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북의 善意만 믿고 국방 근간 허물어선 안 된다

입력 2018.06.20 03:18

북핵 협상 장기화로 한·미 연합훈련 중단 계속되고
국내 反美 세력까지 합세하면 주한미군 철수 여론 확산될 수도
낭만적 기대·허술한 전략 겹치면 最前線 방어 무너진 미래 닥칠 것

신원식 前 합참 작전본부장·예비역 육군 중장
신원식 前 합참 작전본부장·예비역 육군 중장
대한민국 국방의 두 축은 한·미 동맹과 자주국방이다. 지난주 미·북 정상회담 결과, 북한 비핵화를 시작도 하기 전에 연합훈련 중단을 결정해 한·미 동맹이 흔들리고 있다. 앞으로 남북 군사회담에서 긴장 완화라는 달콤한 명분에 빠져 자주 국방 태세마저 약화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한·미 동맹의 토대인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경우 양국이 6·25전쟁처럼 외부 침략을 받았을 때만 적용된다. 타국을 침략하거나 양국 영토를 벗어난 대외 군사 개입은 적용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이를 뒷받침하는 연합훈련은 합법적이다. 북한이 이를 '침략 전쟁 연습'이라고 억지 부리는 것은 동맹을 흔들려는 모략이다. 미국 대통령이 북한 주장에 공감하고, 주한미군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표출한 것은 동맹의 앞날에 불길한 징조이다.

더욱이 미국은 '훈련 안 된 군대는 전장(戰場)에 투입하지 않는다'는 철칙을 갖고 있다. 승리 가능성도 낮고 준비 안 된 병사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비윤리적 행위라는 판단에서다. 북핵 협상 장기화로 연합훈련 중단이 계속되고 트럼프 대통령과 한국 내부의 반미(反美) 세력까지 합세하면, 주한미군 철수 여론이 급물살을 탈 것이다.

주한미군이 있는 지금 정전(停戰) 체제와 주한미군 없는 미래 평화체제 가운데 어느 쪽이 한국민에게 더 나은 평화를 제공할 것인가. 북한이 속임수를 쓰거나, 지금의 선의를 주한미군 철수 후 악의로 표변하면 우리에게 대재앙이 될 것이다. 미군 철수 후 일어난 6·25전쟁이나 베트남 공산화 같은 상황이 재현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자주국방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원칙은 남북한 간의 군사적 신뢰가 완전히 구축되기 전까지 최전방 대비 태세를 훼손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비무장지대(DMZ)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처럼 평화지대로 만들자는 식의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DMZ 안에 생태공원이나 관광, 남북한 만남의 장소 등을 만든다면 반길 일이다. 그러나 DMZ를 벗어나 남북이 동일 면적으로 부대와 전투시설을 철수하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판문점~평양은 215㎞인 반면 판문점~서울은 불과 62㎞로, 총인구의 절반이 밀집한 서울·경기도의 안보 불안이 현실화되기 때문이다.

장사정포와 아군의 화력(火力) 자산을 후방으로 동시 철수하자는 북한의 제안은 어떨까. 북한은 사거리 50여km 이상의 장사정포 1100문을 갖고 있는데, 이 중 340여 문이 수도권을 조준하고 있다. 장사정포는 평소 탄약고와 함께 갱도에 보관하며, 포탄 사격은 야외 진지로 나와서 해야 한다. 유사시 아군이 북의 갱도만 파괴해도, 북한은 포 1문당 적재한 10~22발을 쏘고 나면 탄약이 없어 더 이상 사격을 할 수 없다.

이 장사정포는 '서울 불바다' 위협의 핵심 전력으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콘크리트 관통력이 없고 정확도가 크게 떨어진다. 일례로 북한은 2010년 연평도 도발을 오랫동안 준비했지만, 발사한 장사정포의 절반 이상이 바다에 떨어지거나 불발됐다. 우리 측 사망자는 야외에 있던 4명이 전부였다. 포탄 성능과 우리 군의 대응력을 감안하면 장사정포 위협은 크게 과장돼 있다. 한국군은 장사정포 위협과 북한군의 양적 우세, 휴전선에서 짧은 작전종심 등을 상쇄하는 화력 자산을 갖추고 있다.

문제는 북한의 평화·선전(宣傳) 공세에 넘어가 한국군 화력 자산 등을 철수할 경우, 후방이 대부분 인구 밀집 도시지역이기 때문에 옮길 데가 없어 그냥 해체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과대평가된 장사정포 위협에 속아 우리로선 훨씬 치명적인 대가를 치르는 오판을 하게 되는 셈이다.

국방·안보의 기본은 상대방의 '의도'가 아닌 '능력'을 기초로 대비하고, 최선의 선의(善意)가 아니라 최악의 악의(惡意)를 전제로 임하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평화 분위기 고조에 따른 긴장 완화는 심리적 안도감에 불과하며, 진정한 평화는 실체적인 군사 위협이 감소할 때 가능하다. 우리는 휴전 이후 한 번도 약속을 지킨 적이 없는 북한이 이번에는 지킨다는 '확증 편향'에 젖어 모험을 하고 있다.

'낭만적 기대'와 '허술한 전략'이 겹치면, 주한미군도 철수하고 최전선 방어 태세마저 허물어진 미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모든 생명 줄은 오로지 '북한의 선의'에 맡기게 된다. 이런 평화는 가짜이며, 파멸이 뒤따랐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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