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정은·시진핑 세 번째 만난 날 韓·美가 한 일

조선일보
입력 2018.06.20 03:20

한·미 국방부는 19일 "8월에 실시하려던 방어적 성격의 을지프리덤가디언(UFG) 군사연습의 모든 계획 활동을 유예(suspend)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해서 북한 핵이 폐기되면 좋은 결실이 된다. 그러나 현재까지 그렇게 된다는 작은 징후도 찾을 수 없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 연합훈련은 양국 국방부 말처럼 순수한 북한 남침 대비용이다. 그중에서도 UFG는 실제 병력이나 무기 동원은 최소화하고 도상 훈련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북에 큰 위협이 되지도 않는다. 미국과 북한이 협상 진행 중이라고 꼭 중단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한·미 연합훈련은 북한이 수십 년간 중단을 요구했지만 동맹의 상징과도 같기 때문에 응하지 않아왔다. 지난 1992년 북 비핵화 유도를 위해 팀스피릿 훈련이 중단됐던 이후로 처음이다. 물론 당시에도 북은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다. 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나.

심각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국에는 일절 상의하지 않은 채 제 맘대로 한·미 연합 훈련 중단을 결정해 버린 것이다. 심지어는 미국 국방부도 제대로 알지 못한 것 같다. 미 국방장관은 알았다고 하지만 실제 그렇다고 해도 충분한 사전 검토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중대한 문제가 즉흥적으로 결정됐다니 기가 막힌다. 더구나 트럼프는 한·미 연합 훈련을 '도발적'이라며 전쟁 게임(war game)'이라고 마치 북한 방송 같은 말까지 했다. 김정은으로선 가만히 앉아서 수십 년 숙원을 풀었다.

한·미 훈련 중단은 북핵 협상의 마지막 고비에서 북을 핵 폐기의 길로 밀어넣을 최후의 카드였다. 그걸 제대로 된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던져버렸다. 왜 이렇게 성급해야 하나. 북이 없앴거나 없앤다는 풍계리 핵실험장이나 미사일 시험발사장은 북이 스스로 밝힌 대로 '사명을 마친' 시설들일 뿐이다.

한·미도 이런 점을 우려했는지 백악관은 한·미 훈련 중단이 "북한이 선의를 갖고 행동하는 한"이라고, 청와대도 "북이 비핵화 실천 의지를 보이고 대화가 유지되는 한"이라는 조건을 붙이긴 했다. 그러나 중단한 훈련을 재개하기 힘들다는 것은 한·미 정부가 더 잘 알 것이다. 재개하면 북이 거세게 반발할 것이 명확하고 현재의 한·미 정부가 이를 이겨낼 가능성은 없다. 앞으로 북은 다른 훈련 중단도 요구할 것이고 관철할 것이다. 한·미 훈련은 사실상 없어지는 길로 가고 있다. 한·미 훈련이 유명무실해지면 주한 미군은 기지 방어 외엔 할 일이 없어진다. 그런 주한 미군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의문과 공격은 한·미 모두에서 거세질 것이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이 돈 문제를 들어 그 선봉에 설 것이다.

미·북 간에 진행된다는 실무 협상에서 또 어떤 터무니없는 거래가 이뤄질지 알 수 없다. 올 들어 진행된 북핵 협상 과정에서 김정은은 본인이 원했던 것 이상을 이미 얻었다. 정상회담 쇼를 통해 도발적 이미지를 벗었고 한·미 대통령을 자신과 같은 배에 태웠다. '북한 비핵화'는 전혀 다른 의미의 '한반도 비핵화'로 바뀌었다. 김정은은 이날 올 들어 세 번째로 중국을 방문했다. 시진핑 주석과 제재 해제 문제도 논의했을 것이다. 이미 중국은 북한 관광 제한을 풀었고 국경지역 교류도 사실상 재개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제재 구멍마저 뚫리면 무엇으로 북핵 폐기를 이끄나.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북이 완전히 비핵화한 것이 증명될 때까지 제재 완화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행태를 보면 이 말도 쉽게 뒤집힐 수 있다. 한·미는 북의 선의를 믿고 북핵 협상의 험로를 간다고 한다. 안보를 상대의 선의에 의지하는 것은 제 안전을 운(運)에 맡기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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