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 들여… 자발적 퇴사자에도 실업급여

조선일보
  • 이기훈 기자
    입력 2018.06.26 03:01

    해고 아니라도 6개월 후 지급 추진

    정부가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는 직장인에게도 실업급여(구직급여)를 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는 비자발적으로 직업을 잃은 경우에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데, 앞으로는 자발적으로 그만두어도 장기간(6개월 이상이 유력) 실직 중이면 주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할 경우 연간 최대 3조원 정도 들 것으로 보여 고용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25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정부와 노사 단체,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고용보험 제도개선 TF'는 장기 실직 중인 자발적 이직(離職)자에게도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안건에 대해 논의했고, 다수 위원이 지급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일부 위원이 "스스로 일을 관둬도 실업급여를 주는 건 사회보험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반대 의견을 냈지만, TF는 이를 부대 조항으로 달고 안건을 처리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용부는 조만간 고용보험위를 열어 구체적인 내용을 확정하고, 노사 합의를 바탕으로 정부안을 만들어 연내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연도별 실업급여 지급액 외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①이직 전 18개월 동안 고용보험에 180일(6개월) 이상 가입하고 ②일할 능력과 의욕이 있고 ③비자발적으로 이직했어야 하는 등 요건을 갖춰야 한다. 일을 자발적으로 그만둔 게 아니라 회사에서 잘려야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일을 하려고 지금 일자리를 스스로 관두는 경우 등까지 '실업자'로 보고 급여를 주긴 어렵다는 취지다. 그러나 현실적으론 자발적으로 일을 그만둔 뒤에 구직 노력을 했어도 적절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고, 이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고용부 의뢰로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실업급여 대상을 확대하면 50만명 이상이 추가로 실업급여를 받을 것으로 추계됐다. 지금과 같은 액수·기간으로 주려면 3조3000억원 정도가 필요한 셈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고용보험위에서 실업급여 대상자 확대 여부와 고용보험료 인상 여부를 함께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자발적 이직자에게도 실업급여를 주는 방안을 추진하는 이유는 현행 실업급여 수혜자 폭이 지나치게 협소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기준 고용보험 피보험 자격 상실자(실직자) 중에서 비자발적 이직자는 셋 중 하나(33.1%)에 불과했다. 전체 67%에 이르는 자발적 이직자는 실업급여 대상에 빠졌다. 비자발적으로 일자리를 잃고 고용보험 가입 기간(이직 전 18개월 동안 고용보험 180일 이상 가입)까지 충족한 경우는 전체 26.8%에 그쳤다. 낮은 신청률까지 고려하면, 고용보험 피보험 자격 상실자 중에서 실제 실업급여를 받는 비율은 11.7%에 그쳤다.

    ◇정부 "구직 활동 입증 강화"

    장인성 한국노동연구원 기획전략실장은 "우리나라 이직의 특성은 횟수가 잦고 실업 기간이 짧다는 것"이라며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실직자들이 생계 불안을 해결하려고 충분히 직업 탐색을 못하고 서둘러 직장을 선택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업급여 수혜 대상을 늘리면 이런 문제가 상당 부분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고용부는 노사 단체가 참여하는 고용보험위에서 구체적인 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실직 후 유예 기간, 급여액과 기간, 구직 활동 입증 방안 등이 쟁점이다. 당초 문재인 대통령은 "자발적 이직자라도 3개월 이상 실직 시에는 실업급여를 주겠다"고 공약했지만, TF 논의 결과 6개월로 두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고용부는 구직 활동 입증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현행 실업급여 수급자 중에선 99% 이상이 구직활동을 인정받고 있다. 구직 활동 입증이 사실상 형식적이라는 것이다. 모니터링을 강화해 수급자 수를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고용보험료 인상 불가피할 듯

    문제는 재원 마련이다. 장인성 실장 등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자발적 이직자 가운데 구직 노력에도 6개월 이상 일자리를 찾지 못해 추가로 실업급여를 지급받을 사람은 52만1000명으로 추계됐다. 여기에 현행 실업급여 평균 지급일수(118일)와 평균 하루 지급액(5만4126원)을 곱하면 연간 3조3290억원이 나온다. 지난해 전체 실업급여 지급액(6조2895억원) 절반이 넘는 금액이다. 고용부는 "연간 2조원 정도가 추가로 들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실업급여 대상 확대는 고용부가 기재부와 협의를 거쳐야 하는 사안"이라며 "현재로서는 추가 재원 규모를 추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고용보험료 대폭 인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난달 실업급여 지급액이 6083억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하는 등 실업급여 지출은 꾸준히 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최저임금 대폭 인상·근로시간 단축 등의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한 재원을 고용보험기금에서 쓰는 것도 고용보험 재정에 타격을 주고 있다.

    고용보험 제도개선 TF에 참여한 노동계 인사들은 "고용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면 추가 보험료 부담을 감내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경영계에서는 추가 부담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경영계 관계자는 "사회보험은 예상치 못한 위험이 닥쳤을 때 도와주겠다는 것인데, 스스로 택한 이직까지 사회보험으로 해결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실업급여 때문에 되레 취업을 늦추는 경우까지 생겨날 우려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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