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포의 우라 푸트볼] 러시아인에게 축구는 보드카!

입력 2018.06.14 03:01

[러시아월드컵 개막]
축구는 브라질? 천만에! 훌리건은 잉글랜드? 천만에! 뜨거운 러시아를 경험하실겁니다

니폼니시

"프라할로드나 노 하라쇼(쌀쌀하지만 정말 좋아요)!"

모스크바는 요즘 영상 12도로 약간 쌀쌀합니다. 하지만 월드컵으로 인한 체감온도는 30도를 육박합니다. 월드컵 개막을 앞둔 모스크바 전역이 축구장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분위기가 러시아 최대 축일인 전승기념일(5월 9일) 이상입니다. 이미 축제는 시작된 듯합니다. 신문과 방송사들도 매일 월드컵 얘기만 합니다. 앞다퉈 월드컵 특집을 하고 참가국과 선수 소개에 열을 올립니다.

축구는 브라질이라고요? 천만에요. 러시아인들도 브라질 못지않게 축구를 사랑합니다. 아이스하키와 더불어 러시아 대륙을 뜨겁게 달구는 게 바로 축구입니다. 흔히 러시아 사람들은 축구를 보드카에 비유합니다. 루스키(러시아인)들이 추위를 이기는 데 최고로 여기는 보드카처럼 영하 20도가 넘어서도 전혀 개의치 않고 축구공을 차는 사람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훌리건(축구 난동꾼)은 잉글랜드라고요? 러시아 광적인 축구팬들도 국제사회에서 악명이 자자합니다. 이들은 유로 2012에선 개최국 폴란드에서 난동을 부렸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도 조별리그서 러시아가 일본에 패하자 모스크바에서 난동을 부려 5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요.

한국 베이스캠프의 러시아 자원봉사자 - 한국 축구대표팀이 베이스캠프를 차린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파르타크 스타디움 주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팬들과 취재진을 안내하고 있다.
한국 베이스캠프의 러시아 자원봉사자 - 한국 축구대표팀이 베이스캠프를 차린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파르타크 스타디움 주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팬들과 취재진을 안내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러시아월드컵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국가적 대사입니다. 러시아는 4년 전 소치에서 동계올림픽을 열었습니다. 월드컵은 도시 한곳에 집중된 동계올림픽과는 달리 11개 도시에서 열리는 러시아 전역의 행사입니다. 규모와 준비 과정부터 전혀 다릅니다. 경기가 열리는 12개 경기장 중 9개가 새로 지어졌습니다. 모스크바를 비롯해 경기장 주변에 40개의 '바즈(베이스캠프)'를 만들어 참가국들이 마음껏 훈련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전 세계 축구팬을 맞기 위해 공항, 도로, 호텔 등 인프라도 새로 깔렸습니다. 감히 기존 대회를 뛰어넘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합니다. 러시아에서 태어난 축구인인 제가 놀랄 정도니까요. 수십 년 동안 러시아 곳곳을 다녀봤지만 이런 느낌 처음입니다. 유라시아를 잇는 대륙 국가답게 푸틴 정부가 엄청난 물량 공세를 펼친 것 같습니다.

러시아는 4년 전 동계올림픽 개·폐막식을 통해 국제사회에 슬라브족 문화 예술을 소개했지요. 러시아 전통을 세계적으로 과시하는 문화 축제였습니다. 이번 월드컵은 아마도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 화려한 개막식과 축제로 이어질 것입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호텔의 소변기 -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한 호텔 소변기. 축구 골대와 공 모형을 소변기 안에 설치해 이용자가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호텔의 소변기 -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한 호텔 소변기. 축구 골대와 공 모형을 소변기 안에 설치해 이용자가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오종찬 기자

만국의 공통언어인 축구를 하는 사람으로서 이번 월드컵이 소치올림픽 직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으로 악화된 미국·유럽과의 관계를 완화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최근 영국과의 스파이 문제로 양국 관계가 영향을 받았지만 월드컵을 보러 오는 영국 축구팬들은 문제없습니다. 미국에서 월드컵 관람을 위해 러시아 입국 비자를 받은 축구팬도 3만 명에 육박합니다.

축구공도 지구도 둥근 모양입니다. 축구공엔 바람구멍이 있지요. 세계지도를 보면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습니다. 월드컵 동안 축구공 바람구멍처럼 러시아는 세계의 심장 역할을 할 것입니다. 축구로 세계가 하나 돼 소통하는 창구 역할을 할 것입니다. 월드컵이 열리는 한 달 동안 세계는 전쟁과 내전을 멈추고 축구라는 통일된 언어로 하나가 될 것입니다.

월드컵은 참가국 모두 반란과 영광을 꿈꿉니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이 그랬고, 제가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카메룬을 8강에 진출시켰듯 32개국 참가국 모두 축구 쿠데타를 꿈꿀 것입니다.

자, 조용한 반란을 지켜보시지요. 누가 우승할지 귀를 기울여 보시지요.

"브니마첼라(쉬~ 조용히)!"

☞니폼니시는

러시아 출신 발레리 니폼니시(75·니포)는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카메룬 대표팀을 8강에 올려놓으며 세계적인 명장 반열에 섰다. 1994년 유공·SK(현 제주 유나이티드) 사령탑을 맡아 패스 위주의 세밀한 축구로 국내 축구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그의 스타일에 매료돼 SK 팬을 중심으로 국내 첫 프로구단 서포터가 결성되기도 했다. 니폼니시 감독은 한국을 떠난 뒤 우즈베키스탄 국가대표팀, 러시아 프로리그 톰스크 감독을 거쳐 지난 5월까지 방송해설가, 나이키 후원 러시아 축구 유망주 프로젝트 총감독을 맡았다. 지난 1일 칼리닌그라드를 연고로 한 1부리그 발티카 감독으로 전격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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