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고용 상황이 급격히 악화하면서 '쇼크' 수준을 넘어 '참사'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일본 등 주요국이 완전 고용에 가까운 일자리 호황을 누리고 있고 한국 경제도 성장률이나 주가 등 거시 지표상으로는 괜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고용은 IMF 외환 위기나 글로벌 금융 위기에 맞먹는 한파에 시달리고 있다. '일자리'를 1호 공약으로 내세우며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설치한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일자리 문제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정부는 지난해 11조원, 올해 3조원 규모의 일자리 추경까지 편성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경직된 노동시장, 일부 업종에 편중된 산업 구조, 고령화 등 구조적 요인과 더불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앞세운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고용 참사의 주원인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문 대통령의 인식에 지방선거 압승까지 더해지면서 소득 주도 성장 실험에 더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놓고 청와대 핵심 경제 참모들과 한 차례 맞붙었던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15일 고용 통계가 발표된 직후 관계 부처 장관들을 모아 긴급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5월 고용 동향이 "매우 충격적"이라면서도 최저임금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현실화된 고용 참사
통계청이 매달 발표하는 고용 지표는 올 들어 달이 거듭할수록 '최악'을 경신하고 있다. 15일 통계청이 발표한 '5월 고용 동향'에서 5월 취업자 수는 2706만4000명으로 지난해보다 7만2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가 한창이던 2010년 1월(1만명 감소) 이후 8년 4개월 만에 최저다. 취업자 수는 우리 경제 규모와 인구 요소 등을 감안할 때 30만명가량 증가해야 정상 수준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지난 1월 33만4000명이던 숫자는 2월 10만4000명으로 뚝 떨어진 뒤 3월 11만2000명, 4월 12만3000명으로 약세를 보이다 5월 들어서는 급기야 10만명 선마저 무너졌다. 지난해 5월엔 취업자 증가 폭이 37만명이었다.
실업률은 4%로 1년 전보다 0.4%포인트 올라 5월 실업률로는 2000년(4.1%) 이후 18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실업자 수 역시 작년보다 12만6000명 증가한 112만1000명을 기록해 2000년 이후 가장 많았다.
청년(15~29세) 관련 고용 통계도 연일 최악을 갈아 치우고 있다. 청년 실업률은 1년 전보다 1.3%포인트 높은 10.5%까지 올라 5월 기준으로는 통계를 작성한 2000년 이후 가장 높았다. 청년 체감 실업률은 23.2%로 역시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15년 이후 최악 수준이었다.
고용 악화는 업종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만드는 공공행정·국방·사회보장행정, 보건·사회복지서비스 업종 등을 제외한 대부분 업종에서 일자리가 늘기는커녕 감소하고 있다. 1년 전과 비교할 때 제조업 일자리는 7만9000명, 도·소매업은 5만9000명, 사업시설관리·사업지원·임대서비스업은 5만3000명, 숙박음식점업은 4만3000명 감소했다. 전체 일자리 증가분의 3분의 1가량을 담당해온 건설업 일자리 역시 4월 3만4000명 증가에서 5월 4000명 증가에 그쳐 10분의 1 토막이 났다.
외환 위기 같은 외부 충격이 없는데도 한국 고용 시장이 최악으로 치닫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반면 미국·일본·유럽 등 주요 선진국들은 세계경제 회복과 구조 개혁 등에 힘입어 유례없는 고용 호황을 누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 5월 실업률은 3.8%까지 떨어져 18년 만의 최저치로 떨어졌고, 일본은 4월 실업률이 2.5%로 완전 고용 상태를 넘어 심각한 인력 부족에 시달릴 정도다. 10%가 넘는 실업난에 시달렸던 프랑스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취임 이후 시행한 노동 개혁과 민영화 등에 힘입어 2월 실업률이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8.9%까지 떨어졌다.
◇근로시간 단축, 고용 재앙 촉발 우려
'고용 참사' 수준의 5월 고용 지표와 관련, 경제 전문가들은 "7월부터 시행되는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의 충격파까지 더해지면 자칫 고용 재앙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등에선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근로자 부족분을 추가 채용할 경우 11만~19만명의 신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다수 전문가는 근로시간 단축이 고용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 여파로 임금이 깎이면 소비 여력이 줄어 내수 시장이 쪼그라들고, 기업들이 채용을 더 꺼리게 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정부가 '소득 주도 성장'을 추구하며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와 정반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 자료(2017년)에 따르면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면 근로자 평균 월급이 305만원에서 266만원으로 39만원(-12.7%)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근로시간 단축 이후 정규직은 10.5%, 비정규직은 17.3% 월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책 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물가는 오르는데 근로시간 단축으로 수입은 줄게 돼 씀씀이를 줄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프랑스의 경우 사회당 정부 시절인 2000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주 35시간제를 시행했지만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든 바 있다. 기업들이 해외로 공장을 옮기는 등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직원들 저항 때문에 줄어든 근로시간만큼 임금을 깎기는 어렵고 인사 관리 비용 등 고정 비용은 더 늘어나 사람을 더 뽑지 않고 버티겠다는 기업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중소기업 50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업체들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6.1명의 근로자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85%는 채용 계획이 없다고 했다. 이들은 채용 계획이 없는 이유로 '채용할 필요가 없어서'(63.7%) '추가 인건비 부담이 커서'(23.6%) 등을 꼽았다.
서울 지역 대학교수 A(경제학)씨는 "최저임금 인상에 근로시간 단축까지 겹치며 기업들의 채용 심리가 얼어붙고 있다"며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