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중국 상하이 증시에서 구이저우마오타이(貴州茅台)의 주가가 장중 800.95위안(약 13만7000원)을 기록하며 이 회사의 시가총액이 1조91억9700만위안(약 185조원)을 넘어섰다. 중국의 국주(國酒)로 불리는 마오타이를 생산하는 이 회사 주가가 한때나마 800위안을 넘은 것도, 시가총액이 1조위안을 넘은 것도 사상 처음이었다. 미·중 무역 전쟁 위기감 때문에 중국 증시가 최근 폭락하면서 마오타이 주가도 주춤하고 있지만, 마오타이의 1조위안 클럽 가입은 시간문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국 증시에서 시가총액이 1조위안을 넘어선 종목은 단 6개뿐이다. 공상은행, 건설은행, 페트로차이나, 평안보험, 농업은행, 중국은행 등 모두 국가 주도형 투자와 관련이 깊은 금융 및 에너지 국영기업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류 업체인 마오타이가 소비재 종목 중에서는 처음으로 이 클럽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 증시 전문가들은 "마오타이의 1조위안 클럽 가입은 중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국가 주도형 경제에서 중산층의 구매력에 기반한 소비 주도, 내수형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이 낳은 산물이라는 것이다. 특히 시진핑 정권의 반(反)부패 바람의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지배적인 전망을 깼다는 점에서 마오타이의 쾌속 질주는 더욱 극적이다.
◇소비재 최초 1조위안 클럽 예약한 마오타이
불과 5년 전만 해도 마오타이의 1조위안 클럽 가입은 꿈도 꾸기 힘든 일이었다. 2013년 부패 척결 깃발을 높이 든 시진핑 정권이 출범하면서, 마오타이는 제일 먼저 된서리를 맞았다. 그전까지 마오타이는 공산당과 중앙·지방 정부를 상대로 하는 대관(對官) 접대 자리의 필수 메뉴였다. 관(官)의 소비가 마오타이 전체 매출에서 최소 30% 이상을 차지했고, 관가로 가는 뇌물 절반이 마오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이 호화로운 접대 등을 금지한 '8항(項) 규정'을 공표하면서, 50%를 넘나들던 마오타이의 순이익 증가율은 2014~2015년 연속 1%대로 내려앉았다. 200위안대였던 주가도 시진핑 주석 취임 단 1년 반 만에 100위안대로 반 토막 났다. 마오타이가 기나긴 '보릿고개'를 맞았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
마오타이는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깨고 대반전을 이뤄냈다. 작년 영업이익이 582억위안으로 전년 대비 49.8%, 순이익은 271억위안으로 전년 대비 무려 61.9% 증가한 것이다. 주가도 2017년 한 해 동안 109% 폭등, 작년 12월 주당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650위안을 돌파하며 중국 증시에서 가장 비싼 황제주(皇帝株)에 등극했다. 그에 앞서 지난 4월에는 조니워커로 유명한 영국 디아지오를 제치고 시가총액 기준 세계 최고가 주류(liquor) 메이커로 올라섰다. 주가 오름세는 올 들어서도 이어져 이제 800위안 선을 눈앞에 둔 것이다. 주가는 저점이었던 2014년 대비 7배로 뛰었다. 지난달 마오타이 주총에서 "주가가 너무 비싸졌다"며 액면 분할을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등장할 정도가 됐다.
◇보릿고개 맞았던 마오타이의 대반전
시진핑 반부패에 제동이 걸릴 줄 알았던 마오타이의 폭풍 질주를 두고 외신들은 '줄어든 관의 수요를 민간의 수요로 메웠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 병에 시중가가 1500위안(약 25만원) 안팎인 주력 주종인 페이톈(飛天) 마오타이보다 훨씬 싼 대중적인 제품을 잇따라 출시하고, 알리바바·징둥닷컴 등 전자상거래 업체들과 손잡고 일반 소비자들을 대대적으로 공략한 결과라는 것이다. 2015년 양띠해 기념 한정판을 시작으로 매년 그해 띠를 딴 한정판 12간지 상품을 만드는 등 희소성을 부각시키는 영악한 판촉 전략도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장강경영대학원이 발행하는 경영 전문지 'CKGSB KNOWLEDGE'는 그러나 "마오타이는 마케팅이 필요 없는 브랜드이며 마오타이에 대한 수요는 줄어든 적이 없다"며 '마케팅이 열 일을 했다'는 분석을 일축했다. 시진핑의 반부패 바람도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마오타이의 수급 구조를 전혀 바꾸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오타이를 포함한 중국 백주(白酒)의 주력 소비층은 40대 이상 중·장년 남성이다. 특히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가처분소득이 늘어난 중산층 백주 애호가들은 권력자들이 즐기는 마오타이를 보며 느꼈던 '나도 마시고 싶다'는 욕망을 실천에 옮길 수 있게 됐다. 공직 사회가 마오타이를 멀리했던 것도 잠시일 뿐 이들이 여전히 마오타이를 즐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접대 자리에서 마오타이 병만 사라졌을 뿐 브랜드를 알 수 없는 빈 유리병에 마오타이를 담아와 마시는 편법이 일반화됐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 주석의 반부패 캠페인은 마오타이 공급에 병목을 만들어, 수급 불균형을 오히려 악화시켰다는 분석이다.
◇마오타이 수익성 더 강화시킨 반부패 캠페인
'CKGSB KNOWLEDGE'에 따르면, 마오타이 한 병을 생산하는 데는 9번의 증류와 3년의 숙성 기간이 필요하다. 한 병이 시장에 나오는 데 꼬박 5년이 걸린다. 시장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힘든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시진핑 정권 초기에 회사 측은 재고를 크게 줄였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수익성이 오히려 더 좋아졌다는 것이다.
미국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3년간 마오타이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73%에 달했다. 영국 디아지오의 28%를 압도하는 수치다. 현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작년 6월 말 기준 현금 보유액이 1080억위안에 이를 정도였다. 은행을 뺀 중국 상장 기업 중 최대 규모다. 경영진이 금융업 진출까지 검토하는 상황이다. 마오타이 한 병, 한 병이 '돈을 찍는 기계'라는 말이 나온다. 올해 초 마오타이는 5년 만에 처음으로 가격도 인상했다.
마오타이 신드롬을 두고 일부에선 거품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중국 증시가 MSCI(모건스탠리인터내셔널 신흥 시장 지수)에 편입되면서 마오타이로 해외 펀드의 자금 유입이 더 확대되는 상황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마오타이는 MSCI 지수에 편입된 233개 중국 기업 중 세계 최대 CCTV 업체 항저우하이크비전, 백색가전 분야 메이디그룹과 함께 글로벌 투자자가 가장 눈독을 들이는 3개 종목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도 "중국인은 마오타이를 마시고, 마오타이는 해외 증시 자금을 삼키고 있다"고 전했다. 마오타이의 질주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