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형식의 형형색색 월드컵] 모스크바 강변에서 '드라마'가 시작된다

입력 2018.06.14 03:01

[러시아월드컵 개막] 개막전 '루즈니키 스타디움' 가보니

주형식 기자

"딱 두 가지만 조심하세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12년 넘게 살고 있는 유학생 조동진(31)씨는 12일(이하 한국 시각)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독한 보드카, 그리고 그보다 더 독하기로 소문난 러시아 경찰들이었다.

그 말이 실감난 건 개막전이 열리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 도착해서부터였다. 건장한 체구를 지닌 경찰 200여명이 경기장 근처 관광객들을 불시 검문했다. 후줄근한 티셔츠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한 아시아 남성이 경찰에 에워싸여 10분 넘게 입씨름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조씨는 "요즘 경찰들이 월드컵을 앞두고 사건 예방을 이유로 더 강압적으로 바뀌었다"며 "특히 루즈니키 스타디움은 비극적인 사건이 한 번 일어난 곳이라 경비가 더 삼엄하다"고 말했다.

1956년 7월 문을 연 루즈니키 스타디움은 러시아 스포츠 역사의 산실인 동시에, 참사가 벌어진 아픔의 장소다. 비극이 일어난 건 지난 1982년 10월이었다. 당시 홈 구단인 스파르타크와 하를럼(네덜란드)의 UEFA(유럽축구연맹)컵 경기에서 관중 66명(구 소련 공식 발표 사망자 수)이 압사(壓死)당했다. 영하 10도의 추운 날씨 속에 경기를 지켜보던 관중이 경기 종료 전후로 지하철이 가까운 출입구 쪽으로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참사가 발생했다. 사망자 대부분이 청소년이었다.

경기장 안내 자원 봉사를 맡은 티무르(48)씨는 "이 경기장은 끔찍했던 기억만 갖고 있지 않다. 모스크바 시민들에겐 '러시아가 세계 최고'라는 상징적인 곳"이라고 말했다. 루즈니키 스타디움은 1956년 개장 당시 세계 최대 규모였다. 1992년까지 '레닌 중앙 경기장'으로 불렸다.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개·폐회식, 197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2013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등 굵직한 스포츠 행사를 치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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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세계인의 시선이 백(白)·청(靑)·적(赤)색으로 장식한 이곳,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으로 쏠린다.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2018 러시아월드컵 개막전이 이곳에서 열린다. 러시아는 개막 전날인 13일 리허설 경기를 열고 장내 시설을 점검했다. 원래 종합경기장이었던 이곳은 2013년 공사를 시작해 작년 11월 축구 전용구장으로 재개장했다. 사진은 재개장 기념행사 때 공중에서 찍은 루즈니키 스타디움과 인근 야경. 경기장 뒤에 흐르는 강은 모스크바강이다. /AFP

루즈니키 스타디움은 러시아가 2010년 12월 월드컵을 유치한 뒤 상트페테르부르크와 경쟁하다가 개막전 및 결승전 개최 장소로 결정됐다. 이후 기존 육상 트랙을 제거하는 등 개보수 작업을 거쳐 8만1000석짜리 대규모 축구 전용 구장으로 거듭났다.

이곳은 한국 축구 팬들에게도 익숙하다.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이던 2008년 첼시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출전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 하지만 경기 직전 출전 명단에서 빠지면서 눈물을 삼킨 채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소련 록 음악의 전설로 불린 고려인 3세 빅토르 최(1962~1990)가 활동한 그룹 키노(KINO)의 마지막 공연도 여기서 열렸다.

루즈니키 스타디움은 아직 한산했다. 팬 아이디를 수령받는 건물에만 사람이 몰렸다. 티무르씨는 "지금은 태풍을 앞둔 고요 같다"며 "14일부터 전 세계 사람들이 웃고, 울며, 감동에 빠져드는 축구의 세계 성지가 될 것"이라며 웃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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