자신들이 발의한 규제혁신 5법 처리가 야당 때문에 지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 3월 규제혁신 5법을 발의했다. ▲행정규제기본법 ▲금융혁신지원특별법 ▲산업융합촉진법 ▲정보통신진흥융합활성화특별법 ▲지역특화발전특구규제특례법 제·개정안 등이다. 법안들의 공통 내용은 새로운 기술·서비스 관련 산업에 일정 기간 규제를 면제하는 규제 샌드박스와 규제 특례 도입이다.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은 신산업 분야 우선 허용, 사후규제 원칙, 규제 신속확인·규제정비 의무 등 신산업 규제 특례의 원칙과 기본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금융혁신지원법 제정은 핀테크 분야의 규제 샌드박스를 위한 것으로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받은 경우 금융규제 특례를 적용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산업융합촉진법 개정은 융합 신제품·서비스의 시장 출시 촉진을, 정보통신융합법 개정은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신기술을 위한 규제 샌드박스 도입을 위한 것이다. 지역특구법 개정은 지역혁신 성장산업에서 규제 제약 없이 실증 및 사업화를 지원하기 위해 추진된다.

이들 법안에는 규제와 관련한 법령 존재와 법상 허가의 필요 여부 등을 확인해 30일 이내 사업자에게 회신하고 관련법이 없거나 법이 불합리할 경우 시장 출시 목적으로 임시로 허가를 해주는 내용도 담겼다. 법령 공백 등 제한된 범위에서 실증을 위한 규제 특례도 허용하는데 사업자가 신청하면 심의를 거쳐 특례 부여 여부가 결정된다. 임시 허가와 실증 특례기간은 각각 2년 이내로 1회(2년 이내) 연장할 수 있다.

◇ 규제프리존법, 서비스법은 현 여당 반대로 처리 안돼


그래픽=조선일보DB
한국당 등 야당은 규제개혁 5법 처리에 소극적이다. 5법이 기존 자신들이 발의한 법안보다 더 후퇴했다는 이유를 댄다. 야당은 “우리가 발의해놓은 규제개혁 법안부터 처리하자”고 했다.

한국당은 박근혜 정부 시절 규제를 ‘손톱 밑 가시’라고 규정하며 관련 법안을 발의했었다. 대표적인 게 ‘지역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규제프리존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다.

규제프리존법 핵심 내용은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14개 시·도에 지역별 맞춤형 전략산업을 지정하고 이를 육성하기 위해 규제 특례가 적용되는 구역, 즉 규제 프리존을 둔다’는 것이다. 법안이 금지한 것 외에 모든 것을 허용하다는 ‘네거티브 방식’이다.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은 “규제프리존법을 시행하면 국민 생명·건강·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법안 처리를 극력 반대했다. 여야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못하다 19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이후 20대 국회 개원 첫날인 지난 2016년 5월 30일 이학재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이 법을 다시 대표발의했다. 공동 발의인 명단에는 당시 새누리당 의원 125명 전원이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규제혁신 5법에는 한국당이 박근혜 정부시절 발의한 규제프리존법의 내용도 포함돼 있다. 다만 일부 조항에서 차이가 있다. 규제프리존 특별법은 전국 14개 시·도에 27개의 전략산업을 지정해 규제를 대폭 완화한다는 내용이지만, 규제혁신 5법에는 규제특례심의위원회가 규제특례 구역·기간·규모·허용여부를 심의하도록 했다. 검토 항목은 신사업 실증에 따른 손해 발생가능성과 손해배상 방안, 국민의 생명·건강·안전·환경·지역균형발전·개인정보보호 등이다. 규제개혁 5법은 규제프리존 특별법 내용과 달리 지역별 전략산업을 지정하지 않는다.

지난 18대 국회부터 법안 발의만 ‘3수’째인 서비스법은 야당이 의료민영화를 위한 포석이라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으면서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 이 법은 정부가 5년마다 발전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서비스업 분야를 확대해 세제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 한국당 “규제혁신 5법은 기존 법안보다 더 후퇴”

야당은 여당이 발의한 규제혁신 5법에는 규제 특례 제한조건이 많아 규제혁신이 이루어질지 의문이라고 지적한다. 국민의 생명·안전·환경을 저해하면 규제 특례를 제한할 수 있다는 특례 제한조건은 해석에 따라 적용되지 않는 신산업이 거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규제개혁 5법이 규제프리존법보다 오히려 후퇴했다는 것이다.

개인정보를 엄격히 보호하도록 한 조건도 업계에서는 ‘족쇄’라며 불만을 토로한다. 미국은 4차산업혁명 활성화를 위해 기업이 필요할 경우 고객의 개인정보를 먼저 이용하고 사후에 동의를 얻는 제도까지 도입됐다. 개인정보 보호 정책이 비교적 강한 유럽에서도 고객이 동의하면 기업이 개인정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4차산업혁명의 핵심인 빅데이터 산업 육성을 위해서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규제개혁도 사람이 먼저냐”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한국당은 규제프리존법을 우선 논의하고 향후 보완 정책을 만들자고 주장한다.

한국당 핵심 관계자는 “여당의 규제혁신 5법은 기존 법안과 큰 차이가 없고 오히려 후퇴한 법안인데, 포장지만 바꿔서 내놓았다”며 “18, 19대 국회부터 논의를 해왔던 규제완화 법안부터 통과시키고 보완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순서 아니겠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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