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분자 한잔… 올여름 뒤집어집니다

입력 2018.06.22 06:10

[그곳의 맛] [5] 고창 복분자
생산량 작년 전국 1위 차지
풍천장어에 복분자술 곁들이는 '정력 코스'로 관광객 발길 끌어

조선 제20대 임금 경종(1688∼1724)은 숙종과 장희빈의 아들로 태어났다. 끝내 후사를 보지 못한 경종은 빈뇨증(頻尿症)까지 앓았다. 조선 왕실 기록물인 '승정원일기'(국보 303호)엔 경종의 증상을 우려하는 대목이 여러 군데 나온다. 고민하던 경종이 빈뇨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마신 것이 복분자차다. 흔히 복분자(覆盆子)는 남성의 성(性) 기능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복분자라는 이름부터가 '먹고 소변을 봤는데 요강(盆)이 엎어졌다(覆)'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지난 20일 오후 전북 고창의 관광객들이 엎어진 요강을 본뜬 조형물을 일으켜 세우는 동작을 하고 있다.
어, 어‐ 요강이 엎어진다!! - 지난 20일 오후 전북 고창의 관광객들이 엎어진 요강을 본뜬 조형물을 일으켜 세우는 동작을 하고 있다. 22일부터 3일간 선운산 일대에서 열리는‘고창 복분자와 수박축제’에서는 복분자를 익살스럽게 묘사한 여러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김정엽 기자
남성을 일으켜 세운다는 복분자로 일어선 고장이 전북 고창이다. 고창은 1960년대 전국 최초로 복분자 재배를 시작했다. 경사 2∼7도의 구릉지가 많아 시범 재배지로 선정됐다고 한다. 복분자는 물 빠짐이 중요해 완만한 경사가 재배에 최적이었다. 토질도 적합했다. 박필재 고창 농업기술센터 박사는 "고창의 토지 대부분은 미네랄이 풍부한 황토로 이뤄져 있어 복분자를 재배하기에 최적의 땅"이라고 말했다.

군민들을 위한 소득 작목 육성에 나선 고창군은 1990년대 복분자 시험장을 설립하고 재배 기술 전파에 팔을 걷어붙였다. 전부터 소문을 탔던 고창 풍천장어의 덕도 봤다. 선운사 옆 풍천에서 잡히는 장어를 먹고 나서 복분자술을 한 잔 걸치는 '정력 코스'가 관광객에게 인기였다. 고창의 복분자가 알려지면서 2000년 35㏊였던 재배 면적은 지난해 440㏊까지 늘었다. 지난해 전국 생산량 중 30%를 차지해 1위를 기록했다.

전북 고창군 현황
복분자는 이맘때가 제철이다. 7월 초순까지 영양분이 제일 풍부하다. 지난 9일 오전 10시 고창군 고수면의 한 복분자 농장에서는 열매 수확이 한창이었다.

6년 전 귀농한 강인성(69)씨 가족들이 어른 엄지손톱만 한 복분자 열매를 부지런히 따고 있었다. 강씨는 올해 처음 수확한 복분자 열매를 손녀에게 건넸다. 강씨는 "복분자는 꽃이 핀 뒤 열매를 맺기까지 한 달밖에 걸리지 않아 농약을 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991㎡ 규모의 농장을 운영하는 강씨는 올해 1.5t가량(3.3㎡당 5㎏)의 복분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작황이 좋아 평년보다 3.3㎡당 수확량이 1㎏ 정도 늘었다고 했다. 올해 복분자 시세는 ㎏당 1만~1만1000원 정도다. 강씨는 한 번 수확으로 1500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내다봤다. 강씨는 "복분자처럼 면적 대비 고소득을 낼 수 있는 작물은 흔치 않다"고 말했다.

복분자는 고창이 '귀농 1번지'로 꼽히게 한 효자 작물이다. 파종 이듬해부터 수확이 가능하고 재배 기법이 풍부해 실패 위험이 낮아 귀농인이 선호한다. 농협에서 전량 수매해 최소한의 소득이 보전되는 것도 장점이다. 고창군 전 지역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인 사실도 판로 확보에 도움이 된다.

고창에는 특히 젊은 귀농·귀촌인이 많다. 지난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9307가구(1만3923명)가 고창으로 귀농·귀촌을 했는데, 이 중 30대 이하가 3142가구(33.8%), 40대가 2104가구(22.6%)다. 귀농·귀촌인의 40% 정도가 복분자 재배를 선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부천에서 직장 생활을 했던 김기상(47)씨는 귀농 초기 어려움을 겪었지만, 복분자 재배로 활로를 찾았다. 복분자로 번 돈을 기반으로 쌀·상추·깻잎 등의 작물로 농사를 확대해 소득을 늘렸다. 영농으로 틈틈이 모은 돈에 퇴직금을 보태 2층짜리 건물도 세웠다.

지난 9일 오전 전북 고창군의 한 복분자 농장에서 수확 체험에 나선 관광객이 복분자를 따서 맛을 보고 있다.
지난 9일 오전 전북 고창군의 한 복분자 농장에서 수확 체험에 나선 관광객이 복분자를 따서 맛을 보고 있다. /김영근 기자
복분자는 고창의 산업 지도까지 바꿔놓았다. 고창군은 복분자의 다양한 효능을 바탕으로 2차 가공식품 산업을 육성했다. 제조업과 가공시설이 거의 없었던 고창에 복분자 제조업체 80여 개가 생겨났다. 복분자 술을 비롯해 음료·과자·아이스크림·화장품 등 다양한 식품을 만드는 업체가 한때 일자리 1000여 개를 창출했다. 고창군은 복분자 산업의 부가가치가 연간 800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한다.

고창군은 지역 특산품인 복분자와 수박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해마다 '고창 복분자와 수박축제'를 연다. 올해 15회째를 맞는 축제는 22일부터 24일까지 선운산도립공원 일대에서 열린다.

축제에서는 청정 복분자로 만든 한과와 젤리, 복분자주 시식 행사가 이어진다. 전국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고창 수박과 수박화채도 맛볼 수 있다. 복분자·장어를 이용한 요리 경연대회와 단체 물총싸움, 장애물경기, 수박 풀장, 수박 컬링 등 다채로운 이벤트도 준비된다. 고창 풍천장어 등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포장마차도 축제장을 메운다. 지난해 축제엔 13만5200명이 다녀가 61억원의 지역경제 유발 효과를 냈다. 양치영 고창군청 홍보팀장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청정 고창에서 난 복분자와 수박을 만끽할 수 있는 식도락 축제"라며 "지역 농민들의 소득 창출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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