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격화되는 '通商 전쟁', 대통령이 안 보인다

조선일보
  •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입력 2018.06.28 03:17

    美·中·EU 관세 폭탄 '난타전'… 하반기 통상 환경 더 험난해
    통상 무너지면 국가적 재앙… '국가 총력전' 태세 필요'
    事後 불 끄기' 대신 선제적·전략적 대응해야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달 하순 일주일 새 벌어진 세 장면을 복기해 보자. 5월 31일 중국 정부는 외국 메모리 반도체 3사에 대한 가격 담합 조사를 벌였다. 실상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정조준한 것으로 반도체 강국인 '한국 견제'의 일환이다. 중국이 반(反)독점법에 따라 한국 기업들에 고(高)강도 규제를 가한다면, 파장이 엄청날 것이다.

    미국 상무부는 5월 23일 자로 '수입 자동차가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며 관련 조사를 시작했다. 올 8~9월 고율 관세 부과로 이어진다면 우리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자칫 우리의 대미 자동차 수출(지난해 85만여 대)이 막히고 13만 국내 일자리가 위험해질 수 있다. 문제는 자동차가 끝이 아니라 반도체·조선 등으로 미국발 관세 폭탄이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이 와중에 유럽연합(EU)은 '개인 정보 보호 규정(GDPR)'을 새로 도입해 5월 25일 자로 발효시켰다. 엄격한 개인 정보 보호 기준을 도입하고 위반 기업을 강력 제재하는 게 골자다. EU와 거래하는 외국 기업을 상대로 해당 기업 전 세계 매출의 4%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물릴 수 있다. EU가 새 기준을 도입할 때마다, 시범으로 자주 걸린 우리 기업이 느끼는 압박과 부담은 상당하다.

    미국·중국·EU의 이런 행보는 한마디로 보호무역주의의 홍수이자, 세계 통상(通商) 전쟁의 본격 개막으로 요약된다. 우리의 양대 교역국인 미국·중국은 물론 EU까지 관세와 보복관세의 난타전을 이미 벌이고 있다. 그 한가운데 서 있는 한국은 피할 데도, 의지할 곳도 없다. 지금 추세라면 올 하반기 우리 앞에는 한층 험난한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세계적 통상 환경은 가히 국가적 위기 국면인데, 미·북 정상회담과 남북 관계, 근로시간 단축 같은 이슈에 묻혀 통상 문제는 관심권 밖에 있다. 차분한 대응의 증표라면 긍정적이겠으나,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손 놓고 외면하고 있는 것이라면 큰일이다. 나중에 지불해야 할 비용이 더 커지고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한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다발로 펼쳐지는 세계 통상 전쟁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먼저 지금은 그간 우리가 당연하다고 전제하던 여러 조건이 무너지고 있는 비상(非常) 상황임을 인식해야 한다. 세계무역기구(WTO) 등을 근간으로 한 자유 교역 질서가 붕괴하고, 무슨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국내 시장을 보호하고, 기존 무역 협정 미(未)준수를 떳떳이 내세우는 '뉴 노멀' 시대이다. 국제 교역의 '판'이 완전히 바뀌고 있는데도 우리는 아직도 과거의 틀에서 현안을 바라보고 있다. 통상 전쟁 장기화를 염두에 두고 새로운 국제 교역의 판에 걸맞은 전략과 계획을 담은 종합적 큰 그림(로드맵)이 필요하다.

    둘째, 우리도 국가 총력전 태세로 나서야 한다. 많은 나라가 통상을 국가 핵심 과제로 취급하고 있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같은 최고 지도자들이 전면에 나서서 통상 현안을 직접 챙기고 있다. 우리도 그런 절실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사안이 터진 다음에야 뒤늦게 '사후(事後) 불 끄기'에 급급하는 방식으로는 새로운 파고를 헤쳐나갈 수 없다. 이를 위해 통상 관련 총괄 조정을 하는 컨트롤타워를 확립하고 우수한 통상 인력 확보·배치를 서둘러야 한다.

    셋째는 입체적·전략적 대응이다. 일례로 사안별로 우리와 입장을 같이하는 국가들과 연대해 '통상 네트워크'를 가동하는 것이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미국·EU가, 자동차에서는 EU·일본·멕시코 등이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다. 국가별 주요 현안과 동향을 사전(事前)에 파악해 필요한 조치를 먼저 취하고, 동원 가능한 지렛대(레버리지)를 쓰지 못할 이유가 없다. 세계 7위 교역 국가인 우리가 가진 여러 자산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수입 제한 조치 조기(早期)경보·대응 체제도 구축해야 한다.

    통상 교섭은 '논리'와 '명분'에 기초한 치열한 기(氣) 싸움이다. 전례 없는 세계 통상 환경 변화는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차원의 논리 구축과 명분 확보를 요구하고 있다. 교역 상대국·산업별로 이런 작업을 효과적으로 진행한다면, 국제사회에서 우리 나름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도 있다. 수세적 자세로는 아무것도 해결될 수 없음이 드러났다. 새로운 전략적 로드맵에 따른 적극적이고 선제적 대응으로 자세 전환이 긴요하다. 통상 전선(戰線)에서 둑이 무너지면 일자리·성장 같은 모든 정책적 노력이 헛수고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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