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통 끼고 1분만 서면 당신도 조각 작품

조선일보
  • 변희원 기자
    입력 2018.06.29 03:01

    '1분 조각' 작가 에르빈 부름"일상의 물건 비트는 실험"

    전시품은 양동이 두 개. 아직 작품이 아니다. 작가가 바닥에 그려놓은 지시대로 두 발을 양동이 안에 넣고 서서 다른 양동이를 머리에 쓴다. 1분을 버틴다. 양동이 둘과 관람객 하나로 '조각'이 완성된다. 1분 동안은 세상 유일한 작품이지만, 1분이 지나면 사라지는 작품이다. 제목이 '1분 조각'(One-minute Sculpture)이다.

    서울 한남동 현대카드 전시문화 공간인 '스토리지'에서 열리는 오스트리아 개념미술가 에르빈 부름(64)의 전시를 보러 갈 땐 낯이 조금 두꺼워져야 한다. 대표작 '1분 조각'은 관객이 직접 참여해야 완성이 된다. 빈 세제통 세 병을 두 사람 몸통 사이에 끼우고 있거나 커다란 전구 밑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어야 한다. 에르빈 부름은 "'1분 작품'은 '작품으로 보이는 것' 자체가 작품이다. 이는 수동적이자 능동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여러 감정이 뒤섞여서 떠오를 수 있다. 부끄럽거나 뿌듯하기도 하고, 웃기거나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고 했다.

    에르빈 부름(오른쪽)이 한 여성과 세제병으로‘1분 조각’을 해보고 있다.
    에르빈 부름(오른쪽)이 한 여성과 세제병으로‘1분 조각’을 해보고 있다. 사진 촬영 후 그는“내 작품이지만 직접 해보니 부끄럽긴 하다”며 웃었다. /이진한 기자
    덜 이상한 행위를 하도록 지시할 수도 있을 텐데 그는 왜 하필 양동이 따위를 머리에 뒤집어쓰라고 하는 걸까. "일상에서 대하는 물건을 비틀어서 보는 것을 좋아해요. 현실 세계는 이미 충분히 미쳐 있고 꼬여 있지만 우리는 그걸 느끼지 못하죠. 인정하기 싫겠지만, 당신같이 글 쓰는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연필을 콧구멍이나 귓구멍에 넣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난 장난을 치는 것도 아니고, 내 작품은 농담이 아닙니다. 일상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거기에서 문제가 보일 수 있거든요."

    전시장 한 개 층을 다 차지한 '1분 조각' 시리즈는 에르빈 부름이 1997년에 내놓은 작품으로 지금까지 107가지 버전이 나왔다. 지난 3월 아트바젤 홍콩에서 인기를 끌었고, 유명 록밴드 '레드핫칠리페퍼스'는 2003년 뮤직비디오 '캔트스톱(Can't Stop)'에서 '1분 조각' 다섯 점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엔 신작인 '팻 카(Fat Car)', 2017 베네치아 비엔날레 출품작인 '바보들이 탄 배(Ships of Fools)'가 나왔다. 그의 작품은 뉴욕 구겐하임미술관과 파리 퐁피두센터 등에도 소장이 됐고, 이번 전시작 70점 중 48점이 테이트 미술관 소장품이다.

    대개의 미술관에선 작품을 '만지지 말라'고 하지만, 에르빈 부름의 전시에선 정반대다. 1분 조각에서 직접 조각이 되어보지 않는다면, 이 전시를 절반도 감상하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다. 에르빈 부름은 "지역마다 1분 조각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며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에서 전시했을 땐 아무도 안 하려고 했는데, 베이징 전시에선 다들 해본다"고 했다.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그는 "호텔에서 TV쇼를 봤는데 사람들이 스펙터클한 동작을 많이 하면서 즐거워하더라. 그걸 보니 왠지 내 작품을 잘 즐길 것 같다"고 했다. 9월 9일까지. (02)2014-7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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