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살구라고요?… 매실도 익으면 빨개진답니다

입력 2018.06.29 03:01

[그곳의 맛] [6] 광양 홍매실
100일 지나면서 빨갛게 변해… 달면서도 본래의 향과 맛 깊어져

"매실이 빨개 놀라셨죠?"

전남 광양에서 18년째 매실을 재배하는 구이란(56)씨는 지난 18일 작은 복숭아처럼 생긴 붉은 과일을 손으로 땄다. 선홍빛이 선명한 홍매실이었다. "이게 매실이냐"는 우문에 "청매실이 가면 홍매실이 온다"는 답이 왔다. 광양매실은 5월 중순부터 두 달간 여름이 제철이다. 먼저 달포는 청매실, 나머지 한 달은 홍매실을 수확한다.

전남 광양시 옥룡면 운평리 수향매실농원에 강렬한 여름 햇살을 머금고 붉은빛이 번진 홍매실이 탐스럽게 매달려 있다.
전남 광양시 옥룡면 운평리 수향매실농원에 강렬한 여름 햇살을 머금고 붉은빛이 번진 홍매실이 탐스럽게 매달려 있다. 청매실로 유명한 광양에선 요즘 홍매실이 명품 매실로 인기를 끌고 있다. /김영근 기자
봄꽃을 피우면 매화나무, 여름 과실을 달면 매실나무다. 광양에선 3월 초 사방에 진한 향기를 퍼뜨린 하얀 매화가 열매를 잉태한다. 이후 5월 꽃이 진 자리에 초록색 매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열매가 맺히고 나서 100일이 지나서야 매실은 불그스름하게 변한다. 지름이 40㎜ 된 익은 매실이 된 것이다. 100일이 안 돼 덜 익어 푸릇하면 청매실, 100일이 지나 익어 붉은 기가 있으면 홍매실이다. 구씨는 "매실도 여느 과일처럼 익으면 빨갛게 물들고 본래의 향과 맛이 더 좋다"고 말했다.

'매실의 고장' 광양에 홍매실이 새로운 명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농수산물품질관리법에 따라 국내 매실 중 지리적표시로 등록된 매실은 광양매실이 유일하다. 지리적표시는 그 지역의 유래 깊은 특산물에 한해 정부가 인정한다.

전남 광양시 현황
광양은 1930년대 매실 대량 생산을 일으켰다. 국내 매실 생산량의 25%를 담당하는 매실 주산지다. 매실나무 고향은 중국 쓰촨성이다. 국내 유입 시기는 정확하게 모른다. 다만 신라·백제 때 매화가 등장하는 사료가 전해진다. 매실은 우리를 통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1930년대 매실 상업화에 나선 광양은 매실 재배 역사가 90년이 넘는다. 1970년대 매실주가 인기를 끌고, 1990년대 의학 드라마가 히트를 치면서 건강식품으로 매실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다. 1997년 광양의 청매실농원 홍쌍리 대표가 국가 지정 전통식품 명인으로 지정됐다. 광양시는 매실 소득 증대를 위해 2007년 매실특작과(현 매실원예과)를 신설하고, 매실연구회와 광양매실생산자단체 영농조합법인을 잇달아 설립했다. 2013년 광양매실 매출은 354억원, 소득은 248억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국내 유통되는 매실 종류는 크게 열 가지다. 열매를 맺는 수분(受粉) 이후 익는 기준인 100일이 지나도 푸른 빛을 유지하는 품종은 두 가지밖에 없다. 나머지 여덟 가지 품종은 익으면 누렇거나 빨갛게 변한다. 국내에선 관행적으로 품종과 상관없이 빛깔이 푸르면 통상 청매실로 부른다. 여문 상태에 상관없이 덜 익어도 청매실로 통용된 것이다.

풋매실이 주로 유통되는 이유는 매실의 특성 탓이다. 매실은 유통과 보관이 까다로운 과일이다. 금방 물러진다 . 70~90일 된 풋매실은 수확한 지 일주일, 100~130일 자라 익은 매실은 사흘 정도가 신선도 한계선이다. 청매실이 실온에서 더 오래 버틴다. 애초 매실은 신선도 유지 기간이 짧아 마트와 과일가게 매대 등에 진열하기 어렵다.

광양 홍매실은 2000년 광양 옥룡면 수향매실농원이 재배를 시작했고, 나무가 자란 2004년 인터넷을 통해 시장에 처음 등장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냉담했다. "이게 살구 새끼지 무슨 매실이냐"는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반품 행렬이 이어졌다. 초록빛이 감도는 청매실만 매실이라는 고정관념의 장벽에 부딪혔다.

매실은 여느 과일처럼 익으면 붉게 변한다.
매실은 여느 과일처럼 익으면 붉게 변한다. 홍매실의 대표 품종 남고는 70~90일 때는 푸릇한 청매실 모습(왼쪽)이다. 120일 지나 익으면 자두처럼 빨갛다. /수향매실농원 제공
농협 공판장에서도 홍매실은 천덕꾸러기였다. 청매실과 홍매실이 섞여 있으면 농민들은 붉은 기를 제거했다. 풋매실(청매실)과 익은 매실(홍매실)이 한 바구니에 같이 출하되면 홍매실만 없앤 것이다. 시장에서 찾는 사람이 없어서다. 마치 김에 낀 파래와 같은 신세였다. 광양 홍매 실을 취급하는 박옥주 광양동부농협 차장은 "소비자들이 햇빛에 접촉해 빨갛게 변하고 완숙된 매실을 외면하니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반전이 일어났다. 매실의 본향에서 번진 홍매실의 인기가 최근 들어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햇살이 오래 어루만진 홍매실의 달고 풍부한 과즙에 빠져든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광양에선 수향농원처럼 홍매실을 재배하는 농가가 크게 늘었다. 2000년 전무하다시피 하던 홍매실 농가는 광양 전체 농가의 20%에 이른다.

이제 홍매실이 청매실보다 더 비싸다. 박옥주 차장은 "빛깔이 자두처럼 붉은 매실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 재배 농가도 증가 추세"라며 "10㎏ 기준으로 홍매실이 청매실보다 1만원이 더 비싼 가격 역전 현상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앞서 광양동부농협은 홍매실 사진이 박힌 전용 과일 상자를 2013년 제작해 소비 촉진을 유도했다. 그전에는 푸른 청매실 상자밖에 없었다. 이병남 광양시 매실정책팀장은 "매실은 농가와 제때 맞춰 직거래하는 과일이라는 인식이 퍼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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