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ESSAY] 팔순 중풍 남편 돌보려 급식 아르바이트하는 할머니

조선일보
  • 이양선 요양보호사
    입력 2018.06.29 03:10

    이양선 요양보호사
    이양선 요양보호사

    할머니가 학교로 출근하면 이 댁 현관을 들어선다. 나는 하반신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돌봐 드리는 요양보호사다. 할아버지는 언어와 손 사용은 어눌하지만 의사소통에는 무리가 없다. 나는 평일 그 댁에 가서 세 시간 동안 머문다.

    할머니는 신장이 좋지 않지만 찬값이라도 벌겠다며 일주일에 세 번 인근 학교에 출근해 급식을 돕는다. "찬은 부실하지만 할아버지만 챙겨 드리지 말고 꼭 점심을 먹고 가라"고 이르신다.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면 할아버지까지 나서 거드신다. 어떤 날은 찰밥을 맛깔스레 쪄놓고 꼭 먹고 가라 한다. 두 분의 빠듯한 살림 형편을 아니까 수저 얹기도 난감하다. 언젠가는 약 안 치고 기른 채소라며 베란다에서 거둔 상추를 내 손에 쥐여 주기도 하셨다.

    오전 열 시쯤이면 할아버지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나가 도로와 인도 사이 설치된 난간을 잡고 걷기 운동을 하신다. 당신이 더 나빠지지 않는 것이 그나마 할머니를 돕는 일이라며 재활운동을 열심히 하신다. 몇 년 전 중풍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조그만 수퍼를 운영하셨다더니 팔순 노인답지 않은 당찬 결기가 돋보인다.

    이 댁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세속의 번우한 상념에서 벗어나 진솔한 '나'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세상 사람들이 애써 매달리는 영달도 하잘것없어진다. 무구한 정(情)의 울림이 나를 인간이게 하기 때문이다. 내가 조그만 간식거리나 배추 겉절이를 싸들고 가는 것도 그런 마음에서였다. 사람을, 인정을 귀히 여기는 그분들의 품성은 나를 더욱 낮아지게 한다.

    며칠 전에는 그 집에 도착하니 사색이 된 할아버지가 삐뚤빼뚤 적은 계좌번호를 내밀며 은행부터 가자고 서둘렀다. 더욱 놀란 것은 돈의 액수였다. 덜컥 겁이 났다. 사기가 극심한 세상인데, 도대체 무슨 일인지 여쭤도 일단 빨리 가자신다. "아버지 전화한 지가 언젠데요? 입금이 안 됐어요." 아들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가 운영하는 식당이 잘 안돼서 걱정이라는 두 노인의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식에게는 목돈을 기꺼이 지원하면서도 정작 당신들은 과일 한 쪽 마음대로 드시지 못하는구나 싶어 짠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늘은 할머니 안색이 창백하다. 밤새 앓은 듯 누워있다. 연신 다리를 주물러주는 할아버지도 파리하다. 나보다 할머니 좀 챙겨줬으면 하는 간절함이 역력하다. 내려다보는 눈빛도 올려다보는 눈빛도 애잔하기만 하다. 할머니에게 지병이 있는 것을 아는 터라 숨차 하시는 환자를 모시고 응급실에 갔다. 다행히 간단한 처치만 받고 돌아왔지만 한동안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사의 지시였다. 나는 서둘러 두 분의 식사 준비를 했다. "이녁(당신)이 아팠뜰 때 이리 땃순(따스한) 밥상 받기는 처음이네." "그러네요 영감, 먼 데 있는 자식들보다도…."

    말끝을 흐린 할머니의 숟가락이 잠시 멈춘다. 그동안 마음 놓고 아플 수조차 없었을 할머니의 안간힘에 마음이 아렸다. 부모님을 지극으로 섬기고도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이분들 세대가 안타깝다. 어제의 이분들이 있어 오늘 우리가 존재하고, 머지않아 닥쳐올 우리의 모습이라는 생각에 숙연해진다.

    오늘도 작은 아파트 창가에 가득 내려앉은 햇살을 오순도순 즐기는 노부부의 모습이 풍경처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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