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장 선거와 '바르도 퇴돌' -티벳 사자의 서

입력 2018.06.21 11:25 | 수정 2018.06.21 17:47

정책·공약이 지역민을 위한 ‘퇴돌’
이번 선거 예전보다 공약들 부실해
예전엔 200쪽 공약집들 펴내 경쟁

티벳 불교의 경전 중 ‘바르도 퇴돌’이란 게 있다. 대개 ‘티벳 사자의 서’라고 알려져 있다. ‘바르도’는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차안에서 피안으로 가는 사이에 있는 세계를 말한다. 우리 말로는 ‘중음천’쯤 된다. 영화, ‘신과 함께’에서 차태현이 지나가던 심판 단계와 비슷하다. ‘퇴돌’은 '듣는 것을 통한 영원한 해탈’을 뜻한다. 이를 합하면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가는 중간에서 한 소리를 들어 해탈을 한다’는 얘기가 된다. ‘사이의 세계에서 한 소리를 들어 환생과 업보의 악순환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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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요즘에 가져와 보면 지금이 민선 6기에서 민선 7기로 넘어가는 ‘바르도’다. 법적으론 민선 6기이지만 인수위가 활동하면서 실제적으론 ‘민선 6기도 아닌 것이 민선 7기도 아닌 것’이쯤 된다. 민선 6기 측은 “(민선 7기측이)점령군처럼 행동한다”고 볼멘 소리를 하고, 민선 7기 측은 “세상이 바꼈는데 아직 타성에 젖어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오거돈 당선자(더불어민주당) 공식 사이트에 올려져 있는 공약 내용 캡처.
이 바르도에서 ‘퇴돌’은 무얼까? ‘진영, 색깔, 정치 논리의 재탕, 삼탕이 아니라 그 환생과 업보, 악연’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소리 ‘말이다. 갈등과 반목, 대립이 아니라 통합과 민생, 지역 발전과 시민 행복을 가져오게 하는 소리쯤도 되겠다.

지방선거, 지방정치에서 그 소리는 ‘정책’, ‘공약’일 것 같다. 각 후보들은 공약, 정책 개발과 제시에 공을 들인다. 그러나 ‘정책’ ‘공약’은 딜레마를 갖고 있다. 자체가 딱딱하고 따분하다. 재미가 없다. 사람들에게 잘 먹혀들지 않는다. 이미지, 구호가 훨씬 효과 있다. 예능, 감각적 요소가 훨씬 유혹적이다. 오죽하면 ‘폴리테이너(정치+엔터테이너)’란 말이 있을까.

이번 부산시장 선거는 어땠을까? 1995년 제1기 민선 이후 지난 23년간 선거에서 ‘정책’, ‘공약’ 선거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왔을까? .

오거돈 부산시장 선거 당선자 측이 지난 18일부터 각 실-국별 업무 보고를 받는 등 인수위 가동을 본격화했다. 그러면서 당선자의 공약, 정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업무 보고가 당선자의 공약, 정책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당선자 측의 향후 시정 방향의 가닥이 공약 구체화를 통해 잡혀가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오 당선자(더불어민주당)와 선거 2위였던 서병수 후보(자유한국당)의 공약을 살펴봤다. 오, 서 후보 모두 선관위에 5대 공약을 등록했고, 공식 사이트에 공약 내용을 적어두고 있다. 오 당선자는 ‘OK의 약속’이란 메뉴에 ‘동북아 해양수도 반드시 만들겠습니다’, ‘사회복지분야 8대 공약’, ‘IC·CT 산업육성 8대 정책’, ‘대중교통 중심도시 부산’, ‘시민행복 6대 과제’ 등의 굵직굵직한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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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후보는 ‘서병수의 약속보험’이란 메뉴에 핵심공약 10선과 일자리, 문화, 해양수산 등 13개 분야의 369개의 공약상품을 올렸다. ‘일자리 중심도시 부산’, ‘글로벌 게이트웨이 건설’ ‘시민 중심의 빠르고 편리한 부산교통’ 등을 주요 공약을 내걸었다.


서병수 후보(자유한국당)의 공식 사이트에 게재된 공약 내용 캡처.
그런데 오 당선자 측은 인수위 활동 개시 이후에도 전체 공약이 제대로 정리가 안돼 종종 혼선을 빚었고, 서 후보 측도 선거 기간 중 369개 공약상품을 급조해 올려, 공약이 제목만 있고 세부 내용이 거의 없는 경우도 있었다.

반면 16년 전, 12년 전, 8년 전 선거 때 각 후보들은 선거 기간 중 정책자료집, 정책공약집을 발간했다. 오 당선자는 2004년 부산시장 보궐선거(6월5일, 열린우리당)에 출마, 5월25일 ‘OK!의 부산비전과 약속’이란 110여쪽 짜리 정책자료집을, 2006년 지방선거(5월31일, 열린우리당)에선 5월17일에 ‘굿바이 올드 부산!/OK! 뉴 부산’이란 280쪽 짜리 정책자료집을 냈다. 공약이 그만큼 더 다양하고 구체적이었다는 얘기다.

한나라당 허남식 후보도 2010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글로벌 부산 2010’이란 140쪽 짜리 정책자료집을 냈고, 2006년 시장선거에 출마했던 김석준 후보(민주노동당)는 170쪽 짜리 정책자료집을 발간했다. 이번 시장 선거 때 후보들이 제시한 정책, 공약 등에 비해 훨씬 내용도 알차고 상세하다.

2002년, 2004년, 2006년, 2010년 등 예전 부산시장 선거 때 후보들이 발간한 정책공약, 자료집.
지역 정가에선 이에 대해 “부산의 시장 선거가 보다 이미지, 감성 등에 더 치중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라고들 분석한다. 현상, 현실이 그렇다해도 정책, 공약은 여전히 중요하다. 부산을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이어줄 ‘바르도 퇴돌’이기 때문이다. 오 당선자나 다른 당선자들, 그리고 향후 지방 정치를 꿈꾸는 모든 선량들이 시민들을 위한 ‘바르도 퇴돌’을 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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