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25시] 의뢰인 돈이 내 돈?… 피고인 된 변호사들

조선일보
  • 양은경 기자
    입력 2018.06.14 03:01

    합의금 명목으로 맡긴 돈, 사무실 월세 내고 직원 월급 줘
    변호사들 '불황형 범죄' 증가

    지난 12일 오전 10시 10분 서울중앙지법 421호. 변호사 이모씨가 피고인석에 섰다. 경매 배당금을 받아 갈 권리가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속여 돈을 받아 간 혐의(사기)였다. 1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던 그에겐 이날 벌금 250만원이 선고됐다. 이어 변호사 조모씨 재판도 열렸다. 의뢰인이 잘못 송금한 330만원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횡령)였다. 법정에 불출석한 그에게 법원은 1심과 같은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20분쯤 뒤 서울중앙지법 525호에선 변호사 김모씨가 재판을 받았다. 그는 사건 수임 과정에서 만난 사람에게 "돈을 맡기면 자산가에게 300억원을 대출받게 해 주겠다"면서 3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됐다. 이미 다른 사건으로 구속돼 수의(囚衣)를 입고 나온 그는 "변호사로서 직업윤리 의식이 없었던 것 같다. 하루하루 자책하며 살고 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같은 날 한 법원에 세 변호사가 각각 다른 사건으로 피고인석에 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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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일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드물었지만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 지난 8일에도 서울중앙지법에선 오전 10시에 문모 변호사, 오후 4시엔 한모 변호사의 재판이 예정돼 있었다. 문 변호사는 의뢰인이 합의금으로 맡긴 10억원을 횡령한 혐의, 한 변호사는 경찰 소청심사위원으로 있으면서 해임된 경찰관에게 500만원을 받은 혐의다.

    1999년에 만들어진 대법원 예규는 전직 대통령, 고위 공무원, 국회의원을 비롯해 변호사 사건도 '중요 사건'으로 분류하도록 했다. 법원은 중요 사건에 대해선 사건 요지와 재판 일정을 언론에 공개한다. 하지만 '피고인 변호사'가 늘면서 법원 주변에선 "이젠 변호사는 중요 사건에서 빼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실제 범죄로 입건된 변호사는 2011년 375명에서 2016년엔 636명으로 늘었다. 5년 만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변호사 증가와 업계 불황이 겹친 탓이 크다고 변호사들은 말한다. 1999년 변호사는 4300여 명이었지만 지금은 2만3000명이다. 다섯 배가량으로 늘었다. 그러면서 변호사들의 윤리 의식이 흐려지고 '불황형 범죄'가 늘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의뢰인이 합의금 명목으로 맡긴 돈을 직원 월급과 사무실 운영비로 일단 쓰고 보는 식이다. 하창우 법조윤리협의회 위원장은 "나중에 다른 사건을 수임해 메울 요량으로 그렇게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며 "불황 앞에 직업윤리가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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